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 내 머리 위로 폭탄을 날리려고 한다. 이럴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당연히 내가 맞기 전에 적을 쳐야 한다.” 만약 이스라엘이 이런 말을 했다면 흥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한 자위권 아니야?’ 이 정도로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한 나라가 일본이고 적이 북한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무대가 한반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이 2002년 선제공격을 용인하는 국가방위보장전략을 책정했을 때 우리는 이렇게 흥분하지 않았다. 우리가 흥분하는 것은 선제공격 운운하는 당사자가 바로 ‘경솔하기 짝이 없는 결정을 내린 경력’을 가진 일본이기 때문이다.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잘못된 판단으로 아시아를 불바다로 만든 경험이 있다.
그럼 일본은 앉아서 당하라는 얘기인가? 그렇지는 않다. 일본 정부는 이미 “앉아서 당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예전부터 표명해 왔다. 이른바 ‘적(敵)기지 공격론’이다. 일본은 적이 쏘아 올린 미사일이 일본에 떨어졌을 때 적을 공격할 수 있다. ‘다른 수단이 없고 필요한 최소한의 실력행사라면, 헌법상 적 기지를 때리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일관된 견해다. 이 정도는 패전 후 일본 방위정책의 근간인 ‘전수(專守)방위’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적의 미사일 발사가 임박하지 않았을 때에는 적 기지를 공격할 수 없다. 문제는 발사가 임박했을 때다. 즉 폭탄을 날리려고 하는 시점이다. 일본 정부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①국제정세 ②상대국의 명확한 공격 의도 ③공격의 수단 등을 기초로 (적이) 공격에 착수했다고 판단되는 경우엔 적 기지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까다로운 조건이 붙긴 했지만 정부 견해로는 이미 일격을 얻어맞기 전에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셈이다.
일본 언론은 선제공격 파문을 “낡았지만 새로운 논의”라고 표현한다. 오래전에 제기된 문제이지만 제기할 때마다 봉인되고, 다시
봉인되는 과정을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의 적 기지 공격론은 공격이 가능한 경우의 수를 조금씩 늘려왔다.
적 기지 공격론이 처음 제기된 것은 1956년이다. 하토야마 이치로 당시 총리는 국회 답변에서 “일본에 대한 유도탄 등에 의한 공격이 감행됐을 경우 앉아서 자멸해야 한다는 것이 헌법의 취지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을 토대로 일본 정부는 ‘확실한 침해가 발생할 경우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적의 유도탄 기지를 공격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자위의 범위에 해당한다’는 것을 통일 견해로 정리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개념인 ‘확실한 침해’에 대해선 구체적인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봉인했다.
1970년대엔 적 기지 공격 착수 시점에 대해 “무력 공격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는 시기도 아니고, 무력 공격에 의한 현실적인 침해가 발생한 이후도 아니다”라는, 하나마나한 말로 다시 입장을 흐렸다. 보다 분명한 정의는 2003년 당시 방위청 장관인 이시바 시게루의 발언이다. 그는 “북한이 미사일에 연료를 주입하는 시점을 일본에 대한 무력 공격의 착수 시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번 북한의 동해 미사일 발사의 경우처럼 연료를 주입했다고 무조건 적 기지를 때리겠다는 뜻이 아니라 명확한 일본 공격의 의도를 파악했을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북한이 공식적으로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지 않는 이상, 일본이 파악한 북한의 공격 의도는 자의적 해석에 머물 수밖에 없다.
최근 일본 각료의 발언은 1956년 하토야마 발언의 연장선상에 있다. 새로운 선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잘 들어보면 그런 것도 같다. “북한 미사일 기지를 공격하는 것은 헌법의 자위권 범위 안에 있다는 견해가 있는 만큼 논의를 심화할 필요가 있다. 일본 국민과 국토, 국가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의 관점에서 검토, 연구할 필요가 있다”(7월 10일 아베 신조 관방장관), “독립국가로서 일정한 틀 안에서 최저한의 것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당연하다”(7월 9일 누카가 후쿠시로 방위청장관) ,“(핵이) 미사일에 실려 일본을 향하고 있다면 피해가 생길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7월 9일 아소 다로 외상) 등의 발언은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표방한 ‘적 기지 공격론’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미사일 파동에 대한 일본의 움직임을 선도하는
아베 관방장관 스스로 7월 12일 기자회견에서 “누구도 선제공격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다만) 우리나라에 유도탄 등에 의한 공격이
행해진 경우에 … 유도탄 등의 기지를 공격하는 것은 헌법상 자위권의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인 일본이 공격할 수 있는 ‘적의
공격 착수 시점’에 대해선 “현실적으로 착수를 판단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 (적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시점은) 미사일이 착탄되고 피해가 발생한
후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공격 시점을 명확히 정의한 것은 아니지만 10년 전 하토야마 내각이 말한 ‘확실한 침해’를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해석에 따라서는 이시바 장관의 2003년 ‘연료 주입 시점’ 발언보다 훨씬 공격의 경우의 수를 줄인 내용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독립국가로서 일정한 틀 안에서 최저한의 것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당연하다”는 이번 누카가 장관의 발언이다. ‘최저한의 것’이란 물론 공격 능력을 말한다. 일본은 정부 견해로 적 기지 공격의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실제로 적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1969년 미국 닉슨 정권 당시 정립된 미·일 안보체제의 기본 골격은 (일본 열도에서) 일본에 방패의 역할을, 미국에 창의 역할을 맡기고 있다. ‘적 기지 공격론’에 대한 일본 국내의 반대 여론도 일본이 공격 능력을 갖추는 길을 막았다.
