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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분 - 전영택

Joyfule 2007. 7. 20. 00:29
화수분 - 전영택
 

1.
첫겨울 추운 밤은 고요히 깊어 간다. 뒤뜰 창 바깥에 지나가는 사람 소리도 끊어지고 이따금씩 찬바람 부는 소리가 휘익 우수수 하고 바깥의 춥고 쓸쓸한 것을 알리면서 사람을 위협하는 듯하다.

"만주노 호야 호오야."

길게 그리고도 힘없이 외치는 소리로, 보지 않아도 추워서 수그리고 웅크리고 가는 듯한 사람이 몹시 처량하고 가엾어 보인다. 어린애들은 모두 잠들고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눈에 졸음이 잔뜩 몰려서 입으로만 소리를 내어 글을 읽는다. 나는 누워서 손만 내놓아 신문을 들고 소설을 보고, 아내는 이불을 들쓰고 어린애 저고리를 짓고 있다.

"누가 우나?"

일하던 아내가 말하였다.

"아니야요. 그 절룸발이가 지나가며 무슨 소리를 지껄이면서 그러나 보아요."

공부하던 애가 말한다. 우리들은 잠시 그 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으나 다시 각각 그 하던 일을 계속하여 다시 주의도 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다가 우리는 모두 잠이 들어 버렸다.

나는 자다가 꿈결같이 으으으으으으 하는 소리를 들었다. 잠깐 잠이 반쯤 깨었으나 다시 잠들었다. 잠이 들려고 하다가 또 깜짝 놀라서 깨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물었다.

"저게 누구 울지 않소?"

"아범이구려."

나는 벌떡 일어나서 귀를 기울였다. 과연 아범의 우는 소리다.행랑에 있는 아범의 우는 소리다.

'어찌하여 우는가,사나이가 어찌하여 우는가. 자기 시골서 무슨 슬픈 상사의 기별을 받았나? 무슨 원통한 일을 당하였나?' 나는 생각하였다. 어이어이 느껴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내에게 물었다.

"아범이 왜 울까?"

"글쎄요, 왜 울까요?"

2.
아범은 금년 구월에 그 아내와 어린 계집애 둘을 데리고 우리 집 행랑방에 들었다. 나이는 한 서른 살쯤 먹어 보이고 머리에 상투가 그냥 달라붙어 있고 키가 늘씬하고 얼굴은 기름하고 누르퉁퉁하고 눈은 좀 큰데 사람이 퍽 순하고 착해 보였다. 주인을 보면 어느 때든지 그 방에서 고달픈 몸으로 밥을 먹다가도 얼른 일어나서 허리를 굽혀 절한다. 나는 그것이 너무 미안해서 그러지 말라고 이르려고 하면서 늘 그냥 지내었다. 그 아내는 키가 자그마하고 몸이 똥똥하고, 이마가 좁고, 항상 입을 다물고 아무 말이 없다. 적은 돈은 회계할 줄 알아도 '원'이나 '백냥' 넘는 돈은 회계할 줄 모른다. 그리고 어멈은 날짜 회계할 줄을 모른다. 그러기에 저 낳은 아이들의 생일을 아범이 그 전날 내일이 생일이라고 일러주지 않으면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결코 속일 줄을 모르고 무슨 일이든가 하라는 대로 하기는 하나 얼른 대답을 시원히 하지 않고 꾸물꾸물 오래 하는 것이 흠이다. 그래도 아침에는 일찌기 일어나서 기름을 발라 머리를 곱게 빗고 빨간 댕기를 드려 쪽을 찌고 나온다.

그들에게는 지금 입고 있는 단벌 홑옷과 조그만 남비 하나밖에 아무 것도 없다. 세간도 없고 물론 입을 옷도 없고 덮을 이부자리도 없고 밥 담아 먹을 그릇도 없고 밥 먹을 숟가락 한 개가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보기 싫게 생긴 딸 둘과 작은애를 업는 홑누더기와 띠, 아범이 벌이하는 지게가 하나 - 이것뿐이다. 밥은 우선 주인집에서 내어간 사발과 숟가락으로 먹고 물은 역시 주인집 어린애가 먹고 비운 가루 우유통을 갖다가 떠먹는다.

아홉 살 먹은 큰 계집애는 몸이 좀 뚱뚱하고 얼굴은 컴컴한데 이마는 어미 닮아서 좁고 볼은 아비 닮아서 축 늘어졌다. 그리고 이르는 말은 하나도 듣는 법이 없다. 그 어미가 아무리 욕하고 때리고 하여도 볼만 부어서 까딱없다. 도리어 어미를 욕한다. 꼭 서서 어미보고 눈을 부르대고 '조 꺽정이가 왜 야단야단이야.'하고 욕을 한다. 먹을 것이 생기면 자식 먹이고 남편 대접하고 자기는 늘 굶는 어미가 헛입 노릇이라도 하는 것을 보게 되면 '저 망할 계집년이 무얼 혼자만 처먹어?'하고 욕을 한다. 다만 자기 어미나 아비의 말을 아니 들을 뿐 아니라, 주인 마누라나 주인 나리가 무슨 말을 일러도 아니 듣는다. 먼 데 있는 것을 가까이 하려면 손수 붙들어 와야 하고, 가까이 있는 것을 비키게 하려면 붙들어다 치워야 한다.

다음에 작은 계집애는 돌을 지나 세 살을 먹은 것인데 눈이 커다랗고 입술이 삐죽 나오고 걸음은 겨우 빼뚤빼뚤 걷는다. 그러나 여태 말도 도무지 못하고 새벽부터 하루 종일 붙들어 매여 끌려가는 돼지 소리 같은 크고 흉한 소리를 내어 울어서 해를 보낸다.

