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 像 - 시인 정한모가 시인 김남조에게
주검 옆에 마련된 목숨 속에도
달밤이면 부푸는 숨결이 있었다고
어느 가슴 있어 기억이나 해줄 것인가 - 남조 -
주검이 바다처럼 발 밑에 내려다 보이는
목숨의 종점에서
무거운 어둠 속
멀리 한줄기 별빛으로 영롱하는 밤의 창 같이
시와 목숨과 사랑을 그렇게도 알뜰히 말해주던
그 까아만 눈이며
거친 바람 속
수정져 가는 대리석처럼
미운 것이 더 많은 이 세상에서
꿈과 미소와 달밤을 그처럼 청초히 거느리고
곱게 가슴 앓던 하아얀 얼굴
하늘과 성좌와 영원 같은 것
바닷가 모래알 헤여보는 마음으로 생각도 해보면서
또한 이렇듯 목숨의 강인함을 노래하면서
이름 지을 수 없는 그리움 속에 이루어가던 너의 성전.
열화같이 달아오르는 흥분의 절정. 그런 어지러움 속에서
문득 머무는 내성의 고요한 일각
물농울처럼 퍼져나갈 여운과 가능이 멈추는
이 생명의 핵심일 수 있는 동글아미 속에 자리하고
안윽히 웃고 있는 얼골.
53년 6월 8일 정한모
발신 | 정한모
시인 겸 국문학자. 서울대학교 문리대 교수
시집으로 [카오스의 사족(蛇足)] 등이 있으며, [현대작가연구] 등의 평론집이 있다.
수신 | 김남조
시인. 숙명여자대학교 교수(1955~1993)와 한국시인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을 역임
대표작으로 [목숨], [나아드의 향유], [나무와 바람], [정념의 기], [풍림의 음악], [겨울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