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의 건망증 - 임매자
대형 목욕탕 탈의실에서 사우나복으로 갈아입고 3층 휴게실로 올라가는데, 앞에 전라의 여인이 사뿐사뿐 올라가고 있었다. ‘몸매가 참 예쁘구나.’ 하고 무심히 그녀를 따라 올라가다가, 갑자기 이곳은 남녀가 함께 쉬는 곳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마음이 급해져 말을 더듬으며 “옷 입고 올라가요.”하고 외쳤다. 그녀는 얼굴이 빨개지며 “내가 왜 이러지”하며 당혹스러워 어쩔 줄 모른다. 오래 전에 나도 이런 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 남편과 함께 서울 근교로 물을 뜨러 갔었다,
샘물가에 물통이 줄을 이어 밀려있으니까 그가 “혼자 산책이나 하고 오라” 고 했다. 목련나무가 촘촘하게 봉오리를 달고 꽁꽁 얼어붙은 영혼을 향하여 하얀 총알을 날릴 것처럼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갓 헹구어 낸 듯 말간 햇살이 밭고랑에 차곡차곡 쌓이니 쑥과 냉이가 뾰족뾰족하게 손을 내밀며 킬킬대고 있었다. 송사리가 꼬물대고 있는 개천가의 조팝나무에도 하얀 봄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들에는 햇살이 풍성해서 광주리에 담아도 지천으로 넘쳐흐를 것 같았다.
봄의 전령사에 붙잡혀 이리저리 홀려 다니다가 갑자기 남편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히 주차장으로 가서 차문을 열고 조수석에 앉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차는 좀체 움직이려 하지도 않았지만 왠지 왼쪽 뺨에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뜨거움이 점점 강도를 더하여지기에 운전석을 보니 웬 젊은 남자가 의아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황당한 이 상황을 그 남자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일단은 사과하고 황급히 빠져 나왔다. 남자의 의아한 시선이 뒤통수에 따라붙는 걸 느끼면서.
또 한 번은 아들과 함께 동숭아트센터에서 <오구>라는 연극을 봤을 때다.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을 다루었으나 그 안에는 끈적끈적하고 으스스한 그림자가 없었다.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경계선이 편안했고, 주제와 달리 슬프지 않고 시종일관 유머러스했다. 주차장으로 차 가지러 간 아들을 기다리면서 코끝이 찡하면서도 코믹한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해 생각의 타래를 배배꼬고 있었는데 그 때 차가 내 앞에서 정차한다.
아무 생각 없이 타려고 하다가 운전석을 보니 아들이 아닌 낯선 젊은이다. 차의 색깔만 같을 뿐인데. 우리 속담에 ‘가을 다람쥐처럼 욕심만 낸다.’는 말이 있듯이, 다람쥐는 겨울을 나기 위해 도토리를 열심히 모은다. 마치 우리가 겨울을 나려면 김장하고 쌀을 사고 연탄이나 기름을 사 놓듯이. 그러나 다람쥐는 생각보다 기억력이 나빠서 자기가 도토리를 어디에 묻어 두었는지 잊어버린다.
그래서 겨울에 다람쥐가 깜빡 잊고 파먹지 못한 도토리는 다음 해에 싹이 돋아 새로운 나무가 된다. 도토리나무는 다람쥐에게 도토리 몇 알을 준 대신에 자기 종족을 번식할 수 있게 된다. 다람쥐의 건망증 덕분에 더 많은 도토리나무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람쥐의 망각은 이렇듯 이로운 일이지만, 나는 깜박대는 기억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헛되게 허비했는지.
옛사람들도 나와 같은 고민을 가졌나 보다. 오죽하면 사택망처(徙宅忘妻)라는 옛말이 있을까. 이사할 때 자신의 아내를 잊어버린다는 말이니, 가장 중요한 일을 잊어버린다는 뜻이리라. 나도 가끔은 다른 곳에 생각을 내보내고 있으면 이런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어떤 생각에 몰두하게 되면 깜박 퓨즈가 나가서 집 나간 생각들이 먼 곳에서 떠돌고 있을 때 누가 말을 걸면 빨리 돌아오지 못한다.
퓨즈가 나간 머리엔 그 어떤 것도 절실하게 와 닿지 않기 때문이리라. 지하철역에서 전화카드나 현금카드를 들여 밀기도 하는 등 길거리에다 나를 줄줄 흘리고 다닌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건망증으로 애를 먹지만 나는 예전부터 늘 그래왔으므로 한편으로는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이며, 집 바깥에서는 집중하면 되는 또렷한 기억의 줄이나마 잡고 그나마 큰 실수나 어려움은 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마음을 놓아버리면 오히려 그 때부터 내 집중력은 밖으로 뛰쳐나가 버린다. 집에서도 아무 곳이나 던져놓은 물건은 쉽게 찾지만, 깊이 넣어둔 물건은 오히려 잘 찾지 못한다. 영락없이 도토리 숨겨놓은 곳을 잊어버리고 마른 두 손만 부비는 초라한 다람쥐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잃어버린 물건은 얼마쯤 시간이 흐른 후에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런 어이없는 건망증에 반하여 다른 한 곳에 자리 잡은 또렷한 기억력이 있어 어떤 일이든 집중하자고 마음먹으면 잊지 않는다. 젊은 시절 맞벌이 할 때 그 복잡하고 바쁜 중에도 내 안에 거머리같이 흡착되어 있는 신기한 기억력 때문에 그나마 크게 실수한 적이 없고 집 밖에서 건망증으로 인하여 물건을 잃어 버렸던 적도 별로 없다.
물론 집중력 부족으로 인한 건망증이 불편한 점이 많지만, 그 대신 다른 것에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은 흘려듣고 잊어도 되는 것이 또 다른 좋은 점이 아닐까. 그러나 이 모든 생각들은 기억력 없는 나의 변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다람쥐가 도토리나무의 번식을 도우는 것처럼 나의 건망증도 무엇인가를 생산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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