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여자의 일생(Une Vie)
폴덴느마르 그 이름은 아버지가 지금도 폴 그놈이라고 부르면서 얘기하는 사람인데
그의 아내와 어머니는 제일 친한 사람이었다.
잔은 별안간 그 편지들을 집어 던지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심정을 느꼈고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잔은 사랑하는 어머니에게까지 실망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이윽고 잔은 더럽게 느껴지기만 하는 편지들을 난로 속에 집어 넣어 버렸다.
남작은 장례식이 끝난 지 얼마 후에 루앙으로 돌아갔다.
어린아이 폴이 병이 났다.
잔은 열 이틀 동안 한잠도 못자고 거의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지냈다.
폴은 나았으나 잔은 앞으로도 아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죄이는 것만 같았다.
아이가 하나 더 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딸을 이 생각은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로잘리의 사건이 있은 후로 잔은 줄리앙과 별거하고 있었다.
그런데다 남편에게는 정부가 있었다.
잔은 남편의 애무를 받기가 몸서리나도록 싫었다.
어느 날 잔은 아베 피코 신부를 찾아갔다.
수줍은 낯으로 하소연을 하고 있으니 신부는 싱글싱글 웃었다.
"잘 알겠습니다. 부인께서는 아직 젊으시고 몸도 건강하시지요.
잘 알겠어요. 줄리앙 씨를 만나 보겠습니다"
신부가 자상하게 마음을 써 주었지만 잔은 부끄러운 나머지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불안한 1주일이 지났다.
어느 날 저녁 식사 시간에 줄리앙이 이상한 주름을 입가에 띄면서 아내를 바라보았다.
식사가 끝나고 산책을 하는 동안 줄리앙은 아내의 귓전에 속삭였다.
"이제 아마 우리는 화해를 한 것 같군. 나로선 마침 잘 되었어"
잔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기가 모든 인간으로부터 멀리 격리되어 있는 것 같은 슬픔의 가슴을 억눌렀다.
오열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잔은 남편의 가슴에 쓰러지면서 울었다.
놀란 줄리앙은 아내가 아직도 자기를 사랑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잔의 목덜미에 키스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옛날 관계로 돌아갔다.
남편은 그 일을 의무처럼 해치웠으나
잔은 가슴이 느글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참고 견디었다.
이번에 임신한다면 그것을 최후로 영원히 줄리앙과 잠자리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그러나 잔은 남편의 애무가 그 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남편에게 그런 얘기를 했더니 그는 내뱉듯이 말했다.
"임신시키지 않기 위해서지"
"어머나 왜 애가 싫어요?"
"체! 하나면 그만이야 귀찮기도 하고 돈도 들고..."
다시 잔은 신부한테 갔다.
신부는 마치 단식한 사나이의 식욕과도 같은 호기심으로
꼬치꼬치 캐묻더니 한참 생각한 끝에 말했다.
"수단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부인이 임신했다고 믿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번엔 정말 임신하실 걸요"
잔은 눈 속까지 새빨개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만일 제 말을 믿지 않는다면...?"
"이웃에 소문을 내십시오. 결국은 주인께서도 믿을 테니까"
사제는 인간을 잘 알고 있었다.
결과는 사제의 예상대로 되었다. 잔은 임신하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미칠 것 같은 환희에 넘쳐 어머니를 여윈 슬픔을 겨우 잊을 수가 있었다.
9월 하순에 아베 피코 사제가 새삼스러운 태도로 찾아왔다.
고르데빌의 수도원장으로 영전하게 되어 후임의 젊은 사제를 소개했다.
아베톨비악은 마르고 키가 작은데다 눈이 침울해 보여서
대단히 엄한 사람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이 신임 사제는 준엄하고 매서운 개혁을 단행하기 시작했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경멸 인간 만사에 대한 혐오 무경험에서 오는 옹졸함
이러한 모든 것이 그를 순교자처럼 보이게 했다.
그러나 사제는 결국 모든 마을 사람들이 싫어하게 되었다.
절교하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게 격해서 성욕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마을 사람들은 서로 아니꼬운 시선을 교환하는 것이었다.
사제는 차츰 밀렵자를 쫓아다니는 산지기처럼
정부들끼리 밀회하는 것을 감시하고 방해를 놓고 해서
젊은 사람들은 아무도 미사에 나가지 않게 되고 말았다.
줄리앙은 거의 매일 푸르빌 백작 집에 출입했다.
이제는 줄리앙 없이 지낼 수 없게 된 백작과 함께
사냥을 하기도 하고 백작 부인과 승마를 하기도 했다.
남작은 11월 중순경에 다시 잔의 집으로 돌아왔다.
골수에 사무친 슬픔 때문에 더 늙고 수척했다.
겨울도 다갈 무렵의 어느 날, 아베 톨비악 사제가 찾아왔다.
그는 줄리앙과 질베르트와의 정사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래, 부인은 어떻게 하실 작정이신가요?"
"사제님께선 어떻게 하면 좋다고 생각하세요?"
"한사코 이 죄를 막아야 합니다"
잔은 눈믈이 쏟아졌다.
"그렇지만 제 남편은 제 말 같은 건 들어 주지 않아요.
심부름하는 계집애를 상대해서 저를 배신할 일도 있답니다.
전 도저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요"
"부인께선 그러고도 한 사람의 아내라고 생각하시는가요?
신앙이 있는 여성이신가요?
눈앞에선 죄를 저지르는 걸 보고서 모른척 하시다니
비겁한 마음이 부인께 지혜를 주고 있습니다.
부인은 천주님의 은총을 받을 만한 분인 못되는 줄 압니다"
"아, 사제님! 부디 저를 저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말씀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푸르빌 씨의 눈을 뜨게 하십시오.
이 관계를 끊는 것이 그분의 할 일이거든요"
잔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아녜요. 그러다간 그가 두 사람 다 죽이고 말아요!"
"그렇다면 부인은 언제까지라도 치욕과 죄악 속에 머무르는 수밖에 없군요.
저는 이 이상 이런 데 있을 수가 없소"
사제는 잔을 저주하는 듯 들고 있던 우산을 쳐들고 잔뜩 화를 낸 채 돌아갔다.
질베르트와 줄리앙은 말을 타고 다니는 산책 도중에 늘상 사제의 모습을 보았다.
어떤 때는 들녘 끝이나 낭떠러지 위에 검은 점처럼 보일 때도 있고
때로는 두 사람이 들어가려고 하는 계곡에서 기도책을 탐독하고 있을 때도 있었다.
'━━ 감성을 위한 ━━ > 세계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9.여자의 일생(Une Vie) (0) | 2009.06.29 |
---|---|
8.여자의 일생(Une Vie) (0) | 2009.06.28 |
6.여자의 일생(Une Vie) (0) | 2009.06.26 |
5.여자의 일생(Une Vie) (0) | 2009.06.25 |
4. 여자의 일생(Une Vie) (0) | 2009.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