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누구를 또한 어느 때를 지시하는지 상고하라

Joyfule 2024. 5. 24. 12:27

 


누구를 또한 어느 때를 지시하는지 상고하라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벧전1:10-11절)

 

 때를 모르는 아이들을 철부지라고 말합니다.

만일 성령이 임하여 사람으로 오셔 예수라고 부르던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

계시므로 성령으로 말씀하시는 새 언약의 때를 모르고 구약마당에 서서 속죄의

제물로 오신 예수만 믿고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거나 죽어서 천국을 가는 게

전부라면 이 사람은 철부지이지요. 구원의 때를 알지 못하는 철부지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어 주의 강림하실 때에 부끄럽지 않게

하기를 원하십니다(요일2:28) 이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영생을 얻으므로

담대히 주의 이름 안에서 기도할 수 있는 자격지심을 말합니다(요일5:14)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자로서 믿음의 결국 곧 끝까지 나아가 혼의

구원을 받아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벧전1:8-9) 믿음이 없이 예수 믿고

천국 간다는 말하는 걸 보면 참 답답해집니다. 눈 뜬 사람하고 눈 감은 사람하고

싸우면 눈을 뜬 사람이 지고 맙니다. 사생결단을 하고 덤비면 지는 것이 상책입니다.

 

 시가서인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는 모든 기자들이 예수로 오셔서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다 사하시고 다시 사신 다음에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영광의 왕이

되실 것을 내다보고 예언적으로 기록이 된 말씀들입니다(특히 시22편, 23편, 24편)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이 임하시려면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한다고

대선지 다섯과 소선지 열둘의 예언서가 그 이후에 이어져 기록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 안에 이미 그리스도의 영이 계셔서 계시로 알게 하심을 따라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누구인가 그리고 어떠한 때인가를 미리 예언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기록한 베드로는 성령이 임한 오순절 이후에

비로소 계시가 열려 주님께서 말씀하신 다윗의 믿음을 소상하게 설명했습니다.

성령이 오신 가장 큰 목적이 바로 지상사역으로 하늘과 땅을 이어놓으신

주의 의와 거룩과 영광의 길을 따라 나아가 천상사역을 하고 계시는 주의

이름을 부르므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쭉 올라가면 바로 끝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목표이며 그 목표에 이르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와 같은 다윗의 믿음과 같은 믿음은 로마서 4:25절이 말씀하듯 우리 범죄

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그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구속의 제사장과 중보의 제사장으로

동시에 믿고 그 분의 이름을 부르며 성령 안에서 진리를 따라 나아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에 임하신 주님께서 우리 속에서 우리로 되게 하심으로 의가

거룩으로, 거룩이 영광으로, 그 영광으로 하나, 하나가 온전하게 되어 사랑에 이릅니다.

베드로가 오순절부터 그 믿음이 시작이 되듯 바울 또한 다메섹부터 시작이 됩니다.

알다시피 바울은 예수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랍비과정을 밟은 율법의 엘리트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율법 아래에서 하나님을 믿어 흠이 없었던 신앙을 믿지 않았을 때라고

서슴없이 고백합니다(딤전1:13) 그럼에도 지금 출애굽기나 신명기 등의 구약성경을

통해 이스라엘과 동일시하고 하나님을 잘 믿고 순종하여 축복을 받자고 가르친다면

이거야 말로 자다가 남의 다리를 긁는 것과 동일합니다. 진짜 기가 막힙니다.

 

 바울이 말한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이나 베드로의 고백과

같이 영광스러운 즐거움은 오순절이 이후의 체험이며 그리스도가 그 안에

나타나신 이후의 간증이며 고백인 겁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가

제대로 전파되지 못하여 십자가하면 죽는 것, 고난, 희생, 고통스러운 인내 등의

의식 때문에 주의 말씀을 듣고 들으면 그 십자가를 내가 지고 따르는 순종이

되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능력과 지혜로 나타나는 신비한 체험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밴 채로 해산하지도 못하는 설교를 하거나 젖먹이를 두고

유치하게 가르치고 있는 기독교를 보면 안타깝고 보기가 정말 민망합니다.

 

 혼자 화평과 거룩을 몰라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건 어쩔 수가 없지만

땅의 일만 가르치므로 성도들의 마음의 쓴 뿌리를 치유하지 못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장자의 상속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게 하고

있으니 설교자들도 징계로 인해 각종 질병과 다투고 성도들 또한 징계로 인해

여러 가지 병이 들어 동병상련으로 서로 위로를 하고 있는 모습이 가관입니다.

지금 어느 때라고 예수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복을 받고 천국에

가면 큰 상급을 받는다는 설교를 하고 있는 겁니까? 그러다가 덜컹 병이 나면

의사의 말을 하나님 말씀보다 더 잘 듣고 약봉지를 성경보다 더 귀하게 여깁니다.

고난 받으신 예수와 고난 받으시고 난 후의 영광의 그리스도 안에서

열린 하늘 문을 향해 그 의와 영광을 얻어 앙망하며 나아가 새 힘을 얻는

이 새 언약의 때 곧 모든 날 마지막 날에 옛적에 사로잡혀 아들의 말씀이

그 안에서 들리는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구원의 즐거움과 기쁨은 없습니다.

다만 사람으로부터 오는 영광이나 자신의 업적에 대한 긍지와 자랑일 뿐이겠지요.

베드로의 서신은 그의 이름만큼이나 반석서신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소속이 되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그 반석과 연합이 된 믿음의 사람 베드로의 진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