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혹의 영은 섬뜩하고 교묘하다.
엊그제는 코치진들과 익산 소모임에 가기 전에, 충주에서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즐겨 들렀던 논산 근처의 카페를 찾았다. 그 카페의 여주인은 기이한 인물이었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왕따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도, 가정과 교회에서 수많은 상처의 편린으로 인해 너무 고통스러워 자살을 기도하던 차에, 예수님께서 음성으로 찾아오셨다고 한다. 그 후에 그녀는 새로운 삶을 되찾았노라고 고백했다. 그래서 기적적으로 맑은 호숫가에 아름다운 카페를 짓고 기쁜 삶을 누리고 있노라고 말했다. 필자가 충주에 온 후에는 한 번도 가지 않아서인지, 오랜만의 해우를 기대하며 가슴이 설렜다. 그 여주인도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여주었고, 대화 도중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쏟아내며 격정적인 노래도 여러 곡 불러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예수님과 얼마나 친근한 지를 격한 심정으로 간증해 주었다. 아마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도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헤어지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거웠고 입술을 씁쓰레 했다. 그녀 안에 있는 영은 성령이 아니라 미혹의 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기 전에 그녀가 깨닫기나 할 것인가? 누가 보더라도 성령과 깊고 친근한 교제를 나누며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며, 지금까지의 삶에서 기적을 수차례 경험하고 살고 있는 그녀를 인도하는 영이 성령이 아니라 미혹의 영이라는 게 그 누구도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 안에 있는 영은 성령이 아니라 미혹의 영이었다.
그 분별의 근거는 여러 가지이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녀의 삶에 깊은 기도가 없는 것이다. 필자가 처음 만날 때부터 기도의 필요성을 얘기했지만, 그녀는 앉아서 기도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일상의 삶에서 성령과 친근하게 대화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대답하곤 했다. 물론 삶의 현장에서 대화로 나누는 기도도 가능하다. 그러나 방해받지 않은 장소와 시간을 정해놓고 깊은 기도를 하지 않으면 성령과 친근한 교제가 불가능하다. 어쨌든 앉아서 꿈쩍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비성경적인 일이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방해받지 않은 시간에 깊은 기도를 하는 것을 습관으로 들이고 실천했으며, 제자들에게 이런 기도를 권면하였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감정과 기분에 사로잡힌 생각을 토로하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느낌과 생각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성령이 아니라 미혹의 영이다. 미혹의 영도 감정과 생각을 사로잡고 감정을 격앙시켜 기쁜 마음을 들게 할 수 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성령과 얼마나 친근한지 과시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마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소원을 이루어주는, 알라딘의 램프에 나오는 요정 지니처럼 다루고 있다는 게 기이한 일이었다. 성령과 친근하다는 것을 과시하는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을 마치 세상의 친구처럼 가볍게 소개하곤 한다. 사도요한도 성만찬 때에 예수님께 어깨를 기대어 앉을 정도로 친근하였지만, 밧모섬에서 만난 예수님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처럼 대하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우리가 섬기는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은 지옥에 던져 넣으실 수 있는 두려운 분이시다. 그러나 이 카페의 여주인은 예수님은 마치 세상친구처럼 가볍게 여기고 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이 여주인은 자신의 삶에 일어난 기적적인 사건들이 죄다 성령이 하신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귀신도 이적과 기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또한 그녀를 사로잡은 영이 성령이 아니라 미혹의 영이라는 단서는 그녀의 가정사였다. 그녀는 가족과 너덜너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남편과는 별거하고 있으며 자녀와의 사이도 따뜻하고 화목한 사이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녀의 감정은 기복이 심하며, 자녀들과 다툼이 벌어지면 전쟁이 따로 없다고 고백하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삶과 가정을 회복시키는 변화부터 일어난다. 그러나 그녀는 성령과 깊은 사이라는 것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가정에서 이러한 변화를 볼 수 없었다. 그 카페의 여주인은 이제 환갑이 넘은 나이이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조리와 청소, 설거지 등의 강도 높은 노동을 시작하면서 몸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이다. 툭하면 몸이 안 아픈 데가 없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카페가 하나님이 주신 천국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그렇다면 평생동안 노동을 해왔던 사람들도 노후에는 평안한 삶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여주인은 앞으로도 강도 높은 노동이 떠나지 않을 것 같다. 그녀는 입만 열면 성령이 자신과 얼마나 친근한지 자랑하였지만, 그녀의 몸과 가정은 점점 망가지고 피폐해지고 있으니 기이한 일이다. 그러나 누가 이 카페 여주인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영이 미혹의 영이라고 상상이나 할 것인가?
그러나 더 섬뜩하고 무서운 일들이 우리네 교회에 널려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대다수의 교인들과 교회지도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성령이 함께 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자신들이 내세우는 성경구절과 그간 경험한 은혜와 자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기도응답을 들이밀며 그게 증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게 성경에서 말하는 증거는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증거는 변화와 능력과 열매이다. 자신의 삶이 변화되고, 가족이 변화되고, 성품이 변화하고 인생관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변화가 없다면 성령이 계신 증거가 아니다. 또한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고치는 이적과 이적으로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야 한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그런 성령의 능력은 사도시대에 끝났다고 말하며,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데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이렇게 자신 안에 성령이 계시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정작 신앙의 연륜이 무겁고 교회직분이 높은 데도 아무런 성령의 열매가 없으니 기이한 일이다. 이는 성령의 내주를 자의적으로 생각하고 성경을 왜곡해서 비틀었기 때문이다.
이들 안에 성령이 아니라 미혹의 영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사건은 심판대 앞에 서봐야 알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왜 지옥 불에 떨어져야하는지 억울해하고 한탄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유황불이 활활 타는 불꽃 속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카페 여주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무겁고 생각이 깊었다. 3년 전보다 더욱 증상이 심각해져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심성이 착해서 불쌍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에 평생을 앞장서 왔는데, 미혹의 영에 사로잡혀 지옥행 열차를 타고 있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이처럼 해박한 성경지식을 바탕으로 성령이 주시는 날카로운 분별력이 없으면, 미혹의 영의 포로로 잡혀 평생 종노릇하다가 지옥불에 던져지게 되는 뜨악한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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