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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 달린 목숨들(능소화) - 금기웅

Joyfule 2006. 7. 15. 01:42
 
 
공중에 달린 목숨들(능소화) - 금기웅 
나무 아래쪽에서 보름 내내 입 다물고 있던 그가
무슨 이유로 저 높은 곳까지 기어올라
제 몸을 온통 긁히며 아픈 수행을 하려는가
오늘도 기다리던 전갈은 오지 않는다
소식 대신 저 담홍색 꽃들이 가슴속 뚫고 나와
길고 긴 여행길을 알려주려 하는가
어제까지도 분명히 나무 중간쯤 머물러 있던 그가
오늘은 우듬지에서 몸뚱어리를 모두 열고 있다
활활 태우고 있다
기다림은 쉽게 멈춰지지 않는 법
우리가 상처받은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저 꽃의 몸부림처럼
쉬운 해법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다
어둡고 힘든 길을 밤새 기어오를 때
말없이 등판을 내주었던 소나무는
혹시 그가 바늘에 찔려 떨어지지 않을까
한밤 내내 한쪽으로 비켜서서 기다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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