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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 경의 관점에서 본 생명과학

Joyfule 2005. 3. 23. 09:59
구약성 경의 관점에서 본 생명과학



강 성 열 (호남신학대학교 / 구약학)


★ 머리말


산업혁명 이후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온 과학기술 문명은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 정보통신 기술과 생명과학 기술이라는 두 가지의 핵심 기술로 압축되어 인류 문명의 신기원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고도로 발달된 과학기술 문명이 과연 그 의도한 대로 인류의 미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냐의 물음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신 있게 답변하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정보통신 기술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란이 없겠지만, 적어도 생명과학 기술의 경우에는 그렇다. 왜 그런가? 유전자 조작에 의한 생명체­인간을 포함한­의 복제를 목적으로 하는 생명과학 기술(생명공학)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성 파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 에딘버러의 로슬린(Roslin) 연구소가 지난 1997년 2월 23일 윌머트(I. Wilmut) 박사의 주도 하에 복제 양 돌리(Dolly)를 만든 이후로, 사람들은 동물 복제 기술이 머잖아 인간 복제에 응용될 것이며, 인간 복제를 아무리 막아도 그것이 언젠가는 현실화될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그에 기초하여 생명공학의 효용성에 관한 매우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게 되었다. 그 의견들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그 하나는 생명체의 복제가 인간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시킬 것이므로 그것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엄격한 금지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처럼 생명공학의 연구 성과에 대한 찬반 견해가 격렬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옳은가? 생명체의 복제 문제나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와 같은 생명공학의 연구 방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생명과학의 발전에 따라 파생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이 글은 이상의 질문들에 대답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구약성서가 생명체의 복제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하여 주는 해답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 하나님의 창조 주권과 인간의 존엄성


창세기 1-2장은 하나님의 우주 창조에 관해서 이야기하면서 인간 창조에 대해 가장 많은 설명을 곁들인다. 이는 인간 창조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서 클라이맥스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인간 창조가 창조의 절정에 속한다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는 구별되는 복, 곧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계를 잘 다스리고 관리할 수 있는 복을 받았다는 사실에 의해 확인된다(1:26-28). 물론 인간이 아닌 다른 피조물­특히 동물­에게 하나님의 복이 전혀 주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창세기 1장 22절에 보면 하나님은 다섯째 날에 하늘의 새들과 바다의 고기들을 만드신 후에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는 복을 주셨다.


그러나 인간에게 주어진 복은 생육하고 충만하고 번성하라는 복에 더하여 땅을 정복하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포함하고 있다. 즉 다른 피조물에 대한 다스림의 복을 추가로 받고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창조에 대한 이러한 특별한 강조는 창조의 날들을 셈함에 있어서 첫째 날에서 다섯째 날까지는 정관사를 사용하지 않으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여섯째 날 만큼은 정관사를 붙여 "그 여섯째 날"이라 칭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또한 인간은 다른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의해서 창조되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 자신의 직접적인 공작(工作)에 의해 창조된다(2:7,22)는 점에서 창조의 정점에 속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이처럼 고귀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 존재인 것이다. 이처럼 존귀한 인간, 곧 창조의 왕관(the crown of creation)으로 만들어진 인간을 생명공학의 연구 성과에 의존하여 복제한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하나님의 창조 주권을 침해하는 일임이 분명해진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손에 의해 창조될 때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갖는다. 더 구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결혼 제도 내지는 남자와 여자의 성적인 결합에 의하여 출산된 인간이라야 존귀한 하나님의 피조물로 불릴 자격이 있다. 달리 말해서 남녀 양성의 결합으로 태어나 사랑을 받고 혈육 관계를 맺으며, 다른 사회구성원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적인 삶의 과정이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를 대표하는 존재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어찌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매개하지 않고서 실험실이나 공장에서 복제된 인간에게도 인간의 존엄성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고 할 수 있겠으며, 그러한 복제 인간이 다른 모든 피조물에 앞서는 하나님의 큰 복을 받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두 인격 사이의 사랑에 기초한 생명 융합을 배제한 채로 유전자적인 조작 기술에 의하여 만들어진 인간을 어찌 하나님의 선하고 아름다운 창조 세계에 속한 피조물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인간 복제는 남녀간의 애정과 성적 결합을 통한 종족의 번식이라는 사회의 기본 전제를 무시함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기초를 구성하는 가족 사회에 일대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더욱이 복제 인간이 불치병을 앓거나 망가진 장기를 가진 다른 인간의 몸을 대신할 자로 만들어진다면, 그는 도무지 정상적인 인간으로 불리기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인간 복제가 사회적으로 허용됨으로써 그것이 상용화된다면, 복제 기술에 의해 주문 생산된 인간은 더 이상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대량 생산되고 사육되어야 할 값싼 물건(또는 상품)으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유전자를 조작함으로써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뛰어난 인간을 만들어내는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수한 인종으로 개량된 다수의 복제 인간이 생산된다면 우생학적으로 약한 자들의 존재는 무시될 수밖에 없고 결국 인간 사회는 강한 자들의 사회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 복제 기술을 통하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수를 한없이 증가시킨다면, 생태계의 파괴나 생태학적 재난이 가속화됨으로써 지구의 종말이 훨씬 앞당겨질 것이다.


