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 - 복효근
눈이온다
이렇게 오래된 풍경 앞에서도
살아있음이 두근두근 설레는 날이 있거니
참으로 진부한 이 설레임으로
불러보고 싶은 이름 있어
세상은 그 진창을 잠시 숨겨놓았을 뿐이지만
눈이 내리는 동안만이라도
눈이 쌓여있는 동안만이라도
그 빛깔로 기억하고 싶은 시간은 있어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나 잊어버릴
이루지 못한 약속처럼 귀하고 또 가슴 애리게
슬픔 같은 것 부끄럼 같은 것들이
눈으로 내리는가
이제는 오지 않을 날들 위로
이제는 갈 수 없는 길들 위로
아주 옛 것인 듯 처음인 듯 가슴 후비며
눈이온다
사랑했노라 사랑했노라고
진부한 그 설레임으로
살아있음을 편지 쓰고 싶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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