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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 - 정영숙

Joyfule 2012. 10. 15. 10:01

  나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 - 정영숙 

 


나는 아직도 아침노을의 찬란한 꿈을 꾸고 있다오

남들은 나를 보고 해 저무는 하늘에 날아가는 기러기라 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침노을에 반짝이는 잔잔한 파도의 물결을꿈꾸고 있다오
나는 아직도 오색 물들인 어여쁜 옷을 입고 있다오

더러는 나를 보고 불타버린 산 위에 올라서서 산울림을 그린다 하지만

나는 고향 산천에 피어있는 어여쁜 들꽃의 손짓을  꿈꾸고 있다오
내가 살아서 꿈을 꾸는 동안은 운명의 바위도 무서워 굴러가리라 
내가 살아서 꿈을 꾸는 동안은 운명의 가시도 불타서 재가 되리라

오- 나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오. 

 

이 노래 말은 작년6월에 작곡(김현지)과 함께 CD로 출반되어

많은 가곡 애창가들에게  불리고 있는 ‘나는 아직도 꿈꾸고 있다오’ 全文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세 가지 꿈을 꾸었는데, 첫째는 음악가가  되는 것이요, 둘째는 문학가가 되는 것이요, 셋째는 노년에 봉사자의 길로 가서 주님의 일 하다가 주님 부르시면 아주
가뿐한 마음으로 세상과 이별을 하고 천국을 갈 것이다. 라는 -. 

이런 꿈을 나름대로 이루어 가고자 노력은 하였지만, 내 한계가 그뿐인지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아 큰 뜻은 다 펼치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오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첫 번째인 꿈인 음악은, 모태에서부터 부모님의 찬송가를 듣고 태어났기에 귀에 익숙해져서 피아노를 전공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고, 또 그로인하여 음악은 나와 70년을 동행하였다. 두 번째 꿈인 문학은 전여 예상하지 못했든 50세의 나이에 교도소 봉사와 함께 움트기 시작했다. 사람의 운명을 하나님 말고 누가 알겠는가?  

  

내가 마산교도소종교위원으로 봉사를 시작한지 두어 달쯤 되어 어떤 재소자가 상담 중에 “선생님, 저희들을 위하여 좋은 책을 사 주셨는데 내용이 좀 어렵고 저희들과 거리가 먼 것이라서 읽기가 어려우니, 그냥 선생님이 생활하면서 느낀 대로 본 대로 수필을 써 주시면 되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을 했다. 문학의 어려움을 전여 모르는 나는 집에 돌아와서 문법과 상관없이 그냥 글쓰기를 시작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수필인지 간증인지도 모를 글 한편을 200여장 복사하여 넣어주었다. 독후감을 편지로 보내왔다. 그 후로 매주 한 편씩 써서 방방 넣어주었는데 어떤 분은 매주 독후감을 보내 주었다. 기쁘고 반갑고 다음 편지가 기다려져서 글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어느 날, 매주 답장을 써 보낸 분이 이런 내용의 글을 보냈다. “선생님의 글은 너무 솔직하고 재미가 있어서 다음 글이 매우 기다려지고 있는데, 문법이 너무 맞지 않으니 서점에 가서 <글 쓰는 법 >책을 사서 연구를 했으면 최고라고 칭찬 겸 충고를 했다. 

 

 나는 즉시 서점에 가서 <글 쓰는 법 >책을 사서 정독을 하였다. 피아노만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글이 이렇게 어렵다니! 내가 그동안 써서 준 글은 그야말로 제멋대로다. 요즘 온라인상으로 아이들이 제멋대로 부치는 수십 개의 느낌표를 나도 그렇게 따라 붙였다. 한 가지 취미를 붙이면 열정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내 성격이라, 서점을 내 집 드나들 듯이 하며 문학책을 사서 연구를 하였다. 

 

 독학은 한계가 있다. 설명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서울을 갔다. 한 달간 한주에 한번씩 글쓰기 교실에 갔다. 나이 탓인가(?)피곤하였다. 포기를 하고 행여 마산에 글쓰기를 배워주는 곳이 있는가 하고 유인물 이것저것 보는 중에, 성안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문화교실을 발견하였다. 이때다. 기회가 왔구나! 하고 전화로 상세히 묻고 등록을 했다. 이 기회에 글쓰기를 배워서 문서선교를 하자고 ‘선한사마리아선교회’ 임원들을 설득하여 같이 갔다. 우리 글쓰기 반에는 또 다른 여성들이 있었다. 국문과를 졸업하고 등단하기 위하여 온 사람, 이미 다른 교실에서 배운 사람, 초보자 등이다. 한국수필의 대가이신 정목일 교수님의 특강은 재미가 있었다. 그간 책을 읽어도 몰랐든 부분들이 이해가 같다. 

