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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 / 최해숙

Joyfule 2015. 7. 6. 02:04

 

Re:할미꽃 (넘 예뻐서 올립니다.)

 

할미꽃 / 최해숙

 

 

 여기 온 지 얼마나 되었을까? 하루가 열흘 같다. 시집이라고 온 후 하늘에 해 박인 날은 자리에 누운 적이 없었는데, 지는 해가 되어 드러누워 있으려니 갑갑증이 거품처럼 부글거린다. 움직인다고 해 봐야 꼬집어도 아픈 줄 모르는, 감각을 잃은 쪽으로 돌아눕는 게 고작이다. 아득한 세월을 살고 보니 어느 한 구석 성한 데가 없다. 팔다리도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말도 시원시원 나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눈이 만만치 않다. 그림자만 어른거릴 뿐 물체를 또록또록 볼 수 없으니 갑갑하기 이를 데 없다. 오래 전, 눈앞에 까만 점들이 오락가락하다가 뿌옇다가 하더니 만물이 흐릿해졌다. 좀 불편하긴 해도 아들 며느리가 살려고 용쓰는 동안 손자들을 내 손으로 거두는 데는 별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이즘에는 자식들 얼굴에서 눈도 코도 보이지 않고 동글납작한 모양만 어른거린다.

 

 보이지 않으니 소리라도 들어야겠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꿈속에서도 듣고 싶은 자식들의 목소리가 모깃소리처럼 앵앵거린다. 귀에 입을 바짝 대고 말을 하지 않으면 도라고 하는지 개라고 하는지 알 수 없다. 아주 조용할 때는 주위의 소리가 희미하게나마 들린다.

 

 지금도 창문 쪽에서 소리가 난다. 아무도 온 것 같지 않은데 자꾸만 이름을 불러 댄다. 이 자식 저 자식 보고픈 얼굴이 많은 게지. 저리 애타게 부른들 나 여기 있소 하고 금세 달려올 자식이 몇이나 될까. 불러 봐야 입만 아프고 가슴만 시리지. 옆 노인네가 그새 잠이 들었나. 매미 소리처럼 왱왱대더니 잠잠하다.

 

 몇 날 며칠이 지나도 개미 한 마리 얼씬 않아 고요한 때는 나도 슬슬 부아가 끓는다. 내가 저희들을 어찌 키웠는가. 손발이 거북 등짝이 되도록 온갖 험한 일 하면서도 저희들 앞날이 신작로처럼 쭉쭉 뻗어 가기만을 일구월심 빌고 또 빌었는데, 아들은 고사하고 딸들마저 코빼기도 안 비추나 싶어 서운한 마음이 든다. 그러다가도 팍팍한 세상 사느라 오죽 힘이 들면 그럴까, 마음을 다독인다.

 

 조용해서 나도 한숨 자려는데 이번에는 발치에서 소리가 들린다. 온몸을 옹그린 채 귀를 바짝 세운다. 숨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을까 싶어 숨도 쉬지 않고 들어 보니 노래를 하고 있다.

 

 "뒷동산에 할미꽃은 늙으나 젊으나 꼬부라졌네."

 

 저 노인네도 어지간히 심심한 모양이다. 잠 좀 자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입을 떼려는데 귓전에 옹알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셋째 며느리다. 제 볼일 다 보고 선심 쓰듯 한 번씩 오는 게 서운해서 말도 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래도 오니 반갑다. 건너편 노인네도 사람 소리가 나니 반가운 모양이다. 노래 한 자락을 더 뽑는다.

 

 "하늘에는 천삼이요, 바다에는 해삼이라, 산에는 산삼이요, 지하에는 불로초라."

 

 천삼, 해삼, 산삼은 이해가 가는데 지하에 불로초는 뭐람. 죽어 땅속에 묻히는 게 영원히 사는 것이란 뜻인가. 내 며느리가 뭐라고 했는지 노인네 목소리가 또다시 아리랑 고개를 넘는다.

 

 "뒷동산에 할미꽃은 늙으나 젊으나 꼬부라졌네."

 

 젊어 꼬부라진 꽃도 있는데 늙어 꼬부라지는 것이야 당연하지 않느냐고 읊어 대는 것 같다. 저 노인네도 사람이 그리운 게지. 그동안 찾아오는 이가 가물에 콩 나듯 했으니까.

 

 그러고 보면 나는 복이 많은 늙은이다. 며칠 전에는 큰며느리가 쇠고기를 볶아 왔었다. 한동안 입맛이 없고 이래저래 심사도 편치 않아 곡기를 넘기는 둥 마는 둥 했는데, 며느리 덕에 입맛이 돌아 밥 한 그릇 다 비웠다. 어제는 막내아들이 손자랑 같이 와서 한참을 떠들다 갔는데, 오늘 작은며느리까지 와서 내가 좋아하는 요구르트를 떠먹여 주니 이만하면 복 없다 소리는 못 하겠다.

 

 하지만 입맛이 돌아도 문제다. 밤낮없이 드러누워 있으니 대소변도 시원스레 나오지 않는다. 볼일을 한 번 보려면 젖 먹던 힘까지 다 써야 한다. 살아온 세월이 장구한데 그 힘인들 남아 있을까. 용을 쓰다 지쳐 도저히 볼일을 볼 수가 없다. 어쩔 도리가 없어 또 며칠을 참다 결국에는 돌봐 주는 이가 파내야 한다. 자주 볼일을 보는 것도 치우는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니 이래저래 처신이 말이 아니다. 사람으로 살면서 먹고 배설하는 일만큼은 제 힘으로 해결을 해야 되는데 몸뚱이가 말을 듣지 않으니 살아 있어도 산목숨이라고 할 수가 없다.

 

 생각을 거듭하면 당장 숨을 거두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오는 사람마다 붙잡고 얼른 죽을 약을 사 오라고 억지를 부렸더니 더러는 와도 말을 않고 내 몰골만 살피고 간 모양이다. 그나마 맏손녀는 내 머리도 쓸어 주고 다리도 주물러 주고 하니 키운 보람이 느껴진다.

 

 내 신세를 생각하면 오늘 당장 숨 줄을 놓은들 원통할 일 없겠지만, 맏손녀 혼사 소식이 감감이라 걱정이다. 나이가 가을 곡간의 나락 섬처럼 꽉 찼는데 어찌 짝이 안 나서는지 답답하다. 얼른 짝이 나서야 제 어미도 한시름 놓을 텐데. 숨 쉬는 일 말고는 죄다 남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 형편에 누굴 걱정할 잡이가 못 되지만, 조손의 인연으로 만났으니 걱정을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밥을 먹고 좀 있으니 며느리가 달달한 빵을 입 안에 넣어 준다. 틀니를 빼놓아 야문 음식은 먹기가 거북한데 빵이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케이큰지 뭔지를 사 온 모양이다. 당장 숨을 놓고 싶다가도 맛난 먹을거리 한입에 서운하던 마음이 봄 햇살에 눈 녹듯이 녹아내리고, 생에 대한 미련이 봄 들판의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니 이 망령된 심사를 어이할 거나.

 

 내 눈이 조금만 밝으면, 내 귀가 조금만 더 밝으면 이 적막 강산을 견뎌 맏손녀 혼사라도 보고, 내년 생일에 맛난 빵 한 번 더 먹어 보고 저 세상으로 가도 좋으련만, 욕심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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