울지 않는 때라고는 먹는 때와 자는 때뿐이다. 그러나 먹기는 썩 잘 먹는다. 먹을 것이라도 눈앞에 보이기만 하면 죄다 빼앗아다가 두 다리 사이에 넣고 다리와 팔로 웅크리고 웅웅 소리를 내면서 혼자서 먹는다. 그렇게 심술 사나운 큰 계집애도 다 빼앗기고 졸연해서 얻어먹지 못한다. 이렇기 때문에 작은 것은 늘 어미 뒷잔등에 업혀 있다. 만일 내려놓아 버려두면 땅바닥을 벗은 몸으로 두 다리를 턱 내뻗치고 묶여 가는 돼지 소리로 동리가 요란하도록 냅다 지른다.

그래서 어멈은 밤낮 작은 것을 업고 큰 것과 싸움을 하면서 얻어먹지도 못하고, 물긷고 걸레질하고 빨래하고 서서 돌아간다. 작은 것에게는 젖을 먹이고 큰 것의 욕을 먹고 성화 받고 사나이에게 웅얼웅얼하는 잔말을 듣는다. 밥 지을 쌀도 없는데 밥 안 짓는다고 욕을 한다. 그리고 아범은 밝기도 전에 지게를 지고 나갔다가 밤이 어두워서 들어오지만 하루에 두 끼니를 못 끓여 먹고 대개는 벌이가 없어서 새벽에 나갔다가도 오정 때나 되면 돌아온다. 들어와서는 흔히 잔다. 이런 때는 온종일 그 이튿날 아침까지 굶는다. 그때마다 말없던 어멈이 옹알옹알 바가지 긁는 소리가 들린다. 어멈이 그 애들 때문에 그렇게 애쓰고, 그들의 살림이 그렇게 어려운 것을 보고 나는 이따금 이렇게 생각하였다.

아내에게도 말을 한다.

"저 애들을 누구를 주기나 하지."

위에 말한 것은 아범과 그 식구의 대강한 정형이다. 그러나 밤중에 그렇게 섧게 운 까닭은 무엇인가?

3.
그 이튿날 아침이다. 마침 일요일이기 때문에 내게는 한가한 틈이 있어서 어멈에게 그 내용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지난밤에 아범이 왜 그렇게 울었나?"

하는 아내의 말에 어멈의 대답은 대강 이러하였다.

"어멈이 늘 쌀을 팔러 댕겨서 저 뒤의 쌀가게 마누라를 알지요. 그 마누라가 퍽 고맙게 굴어서 이따금 앉아서 이야기도 했어요.때때로 그 애들을 데리고 어떻게나 지내나 하고 물어요.그럴 적마다 '죽지 못해 살지요.'하고 아무 말도 아니했어요. 그러는데 한 번은 가니가 큰애를 누구를 주면 어떠냐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데리고 있다가 먹이면 먹이고 죽이면 죽이고 하지, 제 새끼를 어떻게 남을 줍니까? 그리고 워낙 못생기고 아무 철이 없어서 에미 애비나 기르다가 죽이더래도 남은 못 주어요. 남이 가져갈 게 못 됩니다. 그것을 데려 가시는 댁에서는 길러 무엇합니까. 돼지면 잡아서 먹지요.' 하고 저는 줄 생각도 아니 했어요. 그래도 그 마누라는 '어린것이 다 그렇지 어떤가 어서 좋은 댁에서 달라니 보내게. 잘 길러 시집보내 주신다네. 그리고 젊은이들이 벌어먹고 살아야지 애들을 다 데리고 있다가 인제 차차 날도 추워 오는데, 모두 한꺼번에 굶어 죽지 말고……' 하시면서 여러 말로 대구 권하셔요. 말을 들으니까 그랬으면 좋을 듯도 하기에 '그럼 저의 아범보고 말을 해 보지요.'했지요. 그랬더니 그 마누라가 부쩍 달라붙어서 '내일 그 댁 마누라가 우리집으로 오실 터이니 그 애를 데리고 오게.' 하셔요. 해서 '글쎄요.' 하고 돌아 왔지요. 돌아와서 그날 밤에,그젯밤이올시다. 그젯밤 아니라 어제 아침이올시다. 요새 저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 밤에는 들어와서 반찬이 없다고 밥도 안 먹고 곤해서 쓰러져 자길래 그런 말을 못하고 어제 아침에야 그 이야기를 했지요. 그랬더니 '내가 아나, 임자 마음대로 하게 그려.' 그러고 일어서 지제를 지고 나가 버리겠지요. 그리고는 저 혼자서 온종일 이리저리 생각을 해보았지요. 아무러나 제 자식을 남을 주고 싶지는 않지만 어떻게 합니까. 아씨 아시듯이 이제 새끼 또 하나 생깁니다 그려. 지금도 어려운데 어떻게 둘씩 셋씩 기릅니까. 그래서 차마 발길이 안 나가는 것을 오정 때가 되어서 데리고 갔지요. 짐승 같은 계집애는 아무런 것도 모르고 따라 나서요. 앞서 가는 것을 뒤로 보면서 생각을 하니까 어째 마음이 안되었어요."

하면서 어멈은 울먹울먹한다. 눈물이 핑 돈다.

"그런 것을 데리고 갔더니 참말 알지 못하는 마누라님이 앉아 계셔요. 그 마누라가 이걸 호떡이라 군밤이라 감이라 먹을 것을 사다 주면서 '나하고 우리 집에 가 살자. 이쁜 옷도 해주고 맛난밥도 먹고 좋지. 나하고 가자. 가자. 하시니까 이것은 먹기에 미쳐서 대답도 아니하고 앉았어요."

이 말을 들을 때에 나는 그 계집애가 우리 마루 끝에 서서 우리집 어린애가 감 먹는 것을 바라보다가 내버린 감꼭지를 쳐다보면서 집어 가지고 나가던 것이 생각났다.

