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주의 IS 현상과 미래전망(2)
2016년 2월 24일 중보기도팀
이슬람의 기계론적 세계관
고대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의 통치기간에 전개된 헬레니즘 및 그리스 철학사상에 영향을 받은 이슬람 세계는 자연과학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10세기 이후에는 이슬람 신학사상과 법사상까지 현저히 발달시켰다. 고대 그리스 과학과 철학 사상은 그리스가 기독교화 되면서 쇠퇴했으나 식민지였던 페르시아 지역에 전파되어 남아 있었다. 페르시아 철학자들은 그리스 철학사상을 발전시켰는데, 이후 페르시아가 이슬람화 되면서 지적으로 훈련된 페르시아 학자들이 이슬람의 신학체계를 발전시켰던 것이다. 이 결과로 그리스의 기계론적 우주론이 이슬람 신학사상의 근간이 되었다. 그래서 이슬람의 세계관은 기계론적 세계관이며 철저히 공동체의 통일을 추구하는 전체주의적 기조가 강하게 되었다.
이슬람 신학사상은 후에 스페인을 거쳐 라틴 세계에 유입되어 토마스 아퀴나스의 기독교 신학체계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중세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발생하기 이전에 이슬람교는 서구 기독교에 비해 과학과 철학적 측면에 있어서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이슬람 문명은 해양 항해술을 발달시키고 국제교역을 확장시켰으며 그 영역을 동남아시아 및 동아시아까지 확대시킴으로써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문명으로 부상하였다.
또한 이슬람 신학사상 역시 더욱 정교하게 체계화되어 있었는데, 이슬람의 스페인 지배시기에 상대적으로 덜 발달한 신학체계를 가진 스페인 라틴계 기독교 성직자들에게 도전과 영향을 주었다. 중세 스콜라 철학사상은 고대 그리스 철학사상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것은 그리스에서 직수입된 것이 아니라 이슬람을 거쳐 간접적으로 들어 온 것이었다. 이 결과 중세 기독교 사상은 기계론적 세계관이 지배적이며, 인격적 관계성보다는 종교사회의 질서와 통일성을 강조하는 전체주의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말 그대로 ‘가톨릭적’인 것이다. 나중에 이를 극복한 것이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이었다.
정교일치의 종교 이슬람
따라서 통일체적 집단공동체를 추구하는 이슬람종교에서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원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슬람종교의 목적은 움마, 즉 신정통치가 이루어지는 이슬람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슬람종교 집단의 행위는 곧 사회적 및 정치적 의미를 가지며, 이슬람종교의 교리와 가르침은 이슬람 신학사상을 넘어 사회사상이며 사회규범이고 실정법으로 작동한다. 일찌기 1914년에 소련학자 바르트홀드(Barthold)가 지적하였듯이 이슬람의 종교적 슬로건은 단순히 종교적 가르침을 넘어서 이슬람종교집단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선동적 의미를 가지며 정치운동의 도구이다. 이러한 사실은 근대 이슬람운동의 현상에서도 잘 나타난다.
한편 헬레니즘의 보편주의에 기초한 서구문명과 유일신 사상에 기반한 이슬람 문명 둘 다 보편주의 및 세계주의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두 집단은 힌두교처럼 자국 영토 범주 내에 머물러 있지 않고, 전 세계에 대한 팽창주의적 성격으로 나타난다. 즉 서구문명이나 이슬람문명 둘다 글로벌 비전을 가지고 이념과 체제의 세계화를 추구하는 있다는 점이다. 보편주의 이념을 가지고 세계화를 추구하는 두 진영 간의 긴장과 경쟁은 근본적으로 불가피하다.
정치적 이슬람 Political Islam
이슬람초기 무함마드 시대에도 이슬람종교운동은 다분히 사회변혁 운동이었으며 정치운동이었다. 역사적으로 이슬람종교 운동은 끝없는 살상과 전쟁을 통해 추진되었다. 근대 이슬람종교의 부흥운동 역시 사회운동이었으며 정치운동이었다. 이슬람종교는 그 중심에 언제나 정치적 이슬람(Political Islam)의 특성을 나타낸다.
16~17세기에 들어서 오스만제국이 오스트리아 공략에 실패하고 지중해 해전에서 패함으로써 이슬람세계는 서구세계에 대해 상대적 약세를 지속하며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쇠퇴의 원인을 이슬람종교의 변질과 타락으로 규정하고 이슬람종교 순화운동을 통해 이를 극복해보려는 무슬림 집단이 등장하였다. 그들은 원시 이슬람공동체의 가르침과 원리로 회귀하는 것을 종교개혁의 방향으로 보고 대중적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와같은 근대 초기 이슬람 문명을 특징짓는 종교 원리주의 혹은 근본주의 운동의 시작은 오스만제국 후반기에 형성되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와하비(Wahhabi)운동, 사누시(Sanusi)운동 및 마흐디(Mahdi)운동을 들 수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18세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한 와하비운동이다.
