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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어본 박지원

Joyfule 2012. 8. 2. 23:31

내가 겪어본 박지원
박지원 vs. 검찰, 어째 조마조마 하다

한명숙이 무죄판결을 받았을 때 검찰은 폐족(廢族)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판사들이 공안사건 피고인들을 ‘증거 불충분’이나 “국가안보를 심각하게 위해한 것은 아니다“라는 이유로 가볍게 처벌하거나 풀어주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검찰은 더욱 체면을 구기곤 했다.

그런 검찰이 이번엔 박지원을 소환했고, 박지원은 그에 불응했다.

검찰의 그나마 남아 있는 명줄이 왔다 갔다 할 판이다.

박지원은 한 마디로 술사(術士)다. 성깔도 있다. 부지런하고 민첩하다. 정보력도 대단하다.

로비 능력도 탁월하고 맞장뜨기 실력도 만만치 않다.

얼마나 그랬으면 김대중이 그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듯 애지중지 했을까.

전날 저녁 폭탄주를 마시고도 이튿날 새벽이면 칼같이 김대중 집에 대령해서 그날의 브리핑을 하고 지침을 받곤 했다는 박지원.

필자도 신문사 현직에 있을 때 이런 박지원을 종종 접했다.

김대중에 대해 꽤 비판적인 글을 썼던 필자가 그는 미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미운 상대방을 아예 만나지도 않을 법 한데도, 필자를 만나 웃으며 이야기 하곤 했다.

그리고 그는 만날 때마다 필자에 대해 화를 내지 않았다. 웃음 속에 칼이 있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류근일 칼럼이 나오면 제 주변에선 개xx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만한 영향력이 있다는 이야기이니 대성한 것 아닙니까?”
하고 나직하게 말하는 게 그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불특정 다수를 빌어 개xx라는 욕을 입에 올렸으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

어느 때인가는 사직동 어느 한정식 집에서 술을 곁들인 저녁을 함께 한 적이 있다.
그 때도 역시 농담과 웃음이 있었다. 하... 그런데... 그 집 여사장이란 이가 들어오더니 자기도 술을 좀 마시겠다고 했다. 연거푸 몇 잔을 원 샷으로 들이키더니 취기가 오르자 이 여자가 진한 사투리로

 “지가 뭐냐?”며 필자와 필자 직장에 대해 삿대질을 해대며 육두문자로 행패를 부리는 게 아닌가?

필자는 순간 생각했다. 상을 걷어차고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 결국 실실 웃으며 끝까지 참았다.

화를 내라고 작심하고 싸움을 걸어 온 것인데 불같이 화를 내주고 난장판을 만들어 주고 판을 키워주면 “류근일이 당해 싼 봉변을 당하고 아주 웃기는 꼴이 됐다”는 스토리를 온 장안에 ‘기정사실’로 퍼뜨릴 것 아닌가?

그녀는 그날 저녁, 식당주인이 아니라 완전히, 마치 무슨 열성당원 같았다.

박지원은 시종 들릴 듯 말듯 한 소리로 아주 나직하게 지나가듯 말할 뿐이었다.
“그러는 것 아니다”

 

김대중 집권초기 밤에 중앙일보 사장실에 술을 먹고 찾아와 “우리도 이제 집권을 했습
니다!” 하며

유리컵을 탁자에 던졌는지 떨어뜨렸는지 해서 깬 이야기는 중앙일보 친구들을 통해 익히 들은 바 있다.

집권 직전 선거기간엔 각 신문사에 거의 매일같이 들러 지극히 공손한 매너로 허리 굽혀 인사하고 자기진영 입장을 간곡하게 소명하던 ‘말끔한 신사’ 박지원이 집권을 하자마자, 적어도 그날 밤 중앙일보 사장실에선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던 모양이다.

김대중 정부가 조선일보를 ‘세무사찰’로 죄었을 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들은 필자와 필자의 동료를 제거할 것을 사주에게 ‘최후통첩’ 했다고 한다.

사주는 그걸 단호하게 거절하고 곤욕을 치렀다.

그 무렵 필자는 사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문이 열리자 그 안에 타고 있던 박지원을 보았다.

“아니 실세(實勢)께서 여기 웬일로?” 하고 필자는 웃으며(이 웃음 속에도 칼이 있었던가?) 물었다.

그 역시 웃으며 응수했다.

“실세(實勢)가 아니라 실세(失勢)지요”
여러 해가 흘렀다. 황장엽 선생이 작고했을 때 장례위원회를 맡게 되었다.

민주당에선 조문을 가느냐 안 가느냐로 고심했다고 한다.

안 갈 수는 없고 그 대신 가기는 가되 절대로 웃음은 짓지 않기로 결론이 났던 모양이다.

박지원과 그 일행은 짧은 조문 동안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돌처럼 굳은 표정을 지으면서.
필자는 그러나 돌아가는 박지원 등 뒤에다 역시 나직하게 말했다.
“우린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러자 그는 돌아다보며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 채, 입 가장자리에 살짝 변화를 일으키는 정도로 반응했다. 검찰이 이런 박지원을 두고 과연 완벽한 증거를 수집하고 있는 것일까?

걱정된다.

TKO 시킬 만한 걸 쥐었으면 칼을 빼고, 그렇지 않고 섣부르게 했다가는 검찰은 죽는다.


류근일 /본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