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와 세로 - 徐相祿
어제 백두대간의 강원도 줄기에 속하는 금대봉 분주령으로 트레킹을 갔다.
여행사를 따라나선 길이었다. 서울 하늘은 찌뿌듯했지만 비는 오지 않았는데 이곳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우리가 걷는 분주령 길은 여기 저기 이름 모를 들꽃들이 피어있는 아늑한 숲길이었다. 우산 없이 비옷만 입은 채로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걸으니 후줄근한 해방감이 담긴 야릇한 운치가 있었다.
숲을 두드리는 빗소리 장단이 운치를 더해 주었다. 숲길을 밟는 한 걸음 한 걸음에서 재미가 느껴졌다. 참 오랜만에 해보는 우중 트레킹이다. 즐거웠다.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내 생각의 물레방아를 돌려주었다.
'삶이란 이렇게 한걸음 한걸음씩을 내딛는 과정의 길이야. 이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즐거움을, 행복을 느껴야 한단 말이야. 삶은 과정 안에 진리를 품고 있어. 차라리 삶이란 그 과정 자체가 목표야!' 나의 생각하는 버릇은 여기까지 미쳤다.
인간은 비슷하게 태어난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달라진다. 살아가는 한 과정 한 과정의 노력과 학습이 인간을 서로 다르게 만든다.
갑자기 생각이 미쳐 집에 와서 논어를 들쳐보니 이런 구절이 있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는 별로 차이가 없으나 후천적으로 큰 차이를 만들어 간다 (性相近也 習相遠也).>
아하! 내 생각은 내 것이 아니라, 전에 읽은 공자논리의 상기에 불과했구나.
우리는 가끔 이렇게 자기의 생각이 알고 보니 이미 선인들이 밝혀놓은 진리 안에서 맴돌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동양의 고전을 남과는 꽤나 다른 순으로 읽었다.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대 전반에 장자에 심취하였고, 사십대 후반에 노자도덕경에 빠져들었다.
나는 보다 젊었을 때, 때로는 호방하고 때로는 방자했다. 삶의 통상적인 법도랄까 규범을 무시 할 때도 많았다. 그러다가 사십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삶의 순리를 조금씩 배우고 깨닫게 되었다.
나는 60대 초반, 그러니까 인천전문대학 학장 시절에 논어를 처음 읽었다.
나는 그때서야 처음으로 세상살이의 규범이랄까 신사도의 가르침에 접한 것이다. 나는 동양의 고전들을 역순으로 읽은 셈이다. 논어를 먼저 읽었어야 세상살이의 기본 규범을 일찍이 알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내 삶의 시행착오도
적었을 텐데.
나는 직장을 내발로 걸어 나오고 내발로 들어가기를 여덟 번 했다. 미국유학도 늦깍기여서 사십 칠세에서 오십일세 까지 했다. 이 때 정규과정을 밟아서 석 박사 학위를 땄다. 내가 동양고전을 역순으로 읽은 것과, 나의 만학이나 직장
여덟 번 바꾸기와는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미국에서 만학을 하고 있을 동안 연년생인 두 딸은 고등학교 과정을 거쳐 대학에 들어갔다. 두 딸의 첫 고비와 나의 만학은 같은 등고선에 있었다.
이 때 나는 최선을 다 하라는 뜻으로 인생이란 경기는 일렬횡대(가로)로 출발해서 일렬종대(세로)로 들어오는 경주라고 써 보냈다.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해서 일렬종대의 선두 그룹에 들어서라는 격려요
채찍이었다. 이런 도표도 그려 넣었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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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의 끝맺음은 물론 "Why not the best! 최선을 다하라!"이었다. 알고 보니 딸들에 대한 이 가르침이 내가 60대에 읽은 논어의 '성상근(性相近) 습상원(習相遠)'이란 가르침 그대로였다.
딸들에게 이런 편지를 써 보낸 나의 칠전팔기(七顚八起) 삶은 어떠했나?
나는 여덟 번이나 바꾼 내 직장에서 항상 최선을 다 했다고,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칠전팔기의 시행착오가 갖는 공백 때문에 최선두 그룹에는 서지 못했다.
나는 미국시인, R. 프로스트의 시 '가 보지 못한 길( the road not taken)'을 애송한다. 나의 삶의 여정이 이 시를 애송하도록 이끌었다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종심(從心)의 문턱을 넘어선 나는 지금 문필가로 행세하고 있다.
이것도 가보지 못한 길 아닌가? 이 길을 걸어보자, 어디로 이어지는지.
트레킹을 끝내고 돌아오는 차중에서 나는 육십대의 중반은 되었을듯한 가이드의 구수한 설명을 들으면서 그가 자기 직업에 충실하며 열심히, 즐겁게 살고 있다고 새삼스럽게 느꼈다.
알고 보니 -명함을 교환하면서 확인했다.-그는 그 여행사의 전무였다.
나는 그가 자기 인생을 최선으로 살고 있다 고 느꼈다. 그의 삶의 자세가 도탑게까지 느껴졌다.
그래, 죽는 날 까지 최선을 다해서 소중하게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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