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과 실제
김요한 선교사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신앙의 실제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실제적인 관계와 그 분에게 실제로 생명을 공급받는 사건입니다.
분명히 신앙은 자신 안에서 해 아래에서 얻을 수 없는
은혜와 평강과 기쁨의 사건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상을 이깁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지식을 관념으로 여겨 기억의 창고에 쌓아놓고 필기시험만 대비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정답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와 능력은 꽝입니다.
바퀴벌레 한 마리 때려잡을 담력이 없습니다.
담대하고 열정적이며 주를 향해 결연한 의지로 서질 못합니다.
연약에 그대로 싸여 있으면서 상대보다 나아지려고 하는 명분쌓기에 급급합니다.
참 초라한 모습입니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구원을 말하며 발을 동동 굴리고 걷습니다.
어떤 사람의 복음이야기는 초등학교 학생의 학예발표회와 같습니다.
야무지게 설명을 하는 것 같으나 복음의 능력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일찍이 복음이 말 잔치뿐이라면 목사를 그만 두겠다고 외친 적이 있습니다.
이 번 C국 방문을 통해 다시 한 번 복음의 능력이 여실함을 드러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도 그 날 그 자리에 함께 하신 분들이 있을 터이므로
내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하지 않음을 잘 아실 겁니다.
오늘 나는 어떤 영화에 나오는 대사가 생각났습니다.
한 주인공이 다른 동료들에게 마지막 의로운 결전을 독려하면서
‘우리 살만큼 살았잖아 이제 죽자’고 한 말입니다.
이 말이 제겐 비수처럼 날아와 심장을 찌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나도 살만큼 살았습니다.
이제 나의 주와 그 분의 복음으로 인해 죽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복음으로 인해 내 목숨이 끝난다면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팔을 벌릴 것이나 만약 고난이나 핍박이나 환난으로 인해 내가 죽어야 한다면
그 자리를 무덤으로 삼고 우리 주 그리스도로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천 번 아니 만 번이라도...
말씀을 이루는 일에 죽기까지 충성한다면 인간미가 넘치는 인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뿜어 대는 생명의 면류관을 씌어주시겠지요.
바로 산 순교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관념의 대상으로 방치하지 마십시오.
그 분은 실재이며 실제이십니다.
그 분을 믿고 그 분을 불러 쉬지 못하게 하십시오.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