어멈은 다시 이야기를 이어,

"그래, 제가 어쩌나 보려고 '그럼 너 저 마님 따라가 살련? 나는 집에 갈 터이니.' 했더니 저는 본체만체 하고 머리를 끄덕끄덕 해요. 그래도 미심해서 '정말 갈 테야, 가서 울지 않을 테 야?' 하니까, 저를 한 번 흘끗 노려보더니 '그래, 걱정 말고가요.' 하겠지요. 하도 어아거 없어서 내버리고 집으로 돌아왔지요. 그러고 돌아와서 저 혼자 가만히 생각하니까, 아범이 또 무어라고 할런지 몰라, 어째 안되겠어요. 그래 바삐 아범이 일하러 댕기는 데를 찾아갔지요. 한 번 보기나 하랄려고 염천교 다리로 남대문 통으로 아무리 찾아야 있어야지요. 몇 시간을 애써 찾아댕기다가 할 수 없이 그 댁으로 도루 갔지요. 갔더니 계집애도그 마누라도 벌써 떠나가 버렸겠지요. 그대 마님 말?맛? 저녁 여섯 시 차에 광핸지 광한지로 떠났다고 하셔요. 가시면서 보고 싶으면 설 때에나 와 보고 와 살려면 농사짓고 살라고 하셨대요.그래 하는 수가 있습니까. 그냥 돌아왔지요. 와서 아무 생각이 없어서 아범 저녁 지어 줄 생각도 아니하고 공연히 밖에 나가서왔다갔다 돌아댕기다가 들어왔지요. 저는 눈물도 안 나요. 그러다가 밤에 아범이 들어왔기에 그 말을 했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고 그렇게 통곡을 했답니다. 여북하면 제 자식을 꿈에도 보지 못하던 사람에게 주겠어요. 할 수가 없어서 그렇지요. 집에 두고 굶기는 것보다 나을까 해서 그랬지요. 아범이 본래는 저렇게는 못 살지 않았답니다. 저희 아버지 살았을 때에는 몇백 석이나 하고 양평 시골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답니다. 이름들도 모두 좋지요. 맏형은 '장자'요, 둘째는 '거부'요, 아범이 셋짼데 '화수분'이랍니다. 그런 것이 제가 간 후부터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그리고 맏아들이 죽고 농사 밑천인 소 한 마리를 도적 맞고 하더니 차차 못 살게 되기 시작해서 종내 저렇게 거지가 되었답니다. 지금도 시골 큰댁엘 가면 굶지나 아니할 것을 부끄럽다고 저러고 있지요. 사내 못생긴 건 할 수 없어요."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아범이 어제 울던 까닭을 알았고 이때에 나는 비로소 아범의 이름이 '화수분'인 것을 알았고,양평 사람인 줄도 알았다.

4.
그런지 며칠이 지난 어느날 아침이다. 화수분은 새 옷을 입고 갓을 쓰고 길 떠날 행장을 차리고 안으로 들어온다. 그것을 보니까 지난밤에 아내에게서 들은 말이 생각난다. 시골 있는 형 거부가 일하다가 발을 다쳐서 일을 못하고 누워있기 때문에 가뜩이나 흉년인데다가 일을 못해서 모두 굶어 죽을 지경이니, 아범을 오라고 하니 가 보아야 하겠다는 말을 듣고 나는 "가보아야겠군."하니까, 아내는 "김장이나 해 주고 가야 할 터인데." 하기에 "글쎄, 그럼 그렇게 이르지." 한 일이 있었다. 아범은 뜰엣거 허리를 한 번 굽히고 말한다.

"나리, 댕겨오겠습니다. 제 형이 일하다가 도끼로 발을 찍어서일을 못하고 누워 있다니까 가 보아야겠습니다. 가서 추수나 해주고는 곧 오겠습니다. 거저 나리 댁만 믿고 갑니다."

나는 어떻게 대답을 했으면 좋을지 몰라서

"잘 댕겨오게."

하였다.

아범은 다시 한 번 절을 하고

"안녕히 계십시오."

하면서 돌아서 나갔다.

"저렇게 내버리고 가면 어떡합니까? 우리도 살기 어려운데 어떻게 불때 주고 먹이고 입히고 할 테요? 그렇게 곧 오겠소?"

이렇게 걱정하는 아내의 말을 듣고 나는 바삐 나가서 화수분을 불러서

"곧 댕겨오게, 겨울을 나서는 안되네."

하였다.

"암, 곧 댕겨옵지요."

화수분은 뒤를 돌아보고 이렇게 대답을 하고 달아난다.

5.
화수분은 간 지 일주일이 되고 열흘이 되고 보름이 지나도 아니온다. 어멈은 아범이 추수해서 쌀말이나 가지고 돌아오기를 밤낮 기다려도 종내 오지 아니하였다. 김장때가 다 지나고 입동이 지나고 정말 추운 겨울이 되었다. 하루 저녁은 바람이 몹시 불고 그 이튿날 새벽에는 하얀 눈이 펑펑 내려 쌓였다.

아침에 어멈이 들어와서 화수분의 동네 이름과 번지 쓴 종이조각 을 내어놓으면서 오지 않으면 제가 가겠다고 편지를 써 달라고 하기에 곧 써서 부쳐까지 주었다.

그 다음날부터는 며칠 동안 날이 풀려서 꽤 따뜻하였다. 그래도 화수분의 소식은 없다. 어멈은 본래 어린애가 딸려서 일을 잘 못하는 데다가 다릿병이 있어 다리를 잘 못 쓰고 더구나 며칠 전에 손가락을 다쳐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을 퍽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추운 겨울에 혼자 살아갈 길이 막연하여, 종내 아범을 따라 시골로 가기로 결심을 한 모양이다.

"그만 아씨,시골로 가겠습니다."

"몇 리나 되나?"

"몇 린지 사나이들은 일찍 떠나면 하루에 간다고 해두 저는 이틀에나 겨우 갈 걸요."

"혼자 가겠나?"

"물어 가면 가기야 가지요."

아내와 이런 문답이 있은 다음날,아침 바람 불고 추운 날 아침에 어멈은 어린것을 업고 돌아볼 것도 없는 행랑방을 한 번 돌아보면서 아창아창 떠나갔다.

그날 밤에도 몹시 추웠다. 우리는 문을 꼭꼭 닫고 문틀을 헝겁으로 막고 이불을 둘씩 덮고 꼭꼭 붙어서 일찍 잤다.

나는 자면서, 잘 갔나, 얼어죽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이 났다.