물론 인간을 복제하는 일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인간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사람의 체세포를 이용해서 동일한 유전 형질을 가진 인간을 만드는 것이므로 구약성서의 인간 창조와 같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설령 인간을 복제하는 일이 벌어진다 해도 인체나 생명의 신비로움은 여전히 하나님의 지혜 내지는 창조 섭리에 속한 것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자와 난자의 결합 과정을 생략한 채로 단순히 체세포만의 복제에 의한 무성생식 및 그에 근거한 복제 인간의 생산은 하나님의 창조 주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에 의해서 창조되어야만 하나님의 선한 피조물로서 의미를 가지며 자신의 존엄성을 유지한다. 그렇지 않고서 인간이 자신을 복제하여 스스로를 창조의 주체로 여기려 한다면, 그것은 곧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려는 교만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되기 위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나 다를 바가 없고, 바벨탑을 쌓던 자들이 성과 대를 높이 쌓아 올려 하나님과 맞먹으려고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상의 이유들로 하여 인간 복제는 어떠한 경우에도 금지되어야 마땅하다. 하나님의 창조 주권을 옹호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인간 복제는 허용되어서는 안 될 중대한 범죄 행위에 해당한다. 아울러 현재로서는 수정 후 14일 이전의 배아(胚芽), 곧 아직 인간의 장기를 완전히 갖추지 못한 상태의 수정란을 복제하는 일(대부분의 선진국은 이것을 허용함)조차도 인간 복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후에 그에 관한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져서 배아 복제가 승인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류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시키거나 건전한 인류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탠다면, 농어가의 소득 증대와 식량 문제 해결 및 희귀 동식물의 보존 등에 큰 도움을 줄 동식물의 복제는 제한된 범위­유전자 변형의 부작용 내지는 유전적 결함을 최소화시키는­에서 허용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는 생명, 그리고 삶과 죽음의 순환


생명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삶을 가능케 하는 가장 원초적인 힘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인간 스스로가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 아니며 인간이 자가생산(自家生産)해 낼 수 있는 어떤 것도 아니다. 생명은 당연히 우주 만물의 창조자시요 모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밖으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다. 따라서 생명은 단순히 심장 박동이 살아 있다든지 뇌의 기능이 정지되지 않았다는, 그래서 여전히 호흡이 계속되고 있다는 생물학적인 차원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생명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창세기의 창조 기사에 의하면,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입 기운에서 생겨난다. 창세기 2장 7절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써 사람을 "살아있는 존재"(a living being; 히브리어로 "네페쉬 하야")가 되게 하셨다고 말한다(참조, 시 139:13-16; 욥 10:8-12). 또한 하나님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사람에게 식물로 주셨다(창 1:29). 그리고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새들과 땅에 기는 모든 것들에게는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셨다(30절).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가 단순히 사람을 비롯한 온갖 생명체를 만든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에게 식물을 마련해 주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계속 지탱해 갈 수 있게 해주셨음을 뜻한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일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생명까지도 책임지시는 분임이 이 본문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마태 6:25-28).


이상에서 우리는 인간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달리 말해서 생명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소유권에 속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을 에덴에서 추방하심으로써 그들이 생명나무로 접근하는 것을 막으신 것이 그 점을 뒷받침한다. 이렇듯이 생명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은 인간이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경우(사형 처벌이나 전쟁 등)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생명 손상 행위도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인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출 20:13)을 포함한 시내산 계약법(출 21:12-14; 레 24:17 등)에 인간의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말 것을 규정하고 있다.