정치적 이슬람운동의 뿌리 와하비즘
와하비즘 또는 와하비 운동은 근대의 고전적 이슬람 부흥운동의 효시로서 18세기에 발생한 이슬람 부흥운동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다. 호전적 성격이 강한 와하비 운동은 베두인 출신 무함마드 이븐 압둘 알 와합(Muhammad ibn Abd al-Wahhab, 1703-1792)에 의해 시작되었다. 와합은 정통 이슬람 법학파 가운데 가장 보수적이었던 아흐마드 이븐 한발(Ahmad IbnHanbal, 780-855)의 한발리(Hanbali)사상의 영향을 받아 쿠란과 순나의 증거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고 쿠란과 순나를 엄격하게 적용하여 이슬람 순화운동에 초점을 맞추어 이슬람 부흥운동을 꾀하였다. 그는 성자숭배나 묘지참배 행위 등 미신적 행위를 강력히 배격하였다. 와하비 집단의 교리 핵심은 신의 유일성을 강조하는 것이며, 종교운동의 목표는 순화된 무슬림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다.
와하비 운동은 초기부터 현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자이자 초대 왕인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Muhammad Ibn Saud)와 연대하여 강력한 정치사회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1745년 이븐 사우드와 만난 와하비는 신의 유일성에 근거한 새로운 국가건설에 합의하였다. 이븐 사우드가 정치적 통치권과 세속적 권위를 갖는 반면, 이븐 압둘 와합은 종교적 리더십과 교화의 행사권을 갖는 동반적 제휴가 이루어졌다. 이와 같이 근대 초기 와하비 이슬람운동은 종교적 비전과 군사력이 결합함으로써 무력을 사용하는 지하드를 통한 강력한 이슬람 부흥운동이요, 정치사회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이렇게 건설된 사우드 왕조는 아라비아반도의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면서 사우드 왕조는 당대에 오스만제국에 승계되어 내려오고 있던 칼리프 직제를 잘못된 관행으로 규정하여, 이를 추종하는 무슬림들의 믿음을 불신행위로 단죄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1802년 이라크를 공략하여 그 영토를 확장하였다. 이때 시아파의 이맘 숭배와 묘지참배 관행을 단죄하고 처단함으로써 시아파와의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후 메카와 메디나를 장악한 사우드 와하비 집단은 중앙아시아와 인도에까지 그 영향력을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1819년 이집트 집권세력인 근대주의자 무함마드 알리에게 진압된 와하비 집단은 1900년대 초에 이크완(Ikhwan) 운동으로 재기하였다.
아라비아 중심주의적 경향이 강했던 와하비 이슬람운동은 무슬림 집단의 종교 순화운동을 통한 부흥운동의 모태가 되었으며 동시에 이후 계속되는 과격 이슬람 근본주의 정치운동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다.
이슬람운동의 특성
첫째, 이슬람종교가 기원후 7세기 당대 세계제국인 비잔틴제국과 페르시아제국이 경쟁하던 사이에 변방 아라비아 반도에서 발생하였듯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운동, 리비아의 사누시운동, 수단의 마흐디운동 등 근대의 모든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이 모두 당대 최대의 제국인 서구 기독교제국과 이슬람 세계의 오스만제국이 갈등하고 경쟁하던 사이에 제국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 아라비아에서 발생하였다.
둘째, 근대 이슬람운동은 모두 종교적 카리스마를 가진 특정 인물에 의해 주도되었다. 최근에도 알카에다의 빈라덴, IS의 아부바키르 알바그다디가 그러하다. 따라서 지도자가 사라지면 일단 그 조직도 현저히 약화되고 운동성도 쇠퇴한다.
셋째, 근대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이 대개 탈세속화를 추구하고 있는데 여기서 탈세속화 운동은 곧 근대 서구사상에 대한 대응 적 저항적 측면에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이슬람 운동은 반서구적 저항운동으로 나타난다.
넷째, 이슬람 종교운동은 알라신의 통치(Hakimiyyat Allah)가 세계에 이루어지는 것이 목표이다. 세계를 이슬람화하는 사회정치 운동이 이슬람 이데올로기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글로벌 지하드, 글로벌 테러리즘
따라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한편으로는 지배세력에 대항하는 저항운동을 전개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슬람을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포교한다. 지난 수십년간 사우디 출신 청년들이 글로벌 지하드를 전개하고 사우디정부는 이슬람을 전세계에 포교하였다. 작금의 국제 이슬람운동은 18세기 와하비운동의 국제화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운동으로 시작한 이슬람주의 운동은 형식은 이슬람 부흥운동이지만 내용은 지하드 정신과 결부시킨 ‘실천하는 정치적 행동주의’로서 글로벌 지하드, 글로벌 테러리즘으로 확대된다.
IS 공식 사이트에는 “가장 높은 수준에서 알라를 예배하는 것은 곧 테러를 행하는 것이다”라고 적혀있다. 이슬람에서는 예배의 극치는 알라의 이름으로 테러를 자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이슬람의 반서구 저항운동이며 또 글로벌 지하드이다.
(출처: 뉴스파워)
글 내비게이션
'━━ 지성을 위한 ━━ > 이슬람에대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슬람의 기독교 혐오증, 왜 간과되나? (0) | 2017.07.23 |
---|---|
급진주의 IS 현상과 미래전망(3) (0) | 2017.07.20 |
급진주의 IS 현상과 미래 전망(1) (0) | 2017.07.18 |
이슬람 이전의 아랍 종교와 알라의 기원 (0) | 2017.07.16 |
"이슬람은 그 자체가 문제이다" 시리아 여성의 증언영상 (0) | 2017.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