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여행을 마치고 - 고정숙
자그마한 우리 교회에서의 가을 나들이었습니다.
가을 단풍구경 겸 나들이를 하자는 의견에 27일경으로 날짜를 잡았으나
그때는 이미 단풍을 보기 어렵다는 조카의 말(용평 쌍용회사근무)에 앞당겨 부랴부랴 준비를 하여
65세 이상 노인 분들을 모시고 가는 조심스런 여행이었습니다.
모든 진행을 맡겨주시는 권유에 따라 콘도 예약부터 길 안내를 저희 부부가 맡기로 하고
11일 일찍부터 비온 후의 흐린 날에도 불구하고 나섰습니다.
용평콘도를 조카를 통하여 예약을 해두고 주중이었으므로 한산한 고속도로를 한가하게 달려
구름 낀 하늘이 벗어나기를 바라며 북으로 달렸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단풍이 물든 모습을 볼 수 없었으며
짙푸른 녹음뿐이었으므로 실망을 시켜드리면 어쩌나 조린 마음이었습니다.
원주 소사휴게소 잔디 위에서 준비해 가지고 간 점심을 펴서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둘러앉아 향긋한 공기 속에서 감사하며 식사를 했습니다.
스키장과 골프장이 있는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는 용평을 들어서니 그제야 단풍으로 둘러 쌓여 있음을 보았습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서 감자를 캐어 저장해놓은 밭도 구경하고 밭둑에 봄 풀처럼 싱싱한 냉이를 한줌씩 뽑아보기도 했습니다.
조카는 미리 객실 체크를 하며 내빈을 맞는 듯 기다리고 있어 감사하기도 하고 내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습니다.
직원 할인권으로 절반이나 싸게 방을 구했으며 방 하나에 10명 이상도 더 뒹굴고 잘 수 있는 두 곳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깨끗하고 푸르게 잘 꾸며놓은 골프장이 깔끔하게 펼쳐져 있고 숲향 내음이 가슴을 서늘하게 열어주었습니다.
날씨 좋은날이면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동해까지 바라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풀꽃 토끼풀과 구절초도 산기슭에 피어 있어 산책을 하며 할머니들께서는
어렸을 적 토끼풀꽃으로 반지를 만들던 기억을 하며 꺾어서 풀꽃반지도 만들어 끼어 보는둥 동심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소나무 낙엽들이 누렇게 깔린 모양을 보고 어렸을 적 갈퀴질하며 땔감을 모으던 생각이 나서
손가락으로 움켜쥐어도 보고 솔향을 가슴깊이 들이마시기도 하였습니다.
이 솔잎을 땔감으로 하면 연기도 나지 않고 잘 타서 바람이 불던 이튿날 새벽이면
가까운 소나무 동산에 가서 신나게 갈퀴질하던 그때가 엊그제 처럼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단풍이 곱게 물든 둘러 쌓인 산...
탄성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골프연습장의 몇몇 사람들, 그리고 단체로 와있는 학생들의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을 뿐
한가롭고 조용한 숲 속 궁궐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숲속의 밤은 빨리 찾아왔습니다.
준비해간 불고기와 상추, 고추, 된장, 콩자반, 김, 오징어젓갈, 마늘장아찌..
뜯어 가지고 간 냉이를 삶아 나물을 만드는 둥 푸짐한 성찬을 만들어 왁짜하니 먹고 마시고 설거지를 하고 나니
벌써 밖은 칠흑같이 어두워졌습니다.
이부자리를 펴서 깔아 드리는 둥 육십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이곳에서는 아이가 되어 신바람이 나게 칭찬을 들어가며 시중을 들었습니다.
할머니들께서는 연속극 보느라고 채널 다툼을 하기도하였습니다
명성왕후를 봐야 한다는둥 지칠줄도 모르는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연이틀 연속 잠이 부족한 탓으로 그만 일찍 골아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일찍 잠이 깨어 감사기도 시간을 잠시 가진 후 이부자리를 정갈하게 접어 이불장에 넣고 이른 아침 산책을 나갔습니다.
지상에는 어둠이었으나 하늘은 푸른 하늘이었습니다.
조각달이 중천에 맑은 얼굴로 떠 있고 또록 또록한 별님도 두어 낱 보였습니다.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이리 신선한지....
이 얼마나 소중한 은혜인지...
골짜기 물이 흐르는 쪽 골프장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신발이 벌써 이슬에 젖어 양말까지 젖어들었습니다.
툭툭 채이는 이슬이 추적추적 물길을 걷는 것 같았습니다.
점점 밝아오는 아침해에 반짝이는 보석같은 말간 이슬방울들...
이른 아침부터 잔디이슬을 걷우는 작업을 하는지 기계음 소리를 내며 잔디손질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아침 식사준비가 늦을새라 바삐 숙소로 올라와 바지락미역국과 황태조림을 주로
아침식사준비를 하고 모두들 건강한 모습으로 즐거운 아침 식사시간을 즐겼습니다.
감사기도회를 가진후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하며 풀었던 여장을 다시 둘러메고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강릉에서 출퇴근을 하는 조카는 다시 방문을 하며 우리들에게 황태와 오징어 선물꾸러미를 건네주어서
이모인 내가 아닌 어른들에게 드리는 슬기로움과 자상함이 더욱 흐뭇하게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편히 쉬고 방 두개씩이나 빌린 값이 11만원밖에 안되고
더욱이 선물까지 안고 가다니 그렇잖아도 언니가 제일 효자라고 자랑하는 조카가 더욱 자랑스러웠습니다.
이제 강릉 바다를 거쳐 소금강 오대산을 향하여 출발하면서
다음해에도 아니 여름에도 다시 오고 싶다고 너도나도 이야기하며 건강한 웃음을 뒤로 날렸습니다.
