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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같다.

Joyfule 2019. 5. 9. 18:39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같다.

 


가짜보석을 이미테이션이라고 부른다. 이미테이션(imitation)은 영어로 모방하다’, ‘흉내 내다라는 뜻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가짜보석은 진짜보다 더 진짜같이 보여야, 사람들이 사 갈 것이 아닌가? 누가 보더라도 가짜인 것이 눈치 챈다면 비싼 돈을 들여 만들어보아야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어느 분야이든지 가짜가 더 진짜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기꾼들은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각종 증명서를 위조하고, 돈을 주고 사람들을 사서 우연을 가장해서 진짜처럼 연출하도록 시킨다. 가짜로 위장하는 데 기승을 부리는 곳이 바로 종교계이다. 종교계처럼 가짜가 많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전지전능한 신()앞에서 두려워 떨기 마련이다. 그래서 가짜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고 유명해지길 원한다. 그래서 가짜신일수록 더 진짜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절에 가면 불상들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굿당이나 무당 의복도 유치찬란하다. 어디 그뿐일까? 기독교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세시대의 성당은 건축물이 아니라 예술의 경지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의 교회들도 점점 대형화되고 있으며 럭셔리해지고 웅장해지고 있다. 마치 신라나 고려시대의 절집 안에 돌로 만든 탑을 화려하고 웅장하게 만들어서, 이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거대한 위용에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게 만든다. 그러나 진짜 신이라면 이런 심리를 이용할 필요가 있을까? 가짜들이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비주얼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지만, 진짜 신이라면 굳이 이런 퍼포먼스가 필요 없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20:3~5)

 

야훼 하나님은 십계명에 넣어서, 절대로 돌이나 쇠나 나무 등으로 만든 신상(神像)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심리적으로 이용하여 섬기도록 강요하는 가짜신이 아니라, 전지전능하고 무소불위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은 진짜 신을 믿고 계신 크리스천이 아니신가?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신앙형식과 종교의식에 목숨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영접기도라는 것부터 생각해보자. 영접기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죄의 용서를 받아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기도이다. 그렇다면 기도를 했는지 안 했는지가 중요한가? 그게 아니라면, 영접하는 삶을 살고 있어야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형식적인 영접기도를 통해서 천국의 자격이 주어진다고 가르치고 있다. 또한 주일성수도 마찬가지이다. 주일성수는 일요일에 교회에서 드려지는 1시간짜리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에서는 주일성수를 성실하게 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을 얻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주일성수라는 말은 성경에 없다. 물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말씀을 배우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극대화해서 부여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불꽃같은 눈으로 관찰하고 계시지, 어떤 종교의식에 성실하게 참석하고 있는 지의 여부를 보고 계시는 분이 아니다. 또한 다양한 교회봉사나 기도회의 참석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왜 우리네 교회는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적인 종교의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에 목숨을 걸도록 가르치고 있는가?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비주얼을 강조할수록 가짜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음이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2:9~12)


성령춤, 방언찬송, 아말감이 금이빨로 변하거나 금가루가 떨어지고, 웃으면서 뒤로 넘어가는 퍼포먼스 등의 깜짝쇼를 보여주면서 성령의 은사라고 말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이적과 기적은 귀신을 쫒아내고 불구를 일으키며 고질병을 고치는 등의 생명을 구원하고 영혼을 해방시키는 기적을 밀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깜짝쇼를 하는 하면서, 성령의 역사라고 선전하는 이들은 죄다 귀신들의 능력으로 하는 것들이다.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이적과 표적은 성경에서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러나 은사주의자들과 신사도운동가들은 자신들이 일으키는 기이한 현상을 죄다 성령의 은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귀신을 쫒아내고 고질병을 고치며 영혼을 구원하며 제자를 양육하지 않는다. 성경은 이들에게 속아 쫒아 다니는 사람들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기 때문에 심판받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고질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으면서 성령의 은사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고질병을 고치는데 편지를 불태우고 바가지를 깨뜨리며, 잔잔한 음악을 깔고 보조자의 도움을 받으며 선포하라는기도를 요청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이 말하는 내적치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퍼포먼스를 따라하고 있다. 이는 최면치료, 웃음치료, 꿈 치료, 상담치료 등의 심리적인 기법을 이용하는 세상적인 치료방법과 다를 게 없다. 이들 역시 겉으로 드러나는 비주얼과 각종 심리적인 도구나 특정한 환경을 이용하는 퍼포먼스를 동반하고 있다. 기도원 등에서 귀신을 쫓는다는 이들도 비성경적인 퍼포먼스를 요구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몸을 손으로 비비며, 손으로 눈을 누른다든가, 막대기로 몸을 학대하는 등의 기이한 동작을 통해서 귀신을 쫓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귀신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혈의 능력에 의해 쫓겨나는 것이기 다른 기이한 동작이나 도구를 사용해서 쫓아내야 나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리를 지르거나 온몸을 비틀면 귀신이 나갔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귀신들린 현상을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다시 귀신이 들어왔다고 하면서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성령이 임재 한다는 집회도 비주얼을 강조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드럼이나 키보드 등의 타악기를 동원하면서 열정적인 찬양을 동반하면서 분위기를 달구어놓은 상태에서, 마이크를 잡은 기도자가 귀청이 찢어지도록 큰소리로 선창하면 죄다 통성으로 기도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감정이 고조되고 격앙되기 시작하면서 몸이 전율하고 기이한 음절의 말들이 반복되기 시작하면 방언을 받았다고 하면서 성령이 임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면 건조하고 냉랭한 마음으로 되돌아간다. 또한 평생 방언기도를 하는 이들도 성령의 변화나 증거, 능력과 열매가 없다. 이 같은 성령임재현상은 거짓이다. 성령님이 타악기를 동반한 격정적인 찬송을 동반해야 오시는 분이신가? 이런 퍼포먼스는 귀신이 속이거나 자의적인 감정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이런 가짜가 진짜처럼 판을 치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교회는 이런 형식적인 비주얼을 강조하지 않는다. 이들은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서 성령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형식적인 종교의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령의 능력과 변화, 열매가 풍성하게 맺고 있다. 이들이 바로 기도의 사람이며 성령의 사람이이다. 이런 사람들이 성령이 도구가 되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