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 희망」에 나오는 우화 한 토막
땅에 기어 다니는 애벌레가 늘 자기 신세를 한탄했다.
나는 이 먼지 속에 늘 코를 쳐 박고, 모든 더러운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땅바닥을 기어다니며 평생 살아야 하다니... 왜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가?
걸어 다니는 짐승들을 보니 부러웠고,
뛰어다니는 짐승을 보면 흠모의 대상이었고,
더욱이 하늘을 훨훨 나는 짐승들을 보면.. 몹시 부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애벌레들이 어디를 향해 큰 행렬을 지어 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당신들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가는가?”
“매우 중요한 데로 가고 있다네!”
그 애벌레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 애벌레 떼의 행렬을 앞질러 쫓아가보았다.
그랬더니 애벌레들이 한 우람한 나무를 타고 줄지어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는 주위의 애벌레들에게 물어보았다.
“저 위에 뭐가 있는데?”
“굉장히 중요한 것이 있데!”
애벌레들은 한 발짝이라도 먼저 가기 위해, 서로 남을 밀치고 아귀다툼하였다.
그 애벌레는 자기도 모르게 동화되어, 자기도 남을 밀치고 당기고 싸웠다.
그 노력의 결과인지, 이제 자기도 나무에 올라가는 대열에 겨우 서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애벌레들과 한참 올라가는데, 내려오는 행렬을 만나게 되었다.
“저 위에 뭐가 있더냐?”
“가 봐야 아무 것도 없다네!”
그러자 동료 애벌레가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았다.
“자기는 구경할 것 다 구경하고, 가질 것 다 가지고,
누릴 것 다 누리고 나서, 말로는 아무 것도 없다고 그래!”
그 애벌레는 동료들과 함께 계속 위로 꼭대기까지 애를 쓰고 올라갔다.
정말 꼭대기 정상까지 가 보니 거기엔 아무 것도 없었다. 빈 하늘 밖에 없었다.
그래서 허탈하게 내려오는 길에
용을 쓰며 올라오는 여러 애벌레들의 행렬과 자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저 위에 뭐가 있더냐?” 그들이 물었다.
“위에 올라가봐야 헛수고다. 아무 것도 없다던데, 사실이더라” 그가 대답해 주었다.
그래도 땀을 뻘뻘 흘리며 나무 둥치를 기어 올라오는 애벌레들은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이 애벌레는 절망적인 자기 인생을 깊이 묵상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나뭇가지에 자기 몸을 누이고 고착시켰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자기 내면을 깊숙이 살피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자기 몸에 고치(캡슐, cocoon)가 덮이기 시작했다.
그는 그 속에서 더 깊은 묵상을 하며, 그 모든 시간을 인내하며 견뎠다.
그랬더니 그 못생긴 애벌레가 변해서, 어느 날 찬란한 호랑나비가 되었다.
그 호랑나비는 이곳저곳 꽃들을 돌아다니면서
꽃들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애쓰고 수고해서 계속 위로 올라간다. 계속 소유를 쌓는다.
그런데 올라가 본 사람은, ‘위에 가면 아무 것도 없다’고 아무리 외쳐대도
밑에서 아귀다툼하며 올라오는 사람들에게는, 그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저는 가져 봤으니 하는 소리야!’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한 단면이라는 것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우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