길이 서툰지라 물어가며 강릉으로 들어가서 해변을 찾아 가보니 강릉방파제였습니다.
끝없는 수평선과 짙푸른 물결, 넘실거리며 달려든 하얀 파도...
무섭도록 위엄을 느끼고 하나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춥지도 않은 따사로운 해풍이 부드럽게 감싸주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방파제로 오지 않고 모래사장에 홀로 앉아서 밀물에 낚싯대를 드리우고있는 남자에게 다가간 것이 보였습니다.
한참만에 검은 비닐봉지를 묵직이 들고 오면서 연신 웃음을 띄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흥분한 목소리로 낚시한 고기를 오천 원에 사왔다는 것입니다.
펄펄뛰고 있는 고기 이름은 나중에 알고 보니 황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단돈 오천원으로 회를 먹게 되겠구나 했습니다.
횟집에 가서 먹을 수 있게 해 줄 수 없느냐고 하니 어이없는 소리를 했습니다.
그 고기는 말 그대로 황~ 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 고기는 알아주지 않은 고기이며 회를 뜰 수도 없다고 머리를 저었습니다.
아마 횟집 그 아저씨는 자기 횟집에서 사먹을 줄 알았다가 그리 안되니
나쁜 심보로 우리들에게 그렇게 대접을 했지 않았나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버려도 싸다는 그 고기를 사다니 "적선한 셈치세요" 하며 여기서는 그 고기를 낚을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0사람이 회를 사먹을라치면 돈이 많이 들꺼라고 아예 사먹을 생각을 하지 않고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경포대해수욕장으로 달렸습니다.
목사님과 남편은 그럴리가 있나 바다에서 갓 건져온 고기는 싱싱해서 먹을 수 있다고 하며
먹어보기를 원해 가게에 가서 초장을 사 가지고 회를 떠서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모래사장에서 돗자리를 깔고 과일깎는 칼을 준비하고 쟁반을 도마로 삼고
다시 바닷물에 씻어 칼질을 할 참이었는데 파도치는 물에 들어가 씻을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때
목사님께서 신발을 벗고 옷을 걷어올리고 들어가서 바닷물을 떠와
고기를 담가 배를 가르고 비늘을 벗기는 과정에
철썩~ 파도치는 바람에 우리는 아랫도리를 다 적시고 바닷물을 뒤집어 썼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비늘을 벗기고 배를 가르고 가까스로 잘라 초장에 찍어 드렸더니
"이렇게 맛이 있는데..."하며 어쩔 줄 몰라하며 입맛을 쩍쩍 다시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점씩 맛을 보고 비린내도 나지 않는 그 쫄깃하고 찰진 맛에 감탄을 하였습니다.
다섯 마리를 모두 목사님과 남편이 젖은 몸으로 포식을 하고
이처럼 맛이 좋을 수가 없다하며 잊지 못할 추억 꺼리라고 즐거워 했습니다.
회도 잘 먹었겠다 점심은 오대산에서 먹기로 하고 물어물어 소금강을 향해 오대산 쪽으로 달리노라니
오대산에는 잔뜩 검은 구름이 감싸고 있어 비가 오고 있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한참만에 도착한 오대산의 휴게소에 들르니 비는 멎고 구름이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더욱 깨끗해 진 단풍에 곱게 물든 주위의 산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가 아니라 열 폭의 산수화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비가 온 후의 식사는 조금 서늘했지만 시장한지라 준비해간 카레 밥을 맛있게 끝내고
따끈한 옅은 커피로 몸을 녹였습니다.
오대산 휴게소에서 진 고개까지의 단풍이 말 할 수 없는 절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봉고차의 뚜껑을 열어 재치고 싶었습니다.
버튼만 누르면 스르륵 뚜껑이 열리는 승용차나 봉고차가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천천히 가다가도 내려서 다시 구경하는 둥 천국이 이와같지 않을까...하는 착각을 일게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오십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실제로 이런 단풍을 구경 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바쁘다보니 고향의 내장산도 한번 가보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칠십 평생 살았어도 이런 단풍구경은 처음이라는 할머니도 계셨습니다.
가을의 한가운데 들어서기 전에 인터넷에서 가을풍경을 많이 구경했던 생각이 나고
과연 보던 데로 실제로 아름답구나 했습니다.
진고개에서 기념촬영도 하고 싱싱한 무우다발을 사기도 하고 조용히 또 하루해는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오며가며 1600리 길 목사님께서 운전하시느라고 수고가 크셨는데도
가평휴게소에 들러 짜장면 한그릇으로 저녁을 떼우고 여덟사람의 집을 일일이 데려다 주는 수고를 하셨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길을 달리는 고속도로는 한가해서 우리를 위해 길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듯 하였습니다.
달리는 차안에서 기도하고 찬송하며 달리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피곤한 목사님을위해서도 우리는 깨어 있어야했습니다.
성경말씀을 돌아가며 외우는 등 사모님은 놀랍게 산상복음서한장을 모두 외워서 감탄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요한복음 14장 1정을 누가 외우시요 해서 얼른 받아 외울 수 있어서 칭찬도 받았습니다.
우리들은 인생에 있어 가을 한가운데서 살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겨울을 맞이하는 분들도 계시고 자식들 키워 다 내보내고
저 영원한 처소인 천국백성의 소명을 감당하고자 애쓰는 열매맺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저 은빛억새풀의 아름다운 모습과 저 곱게 물든 단풍잎의 황홀한 모습처럼
아름다운 모습의 천국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모두 하나님께 감사의 박수를 올려드리고 하나둘씩 자기 처소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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