똬리를 튼 용송
임병식
고흥 외나로도에 똬리를 튼 기묘한 형상의 소나무가 있다는 말을 듣고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줄기가 조금만 뒤틀려 있어도 신기 할 텐데, 그 나무는 아랫부분 몸통이 땅바닥에 착 달라붙어서 가부좌를 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가볼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모처럼 하루 시간을 내게 되었다. 산악회에서 그곳으로 떠나기로 했던 것이다.
이 용송(龍松)이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3년 전인데, 그해가 마침 경진년(庚辰年), 용의 해여서 조명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로도 다녀온 사람은 많지 않았다. 워낙에 외딴 섬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용송을 만나려 가는 날에 내내 그 나무와 관련된 생각으로 들떴다. 어떻게 생겼길래 보는 사람들 마다 탄성을 지르고 신기해 할까. 호기심이 그치지 않았다.
기묘한 소나무라면 지금껏 한 그루 본 것이 아니다. 그런 나무라면 우선 고향 앞산의 소망바위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들 수 있다. 키가 않은 다박솔인데 수령이 백년도 넘은 나무다. 이 소나무는 누가 일부러 심어놓지도 않았는데 험한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다. 어디서 바람에 날라 온 씨앗이 발아했던 것이다. 한데 그게 예사 악조건이 아닌데 자리를 잡고 사라는 것이 신비하고 대견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용송은 이 나무보다도 사람의 이목을 끌고 있으니 대단한 나무임을 틀림이 없다. 마치 스프링 모양으로 똬리를 틀고 위로 치솟았다면 짐작이 가지 않는가. 그런만큼 가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두시간 남짓을 달려간 끝에 마침내 그 산에 도착했다. 한데 산의 초입에는 잡목만이 우거져 있을 뿐 소나무가 한 그루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했다. 어디에 그 소나무가 있다는 것일까.
계속 산을 오르면서도 궁금해 하던 참인데 산비탈 어디쯤에 이르니 바로 그 용송이 나타났다. 나무는 가지에다 부목을 받쳐놓고 있었다. 한데 뒤틀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가서야 그 형상이 드러났다. 워낙에 땅바닥에 착 붙어있어서 첫눈에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걸 보는 순간, 전신이 감전이 된 듯 찌르르 전율이 느껴졌다. 이것이야 말로 영락없는 뱀, 아니 용의 형상이 아닌가. 그것도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소름이 ) 끼쳐지는 모습에 잠시 외면을 하다가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저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누운 나무가 일어서려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겠구나.‘ 그런 생각이 스쳤던 것이다. 이겨야 말로 위로 튀어오르게 된 스프링의 원리 아닌가. 그것만도 신비한데, 주변에 있는 잡목 속에서 오직 한그루 소나무가 홀로 자라고 있는 것도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다.
이 나무가 쓰러져서 햇빛을 받으려면 어떻게든 일어나야 했으리라. 그런데 워낙에 심하게 넘어지다 보니 그렇게 용수철처럼 자랄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얼마나 뛰어난 지혜인가. 나는 그렇게 똬리 틀고 자라는 용송을 보면서 한 나무의 지혜에 감탄했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나무의 뒤틀린 형상 못지 않는 구경거리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이날의 방문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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