 

수필은 그 사람의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처럼 허구가 아니라 내 성격과 맞아 신나게 쓰고 공부를 하였다.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은 이론에 얽매여서 작품을 모델로 내어놓기 조심 이 되었겠지만 나는 아니다. 이왕 늦게 배움의 길에 들어선 마당에 부끄럼정도는 버려야 한다. 겁 없이 내어놓은 내 작품은 이것저것 문장의 군 더덕이가 잘리고 수정 되면서 자라고 있었다. 

  

신문, 잡지, 월간지 등에 글을 써서 발표를 하기 시작했다. 아는 독자들이 만나면 칭찬과 격려를 했다. 특히 내가섬기는 교회 목사님(고. 윤진구)의 칭찬 한마디는 큰 힘과 용기가 되었다. 내 글은 날아서 미국, 호주, 캐나다, 중국, 일본도 갔다. 외국에서 편지와 책, 전화도 왔다. 피아노 연주는 그때 그 곳에 있었던 사람만 듣고 나면 행방을 모르는데, 글은, 쓸 때는 나 혼자 뿐인데 쓰고 나서 발표만 하면 헤아릴 수 없이 독자가 불어나고 증거가 남아있다.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습작을 하고 또 발표를 한지 7년 만에 수필(隨筆)과 시(詩) 부문에 등단을 했다. 그리고 수필집1권<어머니만 있다면>을 출판하고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이 출판기념회를 연다고 하니 호기심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축하를 해 주었다. 나는 답사에서 글을 쓰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진심으로 말한다. 하나님은 문학가가 되고 싶은 두 번째 꿈을 이루어 주시려고 마산교도소 종교위원으로 나를 보내신 것이다. 

 

나는 문서선교의 꿈을 가지고 재소자들에게 책과 글을 많이 넣어주었다. 그뿐 아니라 ‘대구지방교정청’이 주관하는 문예작품<겨울에서 봄으로>를 심사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아픈 인생을 읽었다. 읽다가 눈물도 흘리고, 깊은 생각에 젖기도 하고, 그들을 죄인으로 찍어 외면하였던 지난날들의 과오와 교만, 더 놀라운 것은 나보다 훨씬 문학적인 소질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등이다. 

 

 한해도 빠짐없이 17년을(?) 한 것 같은 문예작품 심사는, 문학의 길로 걸어가는 나에게
살아있는 크나큰 소재가 되었다. 때로는 300편이 넘는 작품을 읽는데 눈도 침침하고 지루하기도 하였지만, 과부사정 과부가 안다고 어찌 쓴 글인데 대충 읽고 넘어갈 수 있으랴! 

 

  반가운 것은 전국교도소에서 매월 실시하는 재소자 독후감 쓰기의 마산 심사를 맡은 것이다. 특혜를 주면서 독후감쓰기를 하는데 많은 수용자들이 책을 읽고 있다. 책은 서서히 지식을 자라게 한다. 마치 콩나물 같이 자란다. 읽고나면 빠져나가는 내용이지만 그사이 나도 모르게 커 감을 알 수가 있다. 지금은 워드로 정서를 하여 주지만 작년만 해도 육필로 써서 주는데, 나도 난필이라 이해는 하지만 정말로 글씨가 날 괴롭힐 때도 있다. 한문으로 날려 쓴 글. 깨알같이 쓴 글. 기러기 날아가듯이 그려 논 글. 심사위원에게 애원하는 글, 본인이 반성하는 내용이 아니라 독자와 심사위원을 훈계하는 글들도 있다. 마음 같아서는 다 특혜를 받을 수 있도록 최고점수를 주고 싶지만 그것은 내 소관이 아니라 몇 편만 가려서 점수를 쓰면서 법무부가 재소자 교화를 위하여 참으로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하고 감사를 하며 자랑 하고 있다.  

 

50세에 시작한 봉사의 꿈은 20년이 넘은 오늘도 실행하고 있다. 마산교도소 종교위원과 사랑샘공동체의 봉사자로 들어가 내가 받은 달란트대로 일 하고 있다. 나는, 하나님과 가족과 이웃과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이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받은 사랑을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아니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건강이 있는 한 하려고 한다.

교도소 봉사를 시작하면서 쓴 글로 지금까지 3권의 책을 출판하였다. 아직도 꿈이 있다면 남아있는 시와 잠언의 글을 출판하여 전국교도소 도서실에 비취 하여 많은 재소자들이 읽고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 이 내용은 법무부 교정청 위촉작품이다. 

 

2010년 10월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