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 유혜자
TV 드라마를 보고 있다. 어린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장면에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선율이 깔린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어린 시절 그의 사진처럼 밝고 화평한 삶의 주인공일 거로 여겨진다. 그의 실내악은 대개 즐거운 자리에 어울린다. 더욱이 밝고 그윽한 실내악을 들으면 우아한 파티에 참석한 것처럼 자세를 반듯이 하게 된다. 샹들리에 불빛이 휘황한 파티장에서 기품 있고 유연한 매너로 반가운 이들과 얘기를 나누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의 음악은 장중하거나 격렬하지 않아 이렇듯 아늑한 분위기의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 중에도 그의 클라리넷 5중주는 특히 우아하다. 클라리넷 5중주는 두 대의 바이올린과 첼로, 비올라로 구성된 현악 4중주와 클라리넷 한 대가 연주하는 곡이다. 클라리넷과 현악 4중주가 따뜻하게 주고받는 1악장 알레그로는 다채롭고 감미롭다. 2악장 라르게토의 깊고 아름다운 서정은 어떤 애수가 깔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 2악장을 들으면 여름방학 때 시골에 있는 친척집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한낮엔 도회지에서 못해 본 놀이에 몰두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게 즐거웠다. 개울물에 오징어 다리를 담그면 어느 새 돌 틈에서 기어나오는 가재 잡이, 잠자리채를 들고 들판을 뛰어다니다가 원두막에서 잘 익은 복숭아 껍질을 솔솔 벗기며 먹었다. 그 복숭아에서 흘러내리던 단물처럼 달콤한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저녁때 친척댁에 돌아와 무르익은 수밀도水蜜桃 빛깔의 노을이 타오르면 불현듯 집에 가고 싶어졌다. 높은 마루에서 건너편 마을의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노라면 무언지 이름 모를 그리움이 솟구쳐서 눈물이 나곤 했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곡의 2악장을 들으면 그때 일이 연상되고 그때 느끼던 애수 같은 것이 깔린다. 인간 고통의 무게를 깔고 슬픔과 행복과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는 음악, 절제의 힘으로 행복과 슬픔과 그리고 아쉬움을 진하지 않게 밑그림으로 한 듯하다.
친구인 클라리네티스트 슈타틀러를 위해 작곡해서 일명 슈타틀러 5중주곡으로 불리는 이 음악은 앞서 말한 1, 2악장 외에 춤추고 싶어지는 메뉴엣의 3악장과 변주의 놀라운 솜씨를 발휘한 라르게토의 4악장으로 되어 있다.
모차르트 연구가인 알프레트 아인슈타인은 4악장 알레그레토에 대해 “실내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예민한 악장이다. 삶에 대한 작별의 행복감과 슬픔을 뒤섞는 듯. 삶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얼마나 슬펐던가. 얼마나 짧았던가” 하고 찬탄했다. 리하르트 스트라우스는 이 음악에 대해 “내가 쓴 모든 작품을 합쳐도 이 작품만 못하다”고 유언을 했을 정도로 그의 장점으로 꼽히는 깊고 다양한 감정 표현력이 잘 담겨 있는 작품이다.
모차르트는 이 음악을 33세에 작곡했다. 세상 떠나기 1년 반 전으로 이름 모를 병에 시달리고 생활도 아주 어려웠을 때였다.
“사랑하는 친구여… 나의 뻔뻔스러움은 정말 정도에 지나쳤습니다. 다만 나의 사정을 모든 면에서 관찰하고, 당신에 대한 나의 우정과 신뢰를 생각하여 나를 용서해 주시기를 빌 뿐입니다… 당신이 현재 그다지 필요로 하시지 않는 액수만으로 좋습니다… 찾아 뵙고 말씀드려야 할 일이지만, 류머티즘 같은 아픔으로 머리가 완전히 묶여 있는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이번 한 번만 형편 닿는 대로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푸호베르크라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고 여러 번 돈을 꾸었다. 밤새도록 원고를 쓰며 아픈 몸을 혹사했지만 가족의 생활비도 모자랐고, 류머티즘 같은 병세를 호소했는데 결국은 이 증세가 모차르트를 죽게 했다고 한다. 나는 극도의 고통 속에서 탄생한 이 음악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움에 의문을 느낀다. 막다른 골목, 극한상황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된 아이러니를 느끼며 떠올린다. 과일은 상하기 직전의 것이 당도가 높고 햇살도 막 넘어가기 전의 햇살이 눈부시다.
눈부신 햇살이 넘어가고 해질 무렵이면 느껴지는 고요. 행복한 사람이라면 정으로 맺어진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축복의 시간이기도 하다. 아늑해진 지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귀한 소원을 빌고 경건한 순간도 누릴 것이다. 석양의 햇살로 눈부시던 도심의 가로수들도 해질 무렵에는 그림자를 거두고 침묵해서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모차르트는 어릴 때 이름 높은 신동으로 가는 곳마다 열광받던 천재였다. 나는 빈에 갔을 때 쇤부룬 궁전의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거울의 방’에서 6세의 모차르트가 요제프 1세 앞에서 지휘하는 그림을 보았다. 여러 겹의 거울에 비친 영상처럼 오묘한 그의 음악과 ‘거울의 방’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방에서 연주를 끝낸 모차르트는 같은 또래의 마리 앙투아네트 공주와 놀면서 “나의 아내가 되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거울의 방을 나오며 후일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가 된 마리 앙투아네트가 허영과 사치로 프랑스 혁명 때 38세의 나이로 단두대의 이슬이 된 사실과 모차르트가 가난 속에서 자신을 혹사하다가 35세의 나이로 숨져 극빈자 장례로 지상에서 사라진 사실을 떠올렸다.
해질 무렵 석양에 물든 강물은 아름답고 신비하며 환상의 세계로 향하게 한다. 그러나 눈물겹고 위로받고 싶은 시간이기도 하다. 지난날의 어지러운 발자국과 방황의 날개를 접고 깃을 찾는 새처럼 지상에서 사라져간 모차르트의 영혼에 촛불 하나 밝혀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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