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골목사이다.
필자가 사역을 하며 살고 있는 곳은 충주 변두리의 한적한 시골이다. 자그마한 마을 꼭대기에 있으며, 뒤로는 아담한 산이 있고 옆으로는 고속도로가 지나가며 앞쪽에는 산과 밭이 어우러져 있는,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농촌풍경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의 주민들은 7,80대의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분들은 일 년 내내 경로당에 모여서 10원짜리 심심풀이 화투를 치거나, 사소한 사건을 벌려놓고 엄청난 입담을 퍼붓는 TV연기자들에게 한가한 일상을 맡긴 채 무료한 하루해를 보내고 있다. 그들은 필자가 영성학교라고 이름 붙인, 하얗고 너른 집에서 무얼 하는 지 도무지 관심이 없다. 그렇게 무정한 세월을 보내다가 하나 둘씩 이 땅을 떠나갈 것이다.
영성학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필자가 이런 시골구석에서 말도 안 되는 사역을 한다고 생각하기 십상일 것이다. 아시다시피, 8,90년대의 정점을 찍은 후로 우리네 교회는 속절없이 떠내려가는 중이다. 어린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이 교회에서 사라지고 있으며, 노인들만 드문드문 남아서 일생 해오던 종교의식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중이다. 평생 동안 해왔던 신앙행위인데 이제 그만 둘 이유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 인생을 바친다면서 신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한 젊은 목회자들은 중견교회나 대형교회에서 전도사나 부목사로 경력을 쌓다가, 담임목사로 불러주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갈 태세이다. 지금 개척을 한다는 것은 쫄딱 망한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신도시에서 번듯한 교회건물을 구입하여 폼 나게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꿈을 꾸는 목회자들은 아버지의 교회를 물려받은 금수저이거나, 장가를 잘 들어 처갓집에서 교회건물을 지어주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 시골구석에서 교회를 개척한답시고 눌러앉아있다면 정신이 나간 목회자일 게 뻔하다.
필자가 하는 사역 장소가 교회가 아니라 기도원이라면서,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거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주변에 기도원 사역은 일찌감치 막을 내린 지 오래되었다. 필자가 3년 전에 충주에 처음 와서 월세 20만원씩 주면서 세 들어 살았던 허름한 농가주택의 주인어르신이 갑자기 돌아가시자, 집을 물려받은 치과의사인 부자아들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게 싫어서 나가라고 하였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근처에 기도원 하던 건물들을 찾아가 보았다. 그랬더니 대부분 방치해서 폐허가 되어 있거나 장애인 시설 등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기도원을 유지하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사실 우리네 주변에 타는 목마름으로 기도하고 싶어서 기도원을 찾는 이들이 현저하게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곳은, 목소리가 큰 부흥사들이 약장사처럼 뻥을 치면서 희망고문을 던져주는 곳이거나, 아니면 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운영하는 곳일 것이다. 왜 예전에 수도 없이 난립하던 기도원에 사라지게 되었는지 아는가? 기도의 응답이 내려오지 않아서이다. 이는 새벽기도회가 맥없이 명맥만 유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오지 않기에, 새벽기도회는 다른 교인들의 눈치를 보는 교회 중직자들이 담임목사의 눈도장을 찍거나, 새벽잠이 없는 노인들이 하루일과를 시작하는 곳으로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당신도 궁금할 것이다. 노인들만 듬성듬성 사는 한적한 시골에서 목회를 한다면, 밥이나 먹고 사는 지 궁금하지 않겠는가? 필자가 3년 반 전에 평생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충주의 한적한 시골에 왔을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대전에서 10년이 넘도록 아내와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며 입에 풀칠을 하면서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것도 힘들었는데, 일면식도 없는 노인들이 살고 있는 시골동네에 와서 어떻게 먹고 살 건지 도무지 답이 안 나왔다. 그래서 손가락만 빨다가 견디지 못하면 대전에 도로 가서 화장품 장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필자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성령의 명령 때문이었기에 처음부터 거절할 수 없었기에 말이다. 그렇게 3년 반이 흘러갔으며, 필자의 기우와는 반대로 지금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짐작하셨겠지만, 필자가 이곳에서 교회 공동체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교회를 개척하려면 그동안 살고 있던 대전이나, 새롭게 이사를 오는 신도시에 가서 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6:25~34)
당신은 위의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가슴에 새겨지면서 아멘이 절로 나오는가? 필자도 그동안 인생 실패자로 빚더미에 앉아서 마구 떠내려갔던 지난 시절, 이 말씀이 도무지 와 닿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세상의 어떤 교회에서도 볼 수 없는, 필요를 넉넉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글을 읽은 많은 사람들도, 필자가 그동안 겪었던 암울한 처지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가 한 대로,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에 일생을 걸어보시라. 필자는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오로지 하나님을 부르며 인생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 이글을 쓰고 있다. 그동안 기적과 이적을 수도 없이 경험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인생의 불행과 고통에 휩싸여,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다고 눈물이 앞을 가리신다면 하나님을 간절히 부르는 기도를 시작해보시라. 필자 역시 오랫동안 고생의 떡과 슬픔의 눈물을 마시며 살았던 인생 선배로서 말씀드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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