넓게 보면 인간 복제 역시 생명 파괴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생명은 오로지 하나님만이 창조하며 인간은 다만 그것을 관리함으로써 하나님의 생명 주권을 존중해야만 하는데, 인간 복제는 생명의 본질을 왜곡시킴으로써 생명에 해를 가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복제된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장기나 인체 또는 유전자 등을 제공할 목적으로 소모품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 그의 생명이 과연 하나님의 보호 영역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를! 이 점은 장기 이식이나 불임 치료를 목적으로 수많은 태아와 배자가 희생되어야만 하는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사실 인체와 생명현상에 대한 모든 연구는 마땅히 생명을 관리하고 보존하는데 머물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 복제는 인체에 대한 불필요한 조작을 넘어 하나님의 고유한 영역에 속한 생명의 창조까지를 넘보는 바, 그것은 정말로 정당화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복제하는 일은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여 창조주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엄밀하게 말해서 인간 복제는 생명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생명의 탄생 과정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로부터의 창조"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 행위와 같은 차원에 속한 것일 수 없다. 도리어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 창조 행위에 간섭하는 것으로서 당연히 배격해야 할 중대한 범죄 행위이다. 인간 복제는 인간을 더 이상 고유한 생명 가치를 지닌 인격체로 보지 않고 하나의 물질이나 실험조작의 대상 또는 언제라도 재생산할 수 있는 상품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인간 복제가 갖는 위험성을 경계하는 한편으로, 생명공학이 생명을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내거나 창조하는데 목적을 두지 말고, 주어진 생명의 탄생 과정을 돕는데 목적을 두도록 적극 장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명의 주인은 오로지 하나님 한 분뿐이시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는 생명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생각하고서, 그 생명을 온전하게 하고 건강하게 하는데 최선을 다하되(이를테면 유전 질환과 난치병을 치료하려는 목적의 유전자 치료와 같은 것), 생명을 창조하거나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일에는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그가 허락하신 기간까지 그것을 보전하면서 그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도리어 죽음을 피하기 위해 무작정 인간 복제와 같은 방법으로 삶의 에너지를 확장시켜 생존의 기회만을 늘이고자 한다면, 그것은 삶과 죽음의 순환을 통하여 인간의 생명을 조절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 될 뿐 아니라, 역으로 인간의 생존 환경인 지구 생태계의 붕괴를 촉진시킬 것이다. 그 까닭에 우리는 무병장수를 목적으로 하는 인간 복제의 두려운 현실 앞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이 갖는 의미를 좀더 솔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맺음말


생명공학이 추구하는 목표는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창조 세계의 절정에 해당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창조 주권을 침해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아울러 남녀 양성의 사랑과 성적인 결합에 기초하여 인간을 창조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무시하려는 교만이 그 안에 잠재하고 있다. 또한 생명과학 기술에 기초한 인간 복제는 하나님의 생명 주권을 넘어서서 인간이 자신에게 대하여 신과 같은 존재가 되려는 잘못된 욕망을 배태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 그것은 인류 공동체의 미래에 엄청난 파멸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비추어 본다면, 그리고 그와 관련된 구약 본문들의 의미에 비추어 본다면, 오늘날의 생명공학이 추구하는 인간 복제의 목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가 될 소지를 충분히 안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창조 주권을 침해하려는 잘못된 의도 내지는 교만함이 그 안에 있음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 까닭에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 복제가 현실화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인간의 본성이나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인간 복제에 대한 찬반 양론과는 무관하게 언젠가는 인간 복제가 이루어질 것이 너무도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 복제를 무턱대고 반대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복제 기술의 건전한 이용­동식물의 경우 및 필요하다면 배아 복제에 이르기까지­을 통하여 인류의 생명과 건강과 복지를 증진시키려는 제한된 노력까지 막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간 복제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무서운 범죄 행위로서 마땅히 금지 대상이 되어야 하겠지만, 복제 기술을 이용한 질병 치료 및 의학적 연구는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는데 상당히 유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복제 기술의 이용을 허용한다 할지라도, 그에 앞서 무엇보다도 먼저 과학자들과 의료인들 및 일반 시민들 모두에 의한 사회적인 합의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보전하기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데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생명공학의 성과와는 무관하게 삶과 죽음의 순환 구조 속에서 세상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신앙적인 통찰 역시 오늘의 우리에게 요청된다고 할 수 있겠다. 어떻게 보면 죽음에 대한 지나친 공포나 두려움이 생명공학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한 가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바, 장차 닥칠지도 모르는 인간 복제의 위험성 역시 마찬가지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죽음을 회피하거나 연장하려는 태도보다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신앙적인 자세가 더 건강한 삶의 태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비록 생명을 연장시키며 보다 나은 생존 환경을 추구한다 할지라도 인간은 궁극적으로 죽음의 의미를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성서마당 46호 특집, 구약성서의 관점에서 본 생명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