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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환자 되어

Joyfule 2012. 8. 2. 23:23

 

 

의사가 환자 되어 - 펌

  지루한 장마가 계속 되더니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찾아와 폭염이 지속된다.
일 년여 동안 허리 통증으로 고생을 하다가 이제는 더 참을 수가 없어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병명은 나이가 먹으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퇴행성 질환인 척추간 협착증이다. 모두들 왜 한 여름에 수술을 받느냐고
만류하지만 한가로운 여름 휴가철에 냉난방이 잘 되어 있는 병실에서 푹 쉬었다
가는 것도 좋을듯하여 결정한 것이다.   오늘이 바로 예약한 그 날이다.

  평생 의사로서 지내다가 환자로 변신한 날이다. 수술을 받으러 간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보호자들도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내 병을 잘 알기에 아무도 오지 말고 나 혼자 간다고 하니
아내와 아들딸들이 굳이 따라 나선다.
오랜만에 가장으로써 지내온 보람을 느껴보고
가족 사랑을 받아보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입원 수속을 마친 후에 병실로 올라가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니
한 순간에 의사가 환자로 되어버렸다.
간호사가 이끄는 대로 이동식 침대로 수술실에 도착 하였다.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수술을 하러 들어가는 것인데도
가족들이 걱정을 하며  수술 잘 받으라는 격려의 말이 고맙게 느껴진다.

  어느 수술실에나 들어가 보면 어둠침침한 속에 천정에서는
밝은 수술 조명이 비추며 처음으로 들어가 보는 환자들에게는  공포감을 준다. 
수술실로 미끄러져 들어가 수술 테이블에 올려놓으니 마취 의사가  와서
혈압과 맥박 그리고 여러 가지 검사 기록을 보더니 드디어
“마취 시작 합니다” 라고 하며 팔에 매달린 정맥주사에 약을 조금 넣는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깊은 꿈속으로 들어간다.

  때는 바로 나의 인턴시절, 의사 초년병으로 임상경험은 없지만
병원의 궂은일은 도맡아 하는 시절이다.
실제로 인턴에게는 일정한 수면 시간이 없고,
식사 시간도 없으며 24시간을 환자에 매달려 살아야 한다.
래서 인턴을 먹는 데는 걸신, 일처리는 등신, 눈치 보는 데는 귀신이라고 하여
삼신이라고 한단다.
  그날도 외과에 큰 수술이 있어 집도의 밑에 두 명의 조수가 필요 하여
제2의 조수로 들어가는 날이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미리
손을 깨끗이 닦고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마스크와 수술 장갑을 끼고 들어가
수술 전 처치를 해야 한다. 집도의가 들어와 수술이 시작 되면 인턴인 내가
할 일은 개복을 하면 수술 범위를 넓이기 위하여 벌려 주는 일이다.
몇 시간동안 벌리는 기계를 넣고 힘주며 벌리다가
조금 쉬면 집도 의로 부터 호령이 내린다.
 “무엇 하는 거야! 잘 잡아!” 소리 나기 무섭게 힘을 주어 벌려주어야 한다.
지나간 밤에는 응급환자를 밤새도록 돌보느라
꼬박 밤을 새워서 잠이 무섭게 퍼 붓는다. 내가 꾸벅꾸벅 졸고 있으니
집도의 (과장)가 그래도 다정히  “닥터 김! 지난밤에 밤을 새웠구먼.
아직 수술이 끝내려면 두 시간 이상 남았는데 그렇게 졸면 어떻게 하나?
우리는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니 눈을 부릅뜨고 참아야 하네!” 하며
졸음을 쫒기 위하여 노래를 한곡 불러 주신다.  
  “막걸리가 좋으냐 / 친구가 좋으냐/
 / 막걸리도 좋고 친구도 좋지만 / 막걸리 딸아 주는 여자가 더 좋더라.
 / 행에야, 행에야....”/  
 그 노래가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하는 노래가 되었다.
졸음은 오고 배는 고프고 과장과 선배 전공의, 수술 간호사와 마취의사들의
눈치를 보는  삼신의 고달픔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수술을 마치고 뒤처리는 인턴이 도맡아 해야 한다.
마지막 봉합을 끝내고 마취의사가 마취기계를 뺀 후에 환자를
다시 침대에 눕히고 회복실로 옮긴다. 
회복실 안에서 환자의 상태를 계속 관찰 하는데,
어느 때는 몇 시간 지나야 마취가 깨어나는 경우가 있다.
환자가 정신이 돌아오면, 환자를 붙들고 가족들이
안도의 눈물을 흘리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
 나는 여기서 생의 고귀함과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내가 눈을 떠보니 수술실이 아닌 회복실이다.
옆에는 간호사와 나의 가족들의 얼굴이 보인다. 조금 후에 담당 의사가 들어와
 “수술이 잘 되었으니 안심 하십시오” 라는 말을 하고 나간다.
내가 40여 년 전에 환자에게  하던 그 모습이 .
내가 환자가 되어  보니 감개가 무량 하다.

  의사도 사람인 이상 병에 걸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실제로 의사가 아파서 환자가 되어보면 환자의 심리를 이해하게 되고
병이 다 난 후에는 환자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고 한다. 
그리고 의사들 대부분이 환자의 아픈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자기 몸은
돌보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의사들의 평균수명이 다른 직업 보다 낮다고 한다.
 
  금번에 허리수술을 하여  통증이 없어지면 앞으로 의료 봉사도 전보다
더 열심히 하고,  은퇴 후 내가 하던 일에 더욱 정열을 쏟으며
내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맞아  더욱 활발한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의사로서 한 가지 충고를 하고 싶다.
 
 “건강은 건강할 때에 지키라고....”
 

                                                       2012.  7.  29.  병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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