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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Joyfule 2020. 6. 22. 00:09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이승현

 

20세기 초중반 동서양에서 가장 뛰어났던 인물이 이승만이다.
일본 군국주의 위험성을 제일먼저 알린 사람도 이승만이었고 공산주의의 본질에 대해서도 그당시 이승만보다 더 꿰차고 있었던 사람 없었다.

광복후 강대국들은 한국을 신탁통치할려고 하였고, 처음에 반탁했다가 스탈린의 지령이 떨어지자 북한공산당시키들도 신탁에 찬성한 마당에 이승만은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반탁운동을 끝까지 벌여 남한만이라도 민주국가를 만들기 위해 총선거를 실시하여 유엔으로부터 공정한 선거라는 인정을 받게 되자, 미국은 더 이상 신탁통치에 대한 명분을 잃게 된다.

이 과정에서 민주국가든 공산국가든 민족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며 주장했던 김구와 결별하게 되었고, 김구는 김일성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결국 암살자의 손에 한많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승만의 업적을 볼까?
나라를 건국했다는 자체가 업적이자 부정할 수 없는 가장 큰 공로이다.
이승만은 우리 민족이 세계 일류가 될 수 있는 기본 베이스를 바탕으로 나라를 건국하였는데 그 이념바탕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자유민주주의 방식의 국가를 건설한 것이다.

지금 좌익들이 이승만을 아무리 까대도 현재의 대한민국이라는 기본 바탕은 이승만의 건국 이념과 사상이 유전되어 왔다.

좌익들은 이승만이가 독재했다며 반대한다.
맞다.
이승만은 독재 했다.
그당시 한국사회에서 이승만만큼 동양과 서양학문에 정통한 사람이 있었던가?
민주주의에 대해 이승만보다 더 잘알던 사람이 있었던가?

건국직후 한국의 문맹률은 거의 70%에 달했다.
나라를 이끌어갈 지식층들도 동양이라는 시각에 갖혀 세계를 보는 안목이 없었다.
미국이 이승만을 싫어하여 여러번 제거할려고 했으나 이승만을 대신할 인물이 없어서 번번히 계획단계에서만 머물러야했다.

오랜기간동안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아 왔던 한국국민들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실천할 역량이 부족했다.
이를 간파한 이승만은 교육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는 틈만 나면 국민들에게 연설을 하였을 정도로 교육에 많은 심혈을 기울렸다.

민주주의는 고차원적인 사회제도 이다.
봉건군주주의사회에서 식민지생활을 경험해야 했던 한국인들에게 민주주의란 너무 수준 높은 사회였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안보 / 경제 / 교육 / 국민성] 이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어야지만 달성할 수 있다.
건국당시 우리는 저 것들 중 어느 한 것이라도 달성된 것들이 있었나?

건국하고 나니 군과 경찰이 시민들을 선동하여 툭하면 반란이 일어났다.
나라의 안정을 되찾을 때 쯤 되니 스탈린이 김일성을 시켜 남침을 일으켰다.
나라가 풍지박살날 지경에 이승만은 미국에 SOS를 쳤고, 미국은 유엔과 미국국회의 승인도 받지 않은체 일본에 주둔하던 미군을 한국에 급파하여 미국본토 병력이 올때까지 전선을 지켜냈다.

전쟁와중에 국회의원들이 이승만을 제거할려고 군대를 동원할려고 하였다.
그러나 실패했다.
이승만은 자기 휘하에 있던 헌병들을 시켜 국회의원들을 잡아 가뒀다.
그리고나서 그는 간선제였던 선거방식을 국민이 직접 투표하는 직선제로 바꿨다.

1952년도 당시에는 전국 총선거를 실시하여 약 2만명 가량의 일꾼들을 국민의 손으로 선출되게 하였다.
전쟁와중에서도 국민들에게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경험시키기 위해 총선거를 실시한 것이다.

이승만의 교육에 대한 열의는 전쟁의 불길로도 막지 못했다.
전쟁중에 병력이 부족하여 소년병, 심지어 소녀병까지 전선에 투입시켜야 하는 때에 이승만은 대학생들에게는 징역을 면제해 주었다.
전쟁 이후 나라를 이끌어갈 지식인층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이승만의 독재에 대해 더 알고 싶은가?
그당시 이승만이 독재하지 않았다면 누가 한국을 이끌어 갔을까?
전쟁와중에, 나라를 다 빼았기고 낙동강전선만 남은 상태에서 대통령을 끄집어 낼려고 했던 저 미친 국회의원들이 주축이 되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완전한 친미사대주의자였던 장면이 나라를 이끌기 원했나?

독재의 반대는 민주주의 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집권자의 독재를 막기 위해 삼권을 분리시킨 가장 효율적인 정치제도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건국 당시 삼권이 제기능을 할 수 있었나?
국회가 제기능을 못하고 사법부가 제기능을 못한다면, 거기에다가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에다가 전쟁까지 겪어야 했다면 똑똑한 한명의 사람이 독재하는게 최고로 좋은 방법이다.

이승만대통령이 독재했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죽였다?
대한민국 헌법은 이승만이 만들었다.
민주주의제도로 만들었다.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해 교육개혁을 했고, 농지개혁을 통해 절대 다수였던 농민의 생활 안정을 실천하였다.
한미동맹을 이끌어 내고 60만명의 군대를 현대화 시켜 안보를 다졌다.

이제는 경제발전을 통해 한국의 중산층들이 사회의 주류가 되게끔 하는 것만 남은 것이었다.
아쉽게도 이승만은 거기까지는 직접 실천하지 못하고 국민의 뜻에 따라 권력을 내놓고 대통령직에서 하야했다.

그 후 대한민국은 군사정권을 걸쳐서 노태우정부가 들어서서야 비로서 민주주의를 완성하게 된다.
실로 40년만에 이룩한 쾌거이다.
세계 어떤 나라들도 이렇게 단기간내에 민주주의를 달성한 나라가 없다.
당대 최고의 철학자이자 지식인이었던 이승만의 건국 이념과 가장 효율적이었던 군사정권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좌익들은 민주화운동이다 뭐다 해서 그것만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안보가 없는 상태에서 민주화가 되어봐야 베트남 꼴나고, 경제발전 없이 민주화가 되어봐야 필리핀 꼴나기 딱 알맞다.
그 민주화 운동이라는 것도 이승만의 교육개혁을 바탕으로 가능한 일이었으니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다.

좌익들이 제 아무리 이승만을 부정해도 2009년 대한민국은 이승만의 건국 이념속에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도, 경제적 풍요로움도, 강한 군대와 세계 최고 국가와의 동맹을 통한 든든한 안보도 이 모두가 이승만의 건국사상에 담겨져 있던 것이다.

이승만은 20대 청년때부터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꿈꾸었고, 70이 넘은 나이에 자신의 꿈을 실현시켰다.
이승만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민주주의 뒤에 법치주의를 완성하고 자유평화통일을 이룩하여 세계 7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