화수분도 가고 어멈도 하나 남은 것을 업고 간 뒤에는 대문간은 깨끗해지고 시꺼먼 행랑방 방문은 닫혀 있었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다시 행랑 사람도 안 들이고 식모도 아니 두었다. 그래서 몹시 추운 날, 아내는 손수 어린것을 등에 지고 이웃집의 우물에 가서 배추와 무를 씻어서 김장을 대강 하였다. 아내는 혼자서 김장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어멈 생각을 하였다.

6.
김장을 다 마친 어느 날, 추위가 풀려서 따뜻한 날 오후에, 동대문밖에 출가해 사는 동생 S가 오래간만에 놀러 왔다. S에게 비로소 화수분의 소식을 듣고 우리는 놀랐다. 그들은 본래 S의 시댁에서 천거해 보낸 것이다. 그 소식은 대강 이렇다.

화수분이 시골 간 후에 형 거부는 꼼짝 못하고 누워 있기 때문에 형 대신 겸 두 사람의 일을 하다가 몸이 지쳐 몸살이 나서 넘어졌다. 열이 몹시 나서 정신없이 앓았다. 정신없이 앓으면서도 귀동이(서울서 강화 사람에게 준 큰 계집애)를 부르며 늘 울었다.

"귀동아, 귀동아,어델 갔니? 잘 있니……"

그러다가는 흐득흐득 느끼면서,

"그렇게 먹고 싶어하는 사탕 한 알 못 사 주고 연시 한 개 못 사주고……"

하고 소리를 내어 어이어이 운다.

그럴 때에 어멈의 편지가 왔다. 뒷집 기와집 진사댁 서방님이 읽어 주는 편지 사연을 듣고,

"아이구,옥분아(작은 계집애를 이름),옥분이 에미!"

하고 또 어이어이 운다. 울다가 벌떡 일어나서 서울서 넝마전에서 사 입고 간 새 옷을 입고 갓을 썼다. 집안 사람들이 굳이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화수분은 서울을 향하여 어멈을 데리러 떠났다. 싸리문 밖에를 나가 화수분은 나는 듯이 달아났다.

화수분은 양평서 오정이 거의 되어서 떠나서해져갈 즈음에서 백리를 거의 와서 어떤 높은 고개에 올라섰다. 칼날 같은 바람이 뺨을 친다. 그는 고개를 숙여 앞을 내려다보다가 소나무 밑에 희끄무레한 사람의 모양을 보았다. 그것에 곧 달려가 보았다. 가 본즉 그것은 옥분과 그의 어머니다.나무 밑 눈 위에 나뭇가지를 깔고,어린 것 업은 헌 누더기를 쓰고 한끝으로 어린것을 꼭 안아 가지고 웅크리고 떨고 있다. 화수분은 왁 달려들어 안았다. 어멈은 눈은 떴으나 말은 못한다. 화수분도 말을 못한다. 어린것을 가운데 두고 그냥 껴안고 밤을 지낸 모양이다.

이튿날 아침에 나무장사가 지나다가 그 고개에 젊은 남녀의 껴안은 시체와, 그 가운데 아직 막 자다 깨인 어린애가 등에 따뜻한 햇볕을 받고 앉아서 시체를 툭툭 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어린것만 소에 싣고 갔다. <1925년>

 

 <화수분>

【해설】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전영택의 단편소설. 1920년대의 궁핍한 사회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일제의 가혹한 수탈로 당대 사회의 참혹한 궁핍상을 자연주의적 수법으로 형상화하였다.

  가난한 부부의 삶의 실상을 통해 당대 시대적 상황과, 이를 극복하려는 인도주의적 작가 의식을 투영하고 있는 점에서 1920년대 자연주의 소설의 한 전범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우리 나라 자연주의 소설의 경향을 본격화시켰을 뿐 아니라 단편소설로서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으며, 사상적인 면에서는 가난한 삶 속에 깃든 따뜻한 인간애를 통한, 인도주의적 작가관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은 죽음으로 이어지는 빈곤이 생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조건임을 전제로 한, 이른바 ‘빈궁모티브’를 활용하면서 비극적인 삶의 모습을 포착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최서해의 <탈출기>나 <기아와 살육>처럼 사회적 빈궁에 항거하는 이념성이 내포되어 있지 않은 반면, 인도주의가 흐르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냉혹한 관찰을 통해 한 선량한 가족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목은 초창기 자연주의 문학의 한 성과로 꼽힌다.

  이와 같이 ‘가난’을 소재로 일제하의 참담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작품으로 김동인의 <감자>, 나도향의 <물레방아>, 최서해의 <홍염> 등이 있다.

【개관】

▶갈래 : 단편소설, 자연주의 소설, 인도주의 소설, 액자소설

▶소재 : 가난한 행랑 식구들과 그들의 극한적인 빈곤

▶배경 :

- 시간적 : 일제 강점하의 추운 겨울

- 공간적 : 서울 및 양평 가는 고갯길

▶문체 : 사실적이고 간결한 문체

▶시점 : 1인칭 관찰자(1.2.4.5장), 1인칭 주인공 시점의 혼용(3장)과  전지적 작가시점의 혼용(6장)

▶사조 : 자연주의적 사실주의, 인도주의

▶성격 : 묘사적, 자연주의적, 사실주의, 인도주의(휴머니즘)

▶특징 : 객관적, 사실적, 묘사적

▶주제 :

- 가난한 부부의 사랑과 그 부활의 의미

- 가난한 부부의 사랑과 어린아이의 생명에 바탕을 둔 휴머니즘

- 가난한 부부의 사랑과 참혹한 죽음, 그리고 부활의 가능성

▶‘화수분' 제목 : 반어적 성격 - 주인공의 가난한 삶과 반대되는 이름임

▶출전 : [조선문단](1925. 1)

【등장인물】

  이 작품은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하면서 헤어날 수 없는 절대 빈곤의 상황과 자식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마다 않는 부모의 사랑을 대비시켜 놓았다. 거기에다 ‘재물을 써도 마르지 않는다’는 뜻의 ‘화수분’, 또 그의 형 ‘거부’ 등과 같은 인물의 이름은 사회 상황과는 반대되는 반어적 표현임을 말해준다.