1971년 일본이 미국제 전투기 F4를 도입했을 때 일부러 공중 급유구(給油口)를 틀어막고 배치했을 정도다. “공중 급유 능력을 갖추면 다른 나라로 연속 비행이 가능해 ‘전수방위’에 반한다”는 당시 야당인 사회당 국회의원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2004년 일본 정부가 사정거리 1250~2500㎞의 미사일 개발 계획을 세웠을 때도 야당의 반대로 예산이 전액 삭감돼 계획이 유보됐었다.
조선일보 유용원 군사전문기자에 따르면 일본이 전투기로 공습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일본의 주력 전투기 F15J는 공대공(空對空) 전투 위주이므로 지상 공격 능력이 취약하다. 한국 공군의 F15K와 다르다. 폭탄이나 공대지 미사일로 공격할 수 있는 전투기는 최근 개발한 최신형 F2 지원전투기와 구형 F1 지원전투기, 구형 F4EJ 전투기 정도이지만 F2가 오키섬에서 이륙하더라도 계속 높은 고도로 비행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공격에는 적용하기 어렵다. 일본이 1994년 시뮬레이션 결과 구형 F1 지원전투기와 F4EJ가 북한 폭격 후 돌아오다 연료 부족으로 바다에 추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일본 정부가 지금 실제로 추구하는 것은 선제공격론을 명확히 해 국제적 반발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군사 능력을 갖추는 길을 여는 것이다. “적 기지 공격이 일본 헌법의 전수방위 개념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일본 정부의 견해를 보면 일본이 당장 적 기지 공격 능력을 갖춰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다. 이번 기회에 군비 확충의 실질적 걸림돌이었던 여론을 움직이는 것이 일본 정부의 계산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일본에선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등을 제외하면 이번 정부 각료의 ‘적 기지
공격론’에 대한 국민 여론의 비판이 강한 편은 아니다. 야당인 민주당 오자와 이치로 대표가 “먼저 공격 당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적의 기지를
공격할 수는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자민당과 연립 여당을 운영하는 공명당도 “선제 공격을 할 경우 전면 전쟁이 된다”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북한에 대한 일본의 강공 기류를 억누를 수준은 못 된다. 오히려 한국 정부의 반발이 일본 국내로 피드백해 일본 정부의
반응을 끌어내는 구도다.
우리는 둔감하지만 북한 미사일에 대한 일본 국민의 공포는 매우 크다. 이번에 쏘아올린 북한 미사일이 러시아 앞바다에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의 87%가 ‘불안을 느낀다’고 응답했다(교도통신 7월 7, 8일 여론조사). ‘매우 불안하다’는 응답자가 45%에 달했다. 전쟁을 경험한 노년층일수록 불안을 더 크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에서 전쟁을 혐오하고 재군비를 반대하는 중심 계층이 전쟁경험 세대라는 사실은 북한 미사일이 일본 국민의 여론 흐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국민 대다수가 앉아서 당하지 않을 선제공격과 공격 능력 증강을 지지하는 국면이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도발은 늘 일본의 군비 확장으로 이어졌다. 1993년 5월 북한의 노동미사일이 일본 노도반도 앞바다에 떨어진 이후 “탄도미사일 대처 능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이런 여론은 1996년 미·일 미사일방어(MD) 정보제공 양해각서 체결, 1997년 미·일 방위협력을 위한 지침(가이드라인) 개정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다. 1998년 대포동 1호가 일본 상공을 지나 태평양에 떨어진 사건도 MD 시스템 도입을 현실적인 문제로 부각시켰다. 일본 정부는
정보수집위성 도입을 결정했고, 2000억엔이 넘는 비용을 들여 결국 2003년 독자 정보위성 2기를 발사했다. 1999년에는 미국과 함께 개량형
MD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에도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여론이 비등하면서 노로타 호세이 당시 방위청장관이 “일본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도
자위권 발동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훗날 방위청장관이 된 나카타니 겐 의원은 “일본에 찾아온 50년 만의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지난 7월
8일 아소 외상의 “김정일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도쿄=선우정 조선일보 특파원 (s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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