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너는 너, 나는 나
대한변협의 상임이사를 한 적이 있다.
회장 당선자는 내게 첫 연설문을 써 달라고 했다. 흔쾌히 그 일을 맡았다. 대통령은 연설로 정치를 한다. 그 핵심이 나라의 좌표가 되고 구체적으로 정책들이 되어 집행된다. 나는 과거의 유림집단 같은 현대의 지성이 모인 대한변협의 좌표와 변호사의 본질을 연설에 담았다. 굳이 회장이 아니더라도 자기의 사상을 그 속에 담아 만 명이 넘는 변호사들의 나침반이 되게 한다는 것은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정치 사회문제에 대한 성명이나 논평을 발표하는 것이고 동시에 대한변협신문의 편집책임자로 신문을 발행하는 일이었다. 대한변협의 색깔과 정체성을 대표하는 위치였다. 만 명이 만가지 색깔인 지식인 단체였다. 극단의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공존했다. 구십대의 노인부터 아들 손자가 되는 청년 변호사까지 있었다. 판검사나 정치인등 여러 뿌리에서 나온 사람들이 흘러든 저수지 같은 곳이었다. 철저한 관료의식과 권위주의에 젖은 사람도 있었고 저항성이 강한 사람도 있었다. 그중 상당부분은 사회에 대한 구조적인식이나 이념적 지향성을 갖지 못한 것 같았다.
드골은 이백가지가 넘는 종류의 프랑스 국민의 마음을 모으기가 힘들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수시로 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대해 각양각색의 변호사들로부터 한가지 소리를 수렴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 통로나 시스템도 사실상 없었다. 그래서인지 협회의 규정을 보면 상임이사인 내게 상당 부분의 재량권이 부여되어 있었다.
전쟁시 일선의 지휘관에게 전투할 권한이 위임된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동시에 대한변협은 예전으로 치면 왕권에 영향력을 미치는 재야 유림단체와 흡사했다. 이왕 맡았으면 자리값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간섭을 받지 않기 위해 편집권 독립의 규정을 만들어 대한변호사 총회의 승인을 받았다. 작은 신문이지만 넉넉한 자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광고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용기를 가지고 바른소리만 하면 되는 것이다. 변호사생활의 애환이라든가 부드러운 문화 컨텐츠를 담은 작은 잡지를 별도로 만들었다. 예산이 많은 변협의 작은 파티에 필요한 경비면 잡지를 만들 수 있었다. 기존 예산의 일부를 절약해 용도를 변경했다.
조중동 같은 유력지의 출판국에서 하청받아 제작해주겠다는 제의가 경쟁적으로 들어왔다. 세상에 대해 영향력있는 의견을 말할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성역과의 전쟁을 계획했다. 기존 언론이 꺼리거나 금기시하는 부분을 건드리기로 했다. 권력기관인 국정원을 건드렸다. 이어서 조선일보를 비판하고 검찰을 그리고 법원에 대해 쓴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친일척결을 주장하는 선동적이고 감정적인 높은 소리가 사회에 먼지를 일으켰다. 그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했다. 나는 기성언론이 피하고 있는 노동이나 종교문제도 건드릴 예정이었다. 남은 비판하고 자신은 성역안에 있는 언론에 대해서도 바른말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묻혀 있는 지뢰들을 하나하나 터뜨리면서 걸어 나가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결정적인 지뢰의 뇌관을 밟았다. 한밤중 만취한 검사가 술자리에서 여기자를 성추행한 사건이 터졌다. 그런 사건이 전에도 있었다. 정보를 독점한 검찰이 언론을 조종하고 있었다. 무릎 꿇고 얌전하게 기다리는 개에게 비스켓을 던져주며 훈련시키듯 검찰은 그렇게 정보를 주면서 언론을 다스렸다.
그 중 한 장면이 남의 집 귀한 딸들이 취재경쟁에 묶여 집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만취해 개가 된 검사의 앞에서 그 입에서 나올 기사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논평을 냈다. 검찰의 언론공작을 단호하게 지적했다.
그리고 그 끝에 언론의 취재방법에 대해 한줄 덧붙였다.
그 한 줄이 기름에 던져진 불씨였다. 기자협회에서 들고 일어났다.
여러 신문에서 나를 공격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이어서 사설이 나오고 컬럼이 나왔다. 노골적인 쌍욕만 없지 갈 데까지 간 비난이었다. 내가 성추행 검사를 비호하기 위해 그런 양비론의 논평을 했다는 모략도 있었다. 텔레비전 뉴스 화면에 나오는 자막의 나는 파렴치범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언론은 나의 공식적인 사과와 해임을 요구했다. 변협 전체 상임이사회의가 열렸다.
문제의 본질을 ‘여성비하발언’으로 왜곡시키는 말도 튀어나왔다. 기자님들에게 왜 그렇게 했느냐고 따지는 함량미달의 질문도 있었다. 자진사퇴를 하라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였다. 가치관의 차이였다. 자기의 가치관과 다르다고 남을 비방하거나 단죄하는 건 옳지 않았다. 내 가치관만 바르다고 우길 것도 아니다. 그냥 담담하게 지낼 수 있으면 그게 곧 자유로운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사과하지 않았다. 해임될 이유도 없었다. 임기 마지막까지 성실하게 일을 하고 나왔다. 너는 너 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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