▶화수분 : ‘나’의 집에 세 들어 사는 행랑아범. 한때는 부유했으나 결혼 후 지금까지 극심한 가난에 시달린다. 손윗사람에게 공손하고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하며 부성애와 부부애가 강한 착한 성격의 하층민 지게꾼. 반어적 명명.

▶어멈 : 가난 속에서도 착하게 살아가는 행랑아범의 아내. 남편 화수분처럼 순박하고 선량한 여인.

▶귀동이, 옥분이 : 화수분의 딸들. 부모와는 달리 못생긴 데다 마음씨까지 고약하여 고집불통임.

▶나 : 서술자. 화수분 일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식인. 화수분네 가족에게 연민을 가지나,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하는 무덤덤한 관찰자.

【‘화수분’의 배경】

  이 작품에는 시대적 배경을 짐작할 만한 뚜렷한 사실이 제시되고 있니 않다. 그러나 이 작품이 발표된 1925년 전후로 미루어, 우리 나라가 극도의 피해를 입고 있던 일제 시대라 볼 수 있다. 작품에서는 자식까지 남의 손에 넘겨주어야할 만큼 가난하고, 취업 기회를 좀처럼 얻을 수 없는 당시의 사회적 환경을 암시하고 있다.

  다른 하나의 배경은,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는 겨울밤이다. 으스스한 분위기에서 뭔가 끔찍한 사건이 벌어질 듯한 기분이 든다. 이러한 겨울밤의 으스스한 분위기는 단순히 풍경에만 그치지 않고 주제와 연결되면서 주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기능을 하고 있다.

【등장인물의 역할】

▶화수분 : 한마디로, 착하고 선량한 인물이다. 행랑에 사는데, 주인에게 공손하고, 고향의 형이 다쳐서 일을 도와주러 가서는 몸을 아끼지 않고 일을 하다가 몸져누울 정도로 우애가 깊을 뿐 아니라, 큰딸을 남의 집에 주고 잊지 못해 아이를 찾는다든지, 아내의 편지를 받고 둘째 아이와 아내가 걱정이 되어 앓는 몸으로 서울로 올라가는 그에게서 가족애와 다정다감한 면모를 볼 수 있다. 결국 이 작품이 비극으로 맺어지는 것은 바로 이 화수분의 성격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멈과 두 딸 : 어멈은 아범과 같이 선량한 인물이다. 큰애를 남에게 주고 나서, 남편에게 알려 마지막으로 보게 하려고, 일터를 찾아다니는 모습에서 그녀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두 딸은 한결같이 못생기고, 마음씨고 고약하며, 거기에다 고집쟁이다. 어미의 말은 물론이고, 주인어른의 말도 듣지 않는다. 이러한 성격은 가난한 생활에서 올 수 있다는 점에서 환경과 성격의 관계를 암시해 준다. 또 이러한 성격은 어미의 마음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의 주제와 분위기에 밀접하게 연결되는 긴장감을 형성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성격과  환경의 관계에서 작품의 구조에 대한 암시를 주는 것이 자연주의 소설의 특징이다.

【‘화수분’의 구조】

  이 작품의 시점이 여러 서술자의 모습을 보여 주는 혼합 시점으로 되어 있음과 같이, 그 구조 역시 서술자의 위치에 따라 여러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모여서 한 편의 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런 구조는 서술자와 서술 내용 사이의 거리가 너무 근접해 있어서 이야기 구조의 진실성을 해칠 우려를 떨쳐 버릴 수 없다. 이 때, 서술자는 작자 자신이라는 의식을 확실히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작중에서 주인공 역할을 하는 화수분 등은 움직이지 않는 인물로 설정된다. 이야기 구조가 지니는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전영택 소설의 전편에 깔려 있는 인정의 따뜻함과 동정어린 손길 또한 이런 구조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화수분’의 반어적 구조】

  ‘화수분’이란 이름과 그 비참한 생활이 대비되면서 비극적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즉 화수분이란 재물이 계속 생겨나서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다는 뜻이지만, 작품에서는 재산이 거덜나 있다. 그런데, 화수분은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과는 달리, 처음부터 비극적 인물이 의도적으로 설정되어 작자의 연민의 정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구성】

▶발단 : 먹고 살기가 어려운 행랑아범 화수분의 네 식구

▶전개 : 어멈은 큰딸애를 남에게 줌. 양평으로 간 화수분을 기다리다 못해 찾아 나서는 아내

▶위기 : 아내의 편지를 받고 서울로 향하는 화수분

▶절정 : 겨울산 고갯길에서 만나는 부부

▶결말 : 나무장수가 부부의 시체와 어린애를 발견하여 어린것만 소에 싣고 감.

【사건】

  행랑아범의 가난한 생활과 그의 사람됨, 부부애, 그리고 큰딸아이를 가난 때문에 남에게 주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 등이 주 내용을 이루다가 시골 형의 일을 도우러 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남편을 찾아 나서는 어멈과 아내를 데리러 서울로 오는 행랑아범이 겨울 산 고갯길에서 만나 속수무책으로 얼어죽게 되고, 갓난아이만 살아남게 된다는 비극적 결말이 강조되는 구성을 보인다.

【줄거리】

  『나는 어느 초겨울 추운 밤 행랑아범의 흐느끼는 소리를 듣는다. 그해 가을에 아범은 아내와 어린 계집애 둘을 데리고 행랑채에 들었었다. 아홉 살 난 큰애를 굶기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어멈이 어느 연줄을 통해 강화로 보내 버렸다는 말을 듣고 아비는 슬피 우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화수분은 형이 발을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추수하러 고향인 양평으로 간다. 시골로 가서 형 대신 일을 심하게 한다. 그는 과로가 겹쳐 몸져눕게 된다. 열이 펄펄 끓게 되어 아주 정신없이 앓는다. 그리고 강화로 보낸 딸 이름을 수없이 부르며 슬퍼한다.

