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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히틀러와 처칠, 리더십의 비밀

Joyfule 2021. 1. 22. 11:36




  CEO 히틀러와 처칠, 리더십의 비밀

   2008/01/25 01:00  http://blog.naver.com/plht/90027058492  

 

 권위적인 리더십 ‘히틀러' vs 영감을 주는 리더십 ‘처칠'

이 책은 세기의 라이벌이라 할 만한 20세기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와 윈스턴 처칠의 처칠의 리더십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있다.

두 사람의 성격, 행동 양식, 리더 십의 특징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왜 한 사람은 승자가 되었고, 또한 사람은 패자가 되었는지 분석한다.


책은 크게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해를 기점으로 '1939년까지의 히틀러와 처칠' 그리고 처칠이 총리에 취임하며 권력의 전면에 나서는 '1940년 이후의 히틀러와 처칠 ' 이렇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시대적인 구분을 통해 전쟁의 진행상황과 함께 이를 해결해가는 두 사람의 상반된 모습을 묘사해간다.

히틀러는 한마디로 '카리스마형 리더'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사람을 응시하는 시선부터 말하는 태도, 웅변 스타일까지 그의 말과 행동 하나 하나는 모두 끊임없는 노력과 조작을 통해 이루어졌다. 극적인 선동과 연출을 즐기면서 그는 '국민들의 총통‘ 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그러나 처칠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전란의 폐허가 된 거리에서 그는 눈물을 떨구었고, 전시 총리 시절에도 런던 거리를 활보할 만큼 친근하며, 마음과 가슴이 따뜻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히틀러가 '자신'을 믿을 것을 강요했다면, 처칠은 '우리 모두의 힘이 우리를 살린다'고 연설했다.

둘의 상반된 리더십 성향은 자기관리 능력, 국민을 대하는 태도, 인사관리, 참모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태도 등 전쟁의 모든 상황 속에서 다른 방향으로 표현된다. 히틀러의 '강한 카리스마 리더십' VS 처칠의 '마음으로 대하는 리더십'. 둘의 싸움은 역사가 말해주듯이 처칠의 승리로 끝을 맺는다.

 히틀러와 처칠에게서 배우는 리더십의 기술

이 책은 히틀러와 처칠의 리더십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름한 여러가지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올바른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히틀러와 처칠은 끈기 있게 비전을 추구한 끝에 추종자를 얻을 수 있었다. 비전의 제시는 리더십의 절대 요소이다.

당시 처칠의 비전은 문명화된 가치 위에 강력한 대영제국을 건설하는 일이었다. 이에 비해 히틀러의 비전은 비현실적이고 사악했지만 그 시대 독일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히틀러는 부정적인 공격 대상을 주입시켜 국민들에게 적개심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을 이용해 더 높이 도약할 수 있었다.


둘째, 인위적 카리스마가 아니라 진정한 영감을 소유한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히틀러는 정치적 성공과 더불어 스스로 숭배의 대상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카리스마를 갖게 되었다. 히틀러의 강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의 원동력은 권력욕이었다. 그러나 처칠은 지도자가 국민들을 감화시키는 데 있어 반드시 카리스마나 강력한 권력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입증했다.

히틀러를 만난 독일 국민들은 그가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그러나 처칠을 만난 사람들은 스스로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진정한 영감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카리스마를 능가하는 법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셋째, 옥석을 가릴 줄 아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훌륭한 지도자라면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에 못지않게 적합하지 않은 인재는 과감히 제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처칠은 자신이 임명한 사람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무자비하게 대했다.

예컨대 처칠은 총리가 되자 오랜 친구이자 정치적 동료인 밥 부드비를 식품부 차관에 임명했다. 그러나 얼마 후 부드비가 추문에 연루되자 처칠은 옛 친구를 불명예 퇴진시켰다. 개인적인 친분보다 정부의 입장을 우선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반면에 히틀러는 처신에 문제가 있어도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에게는 놀랄 만큼 관용을 베풀었다. 경호대장 부루노 게세의 경우가 그 예이다. 게세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실제 만취 상태에서 심각한 총기 사건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그러나 게세는 전쟁이 종결되기 4개월 전까지도 총통 경호대에서 축출되지 않았다. 히틀러와 고락을 함께한 유일한 옛 동지라는 점 때문에 용케도 문책 한번 당하지 않고 버텼던 것이다.

공군 수장 헤르만 괴링 역시 히틀러의 동지애가 지나쳐서 문제가 된 사례다. 그는 공군 수장이라는 막중한 직책을 맡기에는 능력 밖의 인물이었다.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무능하고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자격 미달자는 해임해야 마땅하지만 히틀러는 그러지 않았다.

그에게는 관료로서의 전문성이나 도덕성보다는 자신에 대한 충성심이 더 중요했다. 히틀러가 지도자로서 실패한 이유는 충성심 하나만 보고 부적격자를 측근에 두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우수한 사령관을 제거해버렸기 때문이다.


넷째, 책임을 인정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지도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 모든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때도 처칠은 순순히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다.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비난의 화살을 받아들이는 데 도가 통해 있었다.

그는 저서 <나의 반생>에서 당시의 소감을 이렇게 술회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비난의 돌을 던졌다. 그들은 거의 언제나 그랬다. 아마 내가 그 돌을 맞아도 잘 견뎌낼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와 반대로 히틀러는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그 이유를 끊임없이 남의 탓으로 돌렸다. 히틀러는 먼저 자신의 천재성을 무시하는 장군들 그리고 독일 국민 전체에 책임을 전가했다.

그는 또 문서에 직접 서명하거나 지시하는 일이 없었다. 대부분 비서를 통해 처리했는데,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어떤 일이 잘못되거나 그 일과 관련해 불명예스런 일을 당하더라도 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극단적인 차이는 처칠이 국민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려고 폭격 맞은 런던 거리를 활보했던 데 비해 히틀러는 단호하게 거절했던 사례를 비교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히틀러가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한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1940년 8월 8일, 처칠은 런던 이스트 엔드의 잿더미가 된 거리를 보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목격한 동네 여인은‘처칠 총리가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는 것 같았다'고 전한다. 그 모습을 본 행인들은 일제히 처칠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다섯째,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저자는 물러날 때를 아는 것도 리더십 기술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처칠은 20세기 정치인들 대부분이 그렇듯 자리에 너무 연연했다고 지적한다.

"처칠은 1945년 전쟁에서 승리하고 정치적으로 정점에 있을 때 떠났어야 했다. 은퇴하여 차트웰에서 벽돌 쌓기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세계적인 속세의 성인으로 명성을 누리는 편이 현명했다. 지난 세기에 가장 위태로웠던 모험이 1945년에 완전히 종결된 후 1951~55년까지 다시 한번 정권을 잡았지만 노동자에 대한 유화 정책, 동맥경화에 걸린 정치, 뒤바뀐 외교 정책, 과거에 대한 향수와 자기만족에 빠진 사회 분위기 때문에 처칠은 헐벗고 빈곤한 영국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히틀러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했던 처칠도 떠나야 할 때를 놓쳐버려 옥에 티를 남기는 아쉬운 면을 보이고 말았다.

 
* Andrew Roberts 지음, 이은정 역, 휴먼앤북스 발행, 2003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