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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28. 오빠의 비명소리5

Joyfule 2009. 4. 3. 23:14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28. 오빠의 비명소리5   
     그때였다. 
    갑자기 그가 뒤쪽으로 젖혀지더니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나는 오빠가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거의 죽임을 당할 뻔했던 순간이었다.
    인간의 마음이란 때론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정신을 완전히 빼앗긴 상태로 난 거의 벙어리가 된 채 서 있었다. 
    발을 짧게 끌며 내딛는 소리가 끝났다. 
    누군가의 거친 숨소리 ,,, 
    그리고 밤은 다시 정적에 묻혔다.
    잠시 후 아직도 누군지 모를 남자가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비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나무로 가서 기대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독하게 기침을 해댔다. 
    흐느끼는 듯한, 뼈가 흔들릴 정도의 기침이었다.
    오빠!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남자의 무거운 숨소리만이 계속되었다.
    오빠!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 남자는 무엇을 찾기라도 하듯 주위를 서성이기 시작했다. 
    그리곤 신음소리를 내며 무언가 무거운 것을 땅바닥에 끌어올렸다. 
    지금 나무 아래엔 네 사람이 있다는 것이 천천히 느껴져왔다.
    아빠 ,,,? 
    그 남자는 휘청거리며 무거운 발걸음을 길 쪽으로 옮겼다. 
    나는 오빠가 있을 법한 곳을 발끝으로 짚으며 나아가다 미칠 듯 놀랬다. 
    누군가가 발끝에 와닿아 있었던 것이다.
    오빠? 
    나의 발끝은 벨트 버클, 단추, 칼라를 짚어나갔다. 
    무언가 확인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얼굴의 억센 수염이 오빠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썩은 위스키 냄새가 났다.
    나는 도로쪽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향해 뛰어갔다. 
    몸을 너무 돌려대느라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결국 도로를 찾았다. 
    가로등 불빛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남자가 가로등 아래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 남자는 일정하게 끊어지는 듯한 발걸음으로 
    너무도 무거워보이는 누군가를 들고 가는 것이었다. 
    모퉁이를 돌고 있었고, 들려 있는 건 오빠였다. 
    오빠의 팔이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모퉁이로 갔을 땐, 
    그 남자는 우리집 앞마당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순식간에 아버지가 보였고, 계단을 뛰어내려와서 오빠를 안으로 데려갔다. 
    내가 문앞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복도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알렉산드라 고모가 뛰어와 나를 안았다.
    레이놀드 선생님을 불러! 
    아버지의 목소리가 오빠방에서 날카롭게 튀어나왔다.
    스카웃은 어디 있나? 
    여기 있어요. 
    고모가 큰소리로 외치고 나를 바짝 잡아당기며 전화기로 다가갔다. 
    고모는 걱정스러운 듯 나를 힘껏 끌어당겼다.
    고모, 전 괜찮아요. 전화 하세요. 
    율라 메이? 레이놀드 선생님 좀 연결해줘요. 빨리, 급해요. 
    아그네스, 아빠 집에 계시니? 
    오, 하나님, 어디 계시는지 모르겠니? 
    돌아오시는 대로 이곳에 좀 오시라고 해주렴, 급하단다. 
    메이컴 사람들은 서로들 목소리를 알고 있어서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가 오빠방에서 나왔다. 
    아버지는 고모가 내려놓으려는 수화기를 받아들고 훅을 거칠게 누르고 말했다.
    율라 메이, 보안관 좀 대줘요. 
    헥? 애티커스 핀치요. 누군가 내 아이들을 덮쳤소. 
    젬이 다쳤어. 여기서부터 학교 사이인 것 같소. 
    난 내 아들 곁을 떠날 수가 없으니 당신이 그곳에 범인이 아직 있나 살펴주시오. 
    그를 찾게 될진 모르지만 난 그 작자의 얼굴이라도 좀 봐야 겠소. 
    수고해주시오, 헥. 
    아빠, 오빠가 죽었나요? 
    아니다, 스카웃. 이 아일 보살펴줘, 알렉산드라. 
    아버지는 복도로 내려가며 큰소리로 부탁했다.
    알렉산드라 고모는 내 몸에 엉켜 있는 
    찌그러진 햄 의상 몸통과 철사를 풀어주었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괜찮니, 우리 스카웃? 
    고모는 나를 풀어주며 묻고 또 물었다.
    마침내 마음이 안정되자 팔이 쿡쿡 쑤시기 시작했고, 
    육각형의 빨간 자국이 조그맣게 찍혀 있었다. 
    나는 그 자국을 문지르는 것으로 기분이 좀 나아졌다.
    고모, 오빠가 죽었나요? 
    아니, 아니다. 의식을 잃었단다. 
    레이놀드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는 얼마나 다쳤는지 모른단다, 
    진 루이스. 무슨 일이 일어난 거니? 
    저도 모르겠어요. 
    고모는 더이상 묻지 않고 내게 입힐 것을 가져왔다.
    이 옷을 입으렴. 
    난 그때 고모의 착시현상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었다. 
    고모가 가장 경멸했던 옷을 내게 건네주었던 것이다.
    고모는 오빠방으로 급히 뛰어갔다간 다시 내게로 와서 
    넋이 나간 듯 내 등을 두르리다 다시 오빠방으로 갔다.
    자동차가 우리집 앞에 멈추었다. 
    곧이어 아버지 발 소리와 거의 흡사한 
    레이놀드 선생님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오빠와 나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주었고 
    오빠가 나무집 위에서 떨어졌을 때를 비롯하여 
    아기 때부터 우리를 질병에서 구해주었다. 
    그리고 한 번도 우리와의 우정을 잊은 적이 없었다. 
    언젠가 레이놀드 선생님은 커다란 종기가 나면 
    우리 키가 한 뼘은 자랄 거라고 했지만 우린 그 얘기를 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