  한편, 어멈은 남편이 쌀말이라도 해 가지고 올 것을 기다렸으나, 추운 겨울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자 어린것을 업고 남편을 찾아 길을 떠난다. 마침 화수분도 어멈의 편지를 받고 아내와 딸을 데려와서 굶어도 같이 굶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형 집안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길을 떠나 서울로 향한다. 날씨는 살을 에는 추위였다. 백 리를 걸어서 해가 질 무렵이 되었을 때 화수분은 어떤 높은 고개의 소나무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희끄무레한 물체를 발견한다. 어멈과 딸 옥분이었다. 어멈은 눈을 떴으나 말을 못했다.

  이튿날 아침 나무장수가 지나가다가 그 고개에서 화수분과 그의 아내가 서로 껴안은 채 얼어죽은 것을 발견했다. 그 가운데 막 자다 깬 어린애가 등에 따뜻한 햇볕을 받고 아직 살아 있었다. 두 사람의 따뜻한 체온이 어린것을 감싸 준 것이다. 나무장수는 그가 몰고 가던 황소의 잔등이에 어린것만 싣고 떠나 버린다.』


  『첫겨울 추운 밤은 고요히 깊어 간다. 뒤뜰 창 바깥에 지나가는 사람 소리도 끊어지고, 이따금 찬 바람 부는 소리가 '휙 - 우수수'하고 바깥의 춥고 쓸쓸한 것을 알리면서 사람을 위협하는 듯하다.

  "만주노 호야 호오야"

  이 소설은 해설자격인 '나'가 주인공인 화수분과 그의 가족에 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겨울 어느 추운 밤, 남편은 잠결에 행랑에 세들어 있는 행랑아범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이튿날 알아보니 며칠 전 그의 아내가 큰애를 남의 집에 주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데리고 있으면 굶어죽을 판이었다. 아범의 이름은 화수분이며 양평의 부자였었다. 그런 며칠 후 화수분은 주인에게 휴가를 얻어 시골로 내려가나,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세 살 먹은 아이를 데리고 사는 그의 아내는 목이 빠져라 기다리다가, 주인에게 화수분의 주소를 얻어 편지를 했으나 화수분에게선 소식이 없다. 어느 추운 날, 어멈도 뒤따라 내려갔다. 후에 우리는 동생 s에게서 그 뒤의 화수분의 소식을 들었다

  한편, 시골에 내려간 화수분은 형 대신에 일을 하다가 과로하여 몸져눕게 되었는데  아내의 편지를 받고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러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길을 떠난다. 살을 에이는 추위 속에 산을 넘던 화수분은  아내와 딸을 보았다. 화수분은 와락 달려들어 껴안았다.

  이튿날 아침 길을 지나던 나무장수가 젊은 남녀의 껴안은 시체와 아이를 발견하고 어린아이만 소에 싣고 갔다.』


  『밤새 행랑아범이 울고 있다. 행랑아범 ‘화수분’은 금년 구얼 아내와 어린 계집 둘을 데리고 우리 집에 들어온 순박한 일용노동자로 우리집에 세 들어 있다. 그는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적에는 양평에서 벼를 백 석이나 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맏형도 죽으면서 가산이 기울어 할 수 없이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 행랑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의 아내는 우리집의 일을 거들고, 그는 막벌이를 나가지만, 한푼도 못 벌고 돌아오는 날이 많아서 굶는 날이 더 많았다. 근처에 있는 쌀가게의 주인마누라의 주선으로 어느 낯선 여인에게 딸을 주고 만다. 굶기느니보다 차라리 주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한 일이었는데, 밖에서 돌아온 화수분이 어린 자식을 생각하며 울었던 것이다.

  며칠 후 아침, 화수분은 갓을 쓰고 길 떠날 차비를 차린다. 시골에 있는 형 ‘거부’가 일을 하다가 도끼에 발을 다쳐 가뜩이나 흉년에 일을 못해 굶어죽을 지경이니, 화수분을 내려오도록 해서 가기로 한 것이다. 추수나 해 주고 돌아오겠다는 화수분을 보내면서 나는 그의 아내의 생계가 걱정이 돼서 겨울을 나지 말고 돌아오라고 당부했다. 화수분이 간 지 보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쌀말이라도 가지고 올 것으로 기다리는 아내는 입동이 지나고 추운 겨울이 되자 시골로 내려가겠다고 하며, 그에 앞서 편지를 대신 써서 보내달라는 부탁에 나는 편지를 써서 부쳐주었다.

  드디어 바람이 추운 날 아침, 어멈은 아이들을 데리고 행랑방을 한번 둘러보고는 길을 떠났다. 혼자서 김장을 마친 내 아내는 화수분 일가의 불쌍함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 동대문 밖에 출가해 사는 동생 S가 놀러와서 화수분의 소식을 전했다. 화수분이 시골에 간 후 그의 형 거부가 거동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두 사람 몫의 일을 하다가 몸살이 나서 쓰러진 후에도 남에게 준 자식 이름을 부르면서 소리내어 울더란 것이다. 그럴 때 그는 어멈의 편지를 받았다. 그는 행장을 차려입고 사람들이 말리는 것도 뿌리친 채 길을 나섰다. 화수분이 양평에서 해 저물 무렵, 어떤 높은 고개를 올라서서 내려다보니, 소나무 밑에 옥분이와 그 어멈이 웅크리고 있었다. 화수분이 가서 달려들어 안았으나, 눈은 떴어도 말을 못했다. 거기에서 밤을 지샜던 탓이었다.

  이튿날 아침 나무장수가 지나다가 그 고개에 젊은 남녀의 껴안은 시체와 그 가운데 아직 막 자다 깬 어린애가 등에 따뜻한 햇볕을 받고 앉아서 시체를 툭툭 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어린것만 소에 싣고 갔다.』

【감상】

  이 소설에서 가난한 '화수분' 내외가 죽음을 맞게 되는데 그 죽음은 서로의 체온을 나눈 사랑의 정점(頂點)이다. 그리고 어린아이는 살아남는다. 따라서, 이 소설은 가족의 비극을 다루되 인정적(人情的)으로 해결하고자 한 작품이며 바로 이것이 작가의 인도주의(人道主義) 정신일 것이다.

