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높은 사람들의 슬픈 그림자
보좌관이란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정치의 이면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삼십대 중반 무렵 나는 잠시 권력 실세의 보좌관을 한 적이 있다. 행동도 굼띠고 센스도 없는 내가 왜 그 일을 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그때 그 일을 시작하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기도한 건 분명했다.
‘어떤 것도 바라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래야 내가 보좌하는 그분과 영원히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보좌관을 하면 좀 더 좋은 자리나 승진을 바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잘 안되면 섭섭해 하는 것 같았다. 여러 명의 보좌진이 있었다. 수행비서와 시중드는 사람 운전기사가 있었다. 보좌진 안에도 또 직급에 따라 각자 맡은 분야가 있었다. 내가 한 일은 달랐다. 위에서 보지 못한 것들을 체크해서 있는 그대로 여과없이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그중에는 외부의 사회 명사를 만나 좋은 의견을 듣는 경우 그걸 보고서로 쓰는 일도 있었다. 그러면 그 보고서는 가감없이 내가 쓴 대로 대통령의 책상 위에 오르기도 했다. 또 윗분이 직접 만나면 언론 때문에 골치 아플 정치적 거물을 대신 만나 그 통로가 된 적도 있었다.
성벽으로 가려져 있던 권력의 상층부를 보게 된 행운의 기회일 수 있었다. 그 본질은 처절할 정도의 구걸이라는 걸 알았다. 개라도 권력의 옷을 입히면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숭배할 수 있어야 벼슬자리가 떨어진다는 걸 알았다. 권력의 실세였던 윗분 한테서 이런 소리를 들었었다.
“강 장군 그 사람 말이야 장군을 해 봤으면 됐지 그것도 모자라서 청와대에 와서 한 자리 달라고 통 사정을 하는 거야. 예전에 약간 신세를 진 것도 있고 해서 감사위원을 시켜줬어.”
그 장군은 군시절 내 병과의 최고 상급자였다. 신고를 하러 간 내가 무서워하면서 차렷하고 거수경례를 할 때 권위의식이 뚝뚝 떨어지던 무섭던 분이었다. 내게는 부와 지위와 최고의 학력을 모두 가진 것으로 보이는 선배가 있었다. 박사 출신인 그는 군의 고급장교와 차관 그리고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의 얼굴을 보면 항상 엄한 기운이 돌아 감히 말을 붙이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그가 내가 모시는 상관에게 보낸 편지를 먼저 뜯어보았다. 사전에 그걸 보고 분류하고 판단하는 게 내 일이기도 했다. 나는 세상에 그렇게 솜같이 부드럽고 매력적인 글을 본 적이 없었다. 그 글만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일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핵심은 벼슬 구걸이었다.
어느 날 어깨에 번쩍이는 별을 여러 개 단 장군이 휴가를 내서 내가 모시는 분을 만나러 왔다. 권력 실세의 눈도장을 찍으러 온 것이다. 나는 그를 일부러 대기실에서 한참을 기다리게 했다. 내가 상관의 방에 들어가서 사실대로 보고했다.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돌아가면 마음에 앙금이 생기고 너한테 감정이 맺힐 거다. 내가 잠시라도 만나 그 마음을 풀어서 돌려보내야 한다. 십분 정도 면담하게 해라.”
대원군은 공식조직 마고 몰래 장씨 안씨등 네명의 머슴을 심복으로 부려 자기의 눈과 귀 그리고 주먹이 되게 했었다.
나는 일을 하면서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수없는 사람들의 인사청탁을 구경했다. 장관이 되기 위해, 대법관이 되기 위해, 국회의원 공천을 받기 위해, 공기업의 사장이 되기 위해 승진이 되기 위해 사람들은 악마와도 손을 잡을 것 같았다. 뉴스화면에 등장하는 그들을 보면 ‘거위의 춤’이 연상됐다. 물 위로는 높은 벼슬의 의연한 모습을 보이면서 물 밑 진흙탕에서 수없는 발길질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이중적인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막연히 선망을 가졌던 높은 자리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때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총론적으로는 스스로 만족할 줄 알고 바깥에서 무엇을 구걸하려 하지 않는 생애였다. 그게 순결한 생애였다. 성경 속의 예레미야는 “그대가 큰 일을 찾고 있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고 했다. 그대가 오늘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에게 해야 할 영역이 맡겨져 있다. 내가 오늘 처해 있는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은 얼마든지 있다. 나에게 맞는 자리와 일을 하면 그 일이 즐겁고 잘할 수 있다. 몸보다 큰 감투를 쓰고 옷을 입으면 무대의상같이 불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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