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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그리고 반미

Joyfule 2012. 3. 16. 11:16

 

 

 

[김수길 칼럼] 반미의 기억


[중앙일보]입력 2012.03.14 00:00 / 수정 2012.03.14 00:00

김수길 주필

내일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전 세계 45개국과 FTA를 맺고 교역하는 나라가 되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4월 칠레와 첫 FTA를 발효시킨 지 8년 만이다. 우리와 FTA를 맺은 나라에는 아세안 10개국과 유럽연합 27개국을 비롯해 스위스·노르웨이·인도·페루 등이 있다.

이에 더해 우리는 캐나다·멕시코·호주·터키 등 12개국과 FTA를 맺기 위해 협상 중이고, 중국·일본·이스라엘 등과는 FTA 협상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FTA는 벌써 이만큼 와 있다. 지난 8년 동안 대한민국이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일관되게 추진해 온 FTA는 이처럼 훌쩍 키가 커 있다. 이제 전체 교역의 35%를 국가 간 FTA에 따라 주고 받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대견한 일이다. 바로 세계 교역 질서의 흐름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기 위해 노무현 정부가 국가 미래 비전으로 선택했던 ‘동시다발 FTA 전략’의 현주소다.

 우리와 FTA를 맺은 45개국도 대부분 동시다발 FTA를 그네들의 국가 전략으로 삼고 있다. 그것이 세계 교역 질서의 흐름이다. 수많은 나라가 한데 모여 논의해 봐야 제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 ‘나라 대 나라’로 간 것이다.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현명한 선택을 했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유독 논란이 되고 있는 한·미 FTA에는 두 가지 고질적 문제가 섞여 있다. ‘개방이냐 아니냐’와 ‘반미냐 아니냐’다.
 개방이냐 아니냐를 놓고 우리는 그간 비싼 수업료를 치렀다. 그러면서 많이들 배우긴 배웠다.

 민감하기 짝이 없었던 쌀 개방을 보자.
 1992년 대선 때 김영삼 후보는 “대통령 직을 걸고 쌀 개방을 막겠다”고 공약한다. 표를 얻기 위해서였지 농업의 장래에 대한 비전은 없었다. 그러나 93년 11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 첫 발제 연설에 나선 그는 쌀 등 농산물을 포함한 ‘예외 없는 개방’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대통령이 발목을 잡힌 대가가 94년 7월부터 취득세·등록세 등에 얹혀진 농어촌특별세다. 2004년 6월까지 딱 10년 동안만 15조원을 거둬 농어업으로도 먹고살 만하고, 농어촌에서도 살기 좋게 하는 데 쓰겠다는 세금이었다. 공약의 부메랑을 납세자들이 감당했으나, 우리 농어업이 스스로 몰라보게 달라지지는 않았으며 농특세는 다시 10년을 연장해 2014년까지 거두게 되어 있다. 피할 수 없는 개방에 어찌 대처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비싼 수업료다.

 대한민국에서 ‘반미’가 본격적으로 표출된 계기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다. 한국군 작전권을 갖고 있는 미국이 진압군을 막지 않았다고 운동권이 분노한 것이다. 이후 반미는 미국의 개방 압력을 숙주로 더욱 커진다.

 87년에 미국은 우리더러 양담배를 수입하라고 압박했다. 이유는 하나,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과의 교역에서 한 해에 100억 달러씩 흑자를 내고 있던 우리가 담배시장을 닫아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역 규모가 커지면 어느 나라와도 마찬가지다.
 이젠 우리의 최대 수출 시장이 된 중국과의 2001년 ‘마늘 분쟁’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중국산 마늘 수입 약속을 안 지키자 중국이 한국산 휴대전화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일을. 양담배나 중국 마늘이나 같은 경우다.

 그런 것이 나라 간 교역인데, 아직도 유독 ‘반미’가 겹쳐 보이는가. 광주민주화운동 때문이라면 한국전쟁 때 개입한 중공군은 어찌 보아야 할까.

 ‘반미’를 빼고 스크린 쿼터 문제를 되돌아 보자.
 미국과의 협상에 따라 2006년 7월부터 국산 영화 상영일수를 크게 줄이면서 역시 반대가 거셌다. 울고 머리 깎고-. 그러나 요즘 한국은 자기 나라 영화 점유율이 50%를 넘나드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고, 최근에는 20세기 폭스사가 한국 영화에 본격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교역은 상대가 있고, 거기엔 반미·반중·반일이 없어야 하며, 개방은 우리 하기 나름이라는 ‘경험칙’을 갖고 내일 발효하는 한·미 FTA를 맞자. 그것이 노무현 정권 때 시작해 이명박 정권 때도 꾸준히 추진해 온 국가 비전이다.

 상황이 바뀌어 비전이 아니라면? 김정일의 마지막 유언이 영어였다는 2030식 우스개로 답을 하자.

  “Stay hungry, stay foolish.”

 “갈구하라, 무모하라”라는 스티브 잡스의 명 연설이 “바보처럼 어렵게 살아라”로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