  이 소설은 '화수분' 일가의 가난과 고통, 그리고 그로 인한 비극을 '나'가 화자가 되어 독자에게 보여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전체적으로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이지만, 부분적으로는 '어멈'의 시선을 빌리기도 하고 시집간 누이 'S'의 시선을 빌려 전달하기도 한다.

  이 소설은 비극적 정조(情調)를 바탕으로 한다. 그 정점은 역시 결말에 놓여 있는데, 남편을 찾아 나섰던 '화수분'의 아내가 한겨울 추운 들판에서 어린 딸을 안은 채 죽어가고 있을 때, 집으로 돌아가던 '화수분'이 아내를 발견하게 되고, 결국 그들은 서로 껴안고 죽게 된다. 그러나 어린 딸만은 살아서 나무장수가 데려간다.

  즉, '화수분' 일가의 비극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절망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러한 마지막 체온(體溫) 덕분이다. 비참한 사람들의 삶에서 취재하되 그들의 따뜻한 인간미를 놓치지 않으려는 작가 정신 ― 이것은 인도주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역시 이 작품은 비극이다. 그 '어린 것'의 일생이 또 다른 고난의 역정일 것임을 독자는 문득 예감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가난'인지도 모른다. 자식을 남에게 주어야 할 정도의 궁핍한 삶, 또 그래서 남의 손에 넘어가는 자식(큰애)의 반응, 이 때문에 심한 갈등을 느끼는 '화수분' 내외……. 이 모든 정황이 소설의 주제와 구조를 이루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가난'이 직접적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들의 삶의 모습이 서술될 뿐이며, 그것도 '나'에 의해서 거리감을 두고 '관찰'되고 있다. 그리고 그 '가난' 때문에 '화수분'이 성격 파탄에 이른다거나 더 타락한 상황에 이르지도 않는다. 그에게 있어 가난은 그의 모습이 초라하듯이 늘 숙명처럼 붙어 다니는 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가난이 삶의 양상을 바꾸어 놓는다는 식의 환경 결정론적 해석은 이 작품에 적용하기 힘들다. 부분적으로 두 딸의 성격적 결함이 가난 때문임이 암시되지만, 그 딸이 이 작품의 주조음(主調音)이 아니고 '철부지'로서의 성격이 두드러지므로 환경에 의한 인간적 손상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궁핍한 환경 속에서 굶주리다가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화수분 일가의 가족 비극을, 나를 서술자로 하여 흥분하지 않고 차분한 필치로 그려나가는 전영택의 대표작이다. 당시 신경향파 작가들이 즐겨 다루던 극빈과 비참한 생활이라는 소재였음에도 작자 스스로의 느낌을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인간의 원시적인 온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일정한 반어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화수분'은 재물이 자꾸 생겨서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다는 단어 자체의 의미와 주인공이 처한 비참한 생활이 대비되면서 비극적 결말로 처리되고 있다. 통일된 인상, 경이적 모멘트, 적확한 묘사, 치밀한 구성이라는 단편 소설의 특징이 모두 나타나 있으며  묘사보다는 서술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묘사도 부분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사실성 확보를 위한 것이다. 마지막 햇빛 속에 살아 움직이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비극적 묘사 속에서도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즉 부활의 상징이다. 이런 것들에서 그의 인도주의 정신이 표면화된다.

  지식인인 '나'가 문간방에 세 들어 사는 행랑아범(화수분)과 그 가족의 비참한 삶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특히 화수분 내외의 사람됨과 그들의 삶을 아주 객관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자연주의적 사실주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화수분’ 일가의 가난과 고통, 그리고 그로 인한 비극을 ‘나’가 화자가 되어 독자에게 보여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전체적으로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다만, 부분적으로 ‘어멈’의 시선을 빌리기도 하고, 시집 간 누이 ‘S'의 시선을 빌려 전달하기도 한다. 이 같은 시점의 혼란은 화수분의 비극적인 죽음을 강조하여 비참한 현실을 드러내려 한 작가 전영택의 의도이기도 하지만, 단편소설에 특히 요구되는 형식의 통일성에 미흡하다는 비판도 불러일으킨다.

  이 소설은 비극적 분위기를 바탕으로 한다. 그 정점은 역시 결말 부분에 놓여있는데, 어린 딸을 안은 채 죽어 간 부부의 죽음은 서로의 체온을 나눈 사랑의 정점이다. 그리고 어린아이는 살아남는다. 따라서, 이 소설은 가족의 비극을 다루되 인정적(人情的)으로 해결하고자 한 작품이며, 바로 이것이 작가의 인도주의 정신일 것이다. 즉, 화수분 일가의 비극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절망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화수분과 어멈의 마지막 체온 덕분이다. 비참한 사람들의 삶에서 소재를 얻되, 그들의 따뜻한 인간미를 놓치지 않으려는 작가 정신, 이것이 바로 인도주의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 작품은 비극이다. 그 ‘어린것’의 일생이 또 다른 고난의 역정이 되리라는 것을 독자는 예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것’은 분명 작가가 보여주려 한 따뜻한 인간애의 상징물이며, 삶의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희망의 존재물이다.

