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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요리 - 조순영

Joyfule 2012. 7. 28. 09:59

 

내 인생의 요리 - 조순영

 

내 몸의 대들보가 위태로워져서 경기도 산본에 있는 한 대학병원의 한방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걸을 때는 물론 움직일 때마다 견딜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다가 갔더니 척추가 주저앉았다고 MRI를 찍고 몇 번에 걸쳐 입원을 하고 시술을 해야한다고 의사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문득 나 자신을 돌아다보니 내 인생의 들판에는  늦가을이 다 가도록 마쳐야야 할 추수를 끝내지 못하고 애면글면 애를 태우는 일들이 산적해 있다. 고관절 수술을 해서 거동까지 불편한 구순을 넘긴 친정어머니가, 예순이 가깝도록 결혼을 못한 채 혼자 살고 있는 큰 동생을 목에 가시처럼 넘기지 못하고 자나 깨나 나를 옥죈다. 심지어는 내 딸이 나를 위한 약을 사 오면 왜 내 몫은 없느냐고 서운해 하시는 노욕 가득 찬 어머니다. 사정이야 있겠지만 설날이 되어도 어머니를 뵈러 찾아오지 않는 당신의 작은 딸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내 자식들에게는 끝없이 요구하고 때떄로 서운해 하시는 친정어머니다. 미국으로 이민 간 막내 동생이 큰 누나에게는 미안해서 전화를 드릴 수 없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전해주면서도 본인은 도무지 감사할 줄을 모르는 어머니이다. 설날아침에 두 명의 시동생 내외가 친정어머니께 세배를 드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큰 아들집에는 큰  손자를 포함한 세쌍둥이가 현관문도 잠그지 않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혼기를 놓치면서도 성가하지 못한 아들 딸이 산처럼 버티고 있으니 앞이 캄캄하다. 전에 가 본 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갔는데 역시나였다. 몸을 최대한 아끼면서 가벼운 운동이나 하고 수술하는 일 이외에는 별 뾰족한 묘안이 없단다. 몸은 노쇠해 지는데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끝이 없다. 몸은 늙어가는데 시집살이는 젊어진다는 옛말은 이런 때를 위한 말인가.

오후 네 시가 가까울 무렵. 집에 오는 전철을 탔다. 마침 내 옆 빈자리에 어르신 한 분이 무거운 배낭을 힘겹게 주저앉히며 털석하고 몸을 부린다. 나는 그 분의 배낭을 받아서 넘어지지 않도록 놓아 드리면서 “무슨 배낭이 이리도 무겁냐” 고 살붙이를 나무라듯이 말씀드렸더니 손자에게 줄 만두란다. 얼마나 피부가 맑고 투명하던지 나도 모르게 손으로 할머니 볼을  만져보았다. 손자가 만두를 좋아해서 새벽 네 시부터 만들어서 아들네 집에 가신다는 거였다. 햇빛에 비친 한지를 바른 창호지 문 같은 피부가 아기 피부 같은데  흘러나오는 말씀마다 어여쁘니 마음이 놓였다. 그 분을 뵈면서 오래 전에 돌아가신 정갈하고 온화하게 살다 가신 시어머니 생각이 났다. 자식도 부모를 몰라라 하는 사람이 지천인 세상에 무슨 덕을 보겠다고 스물 여섯 살이나 먹은 손자를 주려고 노원까지 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느냐고 말씀드렸더니 큰 손주가 도무지 사는 만두는 먹지 않고 당신이 만들어 주는 만두만 좋아한다는 거였다. 아들네 가족을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빚었을 것을 생각하니 화목한 한 가정의 모습이 그려진다. 도무지 일흔일곱이라고는  믿겨지지가 않을 만큼 고운 자태다. 자제분이 몇이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아들만 둘이라고 했다. 나는 아들만 둘이라는 사람앞에서는 말을 잇기가 난감하다. 혹여라도 며느리가 부모에게 잘 못한다는 말이 들려올까 두려워서다.

그런데 왠지 이 분에게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믿음이 느껴져서 며느님이 잘 하느냐고 물으니 큰 애가 제 할 일 미루지 않고 잘한다고 대답하셨다.  며느리로 제 할 일 미루지 않으면 최선이 아니겠는가.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른이 잘 하는데 잘못할 자식이 그리 흔하겠는가. 배려와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주위엔 같은 부류의 사람이 모이는 것이고 자기만 생각하고 남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 주위엔  항상 불평 불만할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만고의 진리임을 간파한다면 우리는 좀 더 자중자애하면서 살아가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치매로 고생하던 영감님이 2년 전에 돌아가실 때 까지 수발하느라 힘들었다고 말씀하면서도 만면에 가득한 웃음기로 얼굴이 환했다. 그러기로 말하면 딸이 없다고 해서 시름에 겨울 일도 아니지 않을까. 어느덧 내가 내려야 할 정거장이 가까워 오고 있는데  스르르 잠이 든 노인의 단잠을 깨울 수 없어 잠시 망설이다가 내렸다.

  종부로 시집와서 조카들이 제 몫을 다하도록 길러내고 집안을 일으켜 세우느라  몸이 부서지게 일만 해온 사촌 올캐 언니인 나의  삶이  안타깝다고 써 보낸  사촌 시누이의 가슴 절절한 편지생각이 났다. 지금쯤은 언니를 위하여 살 때인데도 그러지 못하고 바보처럼 살고 있는 내가 딱하다고 했다. 그러나 타고난 천성이 그런 걸 난들 어떻게 하겠는가.

지금까지는 시고도 짜게 때로는 떫게 살아왔다 해도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의 요리는 잘 우려낸 사골국처럼 따뜻하고 구수하게  만인의 가슴을 훈훈하게 데우는 삶이면 얼마나 좋을까.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