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성을 위한 ━━/세상보기

국토대장정의 허실...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Joyfule 2012. 8. 4. 03:04

 

 

지난달 30일 오후 8시쯤 울릉도에서
묵호항으로 향하는 여객선. 이모(15·중3)양은 탈출을 결심했다. 이양은 총대장 강모(55)씨가 이끄는 한국소년탐험대 국토 대장정에 26일부터 참가 중이었지만, 이 프로그램은 정상적인 국토 대장정이 아니었다. 56명이 참가한 이 대장정에선 끔찍한 일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양은 1층 선실에서 강 총대장의 감시를 벗어나 2층 조타실로 절룩거리며 몰래 들어갔다. 발각되면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떨렸다. 다른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용기를 냈다.

↑ [조선일보]국토 대장정 도중 폭행을 당한 여중생의 모습. 왼쪽 허벅지에는 성인 손바닥 크기의 피멍이 맺혀 있고, 종아리와 무릎 곳곳에는 깨지고 긁힌 상처가 있다. /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

선장을 만난 이양은 눈물을 흘리며 "아저씨, 살려주세요"라고 애원하며 온몸에 난 상처를 보여줬다. 선장은 깜짝 놀라 즉시 이양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양을 비롯한 참가자들은 전화기를 모두 총대장 강씨에게 맡겼기에 집에 전화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신고를 받은 해양경찰이 이날 오후 9시쯤 묵호항 선착장에 도착한 강 총대장 등의 신병을 확보하면서 학생들은 부모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20일 일정을 채우지 못하고 지옥 같은 4박5일은 이렇게 끝났다.

이양을 1일 오후 전북의 시내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이양은 왼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었다. 반바지 밖으로 드러난 두 다리는 상처투성이였다. 직접 자신의 반바지를 접어 들추니 왼쪽 허벅지엔 어른 주먹만한 크기의 진보랏빛 피멍이 드러났다. 종아리와 무릎에도 깨지고 긁힌 상처가 있었다. 넘어지면서 콧잔등도 심하게 긁힌 상태였다. 이양은 "사람들 만나는 게 겁난다"고 했다. 딸과 함께 나온 이양의 어머니(43)는 "키우면서 한 번도 매를 안 들었는데, 어떻게 애가 이렇게 될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때는 죽는 줄 알았어요."

지난달 30일 오전 11시쯤, 울릉도 성인봉을 오르던 이양은 탈진해 쓰러졌다고 한다. 전날 시멘트 바닥에서 노숙한 데다, 아침으로 밥과 소금, 깨로 버무린 주먹밥 하나만 먹었기에 걷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양은 눈앞이 희미해졌다.

"집에서 오냐오냐 자라서 할 줄 아는 게 없어!" 강 대장이 이양을 향해 소리를 쳤다. 이양이 일행보다 뒤처지자 강 대장은 "너 혼자 무슨 꼴이냐. 정상에 못 오르면 다 너의 책임"이라며 나뭇가지로 수십 차례 매질을 했다.

"어깨·엉덩이·종아리·허벅지 가리지 않고 맞았어요. 정신이 없어서 아픈 줄도 몰랐죠. 몸이 축 늘어진 나를 다른 관리자들이 30분 동안 질질 끌고 다녔어요."

강 대장은 "저렇게 맞지 않으려면 제대로 하라"며 다른 아이들에게 겁을 줬다고 이양은 전했다.

등산객들이 무릎에 피가 흥건히 맺힌 이양을 보고 "무슨 일이냐. 힘들어 보인다. 다친 것이냐"고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총대장이 거느린 다른 대장들이 접근을 차단했다. 이양은 "우리는 포로처럼 걷기만 했다"고 말했다.

앞서 이양은 친구들과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정보를 입수한 뒤 이 행사에 참가했다고 한다. "힘들 것은 예상했어요. 그래도 친구들과 산속을 걷다가 약수도 먹고, 텐트 치고 밥도 해먹고 뭐 이런 추억 쌓기를 상상했죠."

방학과 동시에 서울 외가에서 생활하던 이양은 지난달 26일 국토 대장정 첫날 오리엔테이션에 맞춰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도착했다. 이 자리에서 휴대폰과 돈, 시계 등을 압수당했다. 기차 편으로 강원도에 도착한 이양 일행에게 기다린 것은 노숙이었다. 7명씩 8개조로 편성된 대원들은 여객선터미널 주차장 시멘트 바닥에 앉아 가방에 기대 졸면서 아침을 기다렸다. 식사는 하루 두 끼만 제공됐다고 한다.

형편없는 식사는 그나마 견딜 만했다. 수차례 목격한 구타와 성추행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강씨는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김모(16)양에게 "걷다 보면 더우니깐 '젖가리개(브래지어)'를 벗고 가라"며 성추행적 발언을 큰 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한 남학생은 성게 가시가 여러 개 발바닥에 박혀 응급 치료가 필요했지만, 강씨는 웃으며 "이런 경우 많다. 병원 갈 필요 없다"면서 그 학생을 자갈 위에 눕히고 휴대용 칼로 가시를 뺐다고 한다. 이 학생은 나중에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무 막대기로 맞은 남학생도 있었다. 이양은 "'아~아' 하는 신음과 '퍽퍽' 하는 구타음이 산속에 울렸다"며 "지옥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