  ‘화수분’이란 이름은 ‘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라는 뜻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찢어지게 가난한 주인공을 가리킨다. 즉, ‘화수분’은 반어적(反語的) 명명법에 의해 붙여진 주인공의 이름인 것이다. 이러한 반어적 명명법은 김동인의 소설 <감자>에서 주인공 ‘복녀’에 해당한다. 이러한 반어가 이 작품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가난’이라 할 수 있다. 자식을 남에게 주어야 할 정도로 궁핍한 삶, 또 그래서 남의 손에 넘어가는 자식의 반응, 이 때문에 심한 갈등을 느끼는 회수분 내외, 이 모든 정황이 소설의 주제와 구조를 이루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가난이 직접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들의 삶의 모습이 서술될 뿐이며, 그것도 ‘나’에 의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찰된다. 그리고 가난 때문에 화수분이 성격 파탄에 이른다거나 더 타락한 상황에 이르지도 않는다. 그에게 가난은 그의 모습이 초라하듯이 늘 숙명처럼 붙어 다니는 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가난이 삶의 양상을 바꾸어 놓는다는 식의 환경 결정론적 해석은 이 작품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즉, 이 작품은 당시의 신경향파 작가들이 즐겨 다루는 소재를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 스스로의 느낌을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우리에게 인간에 대한 본능적인 애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화수분 일가의 삶은 참으로 비참하다. 왜 이렇게 가난하게 살게 되었을까? 물론 게을러서가 아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범은 밝기도 전에 지게를 지고 나갔다가 밤이 어두워서 돌아오지만, 하루에 두 끼니를 제대로 못 끓여먹고, 대개는 벌이가 없어서 새벽에 나갔다가도 오정 때나 되면 일찍 들어온다.”

  그 까닭은 이제 식민지 시대 우리 민족의 삶이 모두 이러했기 때문이다. 1920년대 한국 사회는 이본의 수탈이 점점 가속화되면서 날로 궁핍에 시달려야 했다. 화수분은 이러한 당시의 궁핍한 현실 속에서 나타난 행랑살이 계층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소설은 화수분 일가의 가난을 그리고 있지만, 거기서 멈추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사라질 수 없는 부모의 사랑과 인간애를 보여준다. 너무 가난해서 낯선 부인에게 건네준 큰딸을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이나, 마지막 장면에서 어린 딸을 보듬어 안고 얼어죽는 화수분 부부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따라서 이 작품은 한 가족이 가난 때문에 겪게되는 비극을 그리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애의 아름다운 감동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부부의 죽음 뒤에도 살아남는 어린아이를 통해서 작가는 어쩌면 고난의 시대를 이겨내고 새 세대의 희망을 키워갈 수 있다는 뜻을 드러내고 싶어했는지 모른다.


  1920년대의 서울과 시골이 배경이고 서울서 행랑살이를 하는 두 아이의 아버지인 순박하고도 약간 머리가 둔한 30여 세의 남자, 그의 이름이 화수분이다. 화수분은 보통명사로서는 보물그릇을 말한다. 써도 없어지지 않고 자꾸 불어나는 그런 전설적인 그릇을 말한다. 가난한 부모가 아들이 잘 살라고 지어 준 이름이다.

  화수분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가난에 시달려 서울서 행랑살이를 하는 화수분은 가난을 이기지 못해 시골 형네집으로 일하러 떠난다. 눈 내리는 어느 겨울, 문득 가족을 그리며 화수분은 서울을 향해 떠난다.

  한편,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서울서 날짜조차 회계할 줄 모르는 시골 여인인 그의 아내는 애기를 업고 시골로 떠난다, 어느 고개 밑에서 가족이 상봉한다, 이들 가족은 추위에 얼어죽고, 아기만 살아남는다.

  주제가 부부애인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줄거리나 주제에 있지 않고, 시점의 단일성과 편집자적 논평의 제거에 있다. 여기서 시점의 단일성이란 1인칭 관찰자로서의 그것을 뜻하며, 편집자적 논평의 회피란 작가가 개입하지 않은 점이다. 그러나 끝에 전지적 시점으로 인하여 전체적 통일이 깨어져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교훈】

  늘봄 전영택은 목사이면서 소설가로 염상섭, 김동인 등과 함께 1920년대 자연주의적 소설을 쓴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기독교적 신앙과 인도주의적 경향이 뚜렷하며, 여기에 소개하는 <화수분>은 김동인의 <배따라기>,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와 함께 그러한 자연주의 소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1920년대 우리 나라 소설들을 읽어보면, 그 때 사람들의 삶이 참으로 어려웠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더러, 오늘날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하게 살면서도 그 가난에서 헤어날 방법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들게 된다. 이 소설은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소설로, ‘화수분’이라는 행랑아범 가족의 비극을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그려나가, 살기가 어려워 어린 딸을 남에게 준다든지, 끝내는 일가족이 추위 속에 얼어죽는 대목에서도 작가 스스로의 느낌을 전혀 나타내지 않고 있어 오히려 더욱 처연(凄然)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화수분>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끝맺고 있다.

  ‘이튿날 아침에 나무장수가 지나다가 그 고개에 젊은 남녀의 껴안은 시체와 그 가운데 아직 막 자다 깬 어린애가 등에 따뜻한 햇볕을 받고 앉아서 시체를 툭툭 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어린것만 소에 싣고 갔다.’

  ‘화수분’이란 말의 뜻은 ‘재물이 자꾸 생겨서 써도 줄지 아니함’이다. 이 이름의 의미는 물론, 반어적(反語的) 표현이다. 당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살기 어려웠는가를 이 소설에서도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그들(화수분과 그 아내)에게는 지금 입고 있는 단벌 홑옷과 조그만 냄비 하나밖에 아무 것도 없다. 세간도 없고, 덮을 이부자리도 없고, 밥 담아 먹을 그릇도 없고, 먹을 숟가락 한 개가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보기 싫게 생긴 딸 둘과 작은애를 업는 홑누더기와 띠, 아범이 벌이하는 지게가 하나, 이것뿐이다. 밥은 우선 주인집에서 내어 간 사발과 숟가락으로 먹고, 물은 역시 주인집 어린애가 먹고 비운 ‘가루 우유통’을 갖다가 떠먹는다.’

  참으로 비참한 생활이다. 왜 이렇게 가난하게 되었을까? 김동인의 <감자>에서는 남편이 게을러서 가난하게 되었는데, 화수분 내외는 그렇지도 않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일거리가 없어서 굶는 것이다. 일제 식민지하의 우리 민족의 삶이 바로 이러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그 원인을 찾고 비판하기보다는 어려운 처지에서도 인정을 지닌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화수분이나 그 아내나 마음씨가 곱고 겸손한 사람들이다.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큰딸을 남에게 주고 밤새도록 섧게 우는 아버지의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특히 추운 겨울에 길가에서 부부가 서로 껴안고 죽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비극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