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 김남주(金南柱)
조상 대대로 토지 없는 농사꾼이었다가
꼴머슴에서 상머슴까지
열 살 스무 살까지 남의 집 머슴살이었다가
한 때는 또 뜬세상 구름이었다가
에헤라 바다에서 또 십년 배 없는 뱃놈이었다가
도시의 굴뚝 청소부였다가
공장의 시다였다가 현장의 인부였다가
이제는 돌아와 고향에
황토산 그늘에 쉬어 얹은 나그네여
나는 안다 그대 젊은 시절의 꿈을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이었으니
보습 대일 서너 마지기 논배미였다
어기여차 노 저어 바다의 고기 낚으러 가자
통통배 한 척이었고
풍만한 가슴에 푸짐한 엉덩판
싸리울 너머 이웃집 처녀의 넉넉한 웃음이었다
그것으로 그대는 족했다
그것으로 그대는 행복했다
십 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서도
선뜻 강 건너 마을로 들어서지 못하고
바위산 그늘에 쉬어 앉은 나그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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