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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世代의 ‘세니오르 오블리주’

Joyfule 2015. 6. 30. 11:57

 

 

국제시장 世代의 ‘세니오르 오블리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미국 영화다. 내용보다 제목이 널리 알려져 있다. 노인 문제의 심각성을 거론할 때 흔히 인용되기 때문이다. 원래 영국 시인 W B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에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에 나오는 표현이다. 이 시는 노년에 이른 예이츠가 늙음이라는 인간의 비극적 조건을 성찰한 것이다. 늙을 수밖에 없는 육체의 무력감을 넘어서기 위해 영혼을 갈고 닦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1925년, 그러니까 90년 전에 이런 시를 쓴 예이츠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21세기의 지구촌이 인류 탄생 이래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리라는 것을. 특히 대한민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나이 든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나랏돈(國庫)과 일자리를 두고 젊은이들과 갈등하는 ‘세대 싸움’ 양상도 불거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노인회가 노인 연령 기준을 높이는 문제를 공론화하기로 자체 결정했다. 언제부터 노인이냐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기준은 없지만 노인복지법에 경로 우대, 생업 및 복지 지원 등의 대상을 ‘65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세계 대다수의 나라도 마찬가지다. 노인 연령 기준을 70세로 상향하면 기초연금, 교통요금 등의 복지 혜택을 더 늦게 받게 된다. 당연히 혜택의 크기가 줄어든다. 그 덕분에 절감된 국가 재정을 후세대를 위한 동력으로 썼으면 한다는 게 노인회 측의 설명이다.

온갖 집단 이기주의가 난무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대한노인회의 움직임은 ‘세니오르 오블리주(senior oblige)’, 즉 나이 든 자의 책무라고 할 만하다. 기성세대가 미래를 짊어져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기득권을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13%로 665만여 명이다. 이 연령대가 연간 32만 명씩 늘어나 2020년이면 인구 5명당 1명꼴이 된다. 전체 노인의 70%에게 주는 기초 연금으로 올해 10조여 원이 소요되는데, 10년 후엔 2배 이상이 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선진국들은 앞다퉈 노령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고 있다. 100세 수명을 기대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65세는 노인도, 중년도 아닌 청년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세상이다.

대한노인회의 결정은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한 긍정 여론이 많지만,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대표적 노인단체가 자신들의 이익을 줄이는 결정을 한 것에 숨은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노인들을 ‘꼴통 보수 집단’으로 몰아붙이고 싶어하는 이들은 비뚜름한 입으로 이런저런 추정을 내놓지만 설득력은 없다. 오히려 이번 결정의 대승적 가치를 높여줄 뿐이다. 굳이 숨은 의도가 있다면, ‘우리가 세금만 축내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걱정하는 세대임을 알아 달라’는 정도가 아닐까.

노인연령 기준을 높이면 복지 사각지대가 더 넓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이 수치는 2013년까지의 통계여서 기초연금을 주기 시작한 작년부터 따지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러나 주변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처럼 당장 돈이 없어서 일을 해야 연명할 수 있는 이가 많은 게 현실이다. 노인 기준 연령을 조정하기에 앞서 일자리부터 늘려야 한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기준 연령을 상향하더라도 차츰 단계적으로 시행함으로써 복지 혜택 축소의 충격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옳다.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제도를 시행할 정치권과 정부는 고민해야 한다. 노령 기준 조정 단계를 어떻게 설계해야 복지 사각을 줄일 수 있을지, 청년 일자리와 겹치지 않는 노인 일자리 확대 방안은 무엇인지를.

현재 한국은 청년 일자리와 노인 복지라는 물동이를 양쪽에 지고 가는 물지게의 모양새다. 한쪽이 기울면 물이 와르르 쏟아져 내릴 것이다. 대한노인회의 ‘세니오르 오블리주’는 그 균형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을 선물했다. 시인 예이츠가 꿈꾼 것처럼 노년의 지혜가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식민지, 전쟁, 가난을 겪으면서도 자식 세대에겐 고생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피땀을 흘렸던 ‘국제시장 세대’가 아닌가. 이들의 헌신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집단 이기주의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