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 운동의 음악들. - 곽용화
정신질환 단계
서울 G교회에 다니는 중3학생인 K군은 어느날부터인가
뉴에이지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다
부드러운 선율, 마음을 안정시키는 음에 매력을 느끼게 되면서
점점 더 깊이 뉴에이지 음악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음악을 듣고난 다음에는 반드시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면서부터 시작된 습관이었다.
음악을 들을 때는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이 좋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음악을 듣고난 후에는 허무함을 느껴서 하늘만 바라보게 된 것이다.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해지기 시작해서 도무지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없었다.
기분이 좋다가도 뉴에이지 음악만 듣고나면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생활을 거듭하면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K군은 하기수련회 기간중에 필자의
강의를 듣고 지금까지 자신을 죄어오던 알 수 없는 것들을 떨쳐버리게 되었다.
수련회가 끝난 다음 그 교회에서 발행하는 소식지에 쓴 글을 통해
K군은 '굴레를 벗었다' 는 표현을 썼다
뉴에이지 음악으로 인해 허무함을 느끼고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뉴에이지 음악을 멀리하게 되면서부터
예전의 자신을 찾게된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에 심취하게 되면서 세번째 겪는 단계가 바로 정신질환 단계이다.
필자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 중에 대부분이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다고 하였다.
*우울증.
정신과 의사가 아닌 필자는 항상 이 문제에 대해서
대전 유진호 정신과 의원의 유진호 권사님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우울증에 걸려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음악을 듣다가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다고 호소해 오는 사람들과
효과적인 상담을 하기 위해 도움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우울증에는
① 신체의 호르몬 변화로 감정이 쳐지는 주요 우울증과
② 충분한 이유가 있고 나서 생기는 우울증으로 주로 상실(lose)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반응성 우울증,
③늙어서 오게되는 노인성 우울증으로 나눌 수 있다.
주요 우울증의 증상은 무기력해지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반복하게 되고
식욕이 없고 의기소침해지며 우울한 감정이 심하고 신체 기능이 떨어진다.
필자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증상이 주요 우울증의 증상들인데
유진호 권사의 의견에 의하면 정서의 변화가 호르몬의 변화를 수반한다고 한다.
기분이 좋을 때는 그에 따른 적절한 호르몬이 작용하고 우울할 때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악을 듣다가 우울증에 걸리게 될 수도 있다는 결론이다.
뉴에이지 음악.
왜 이 음악들을 듣다가 우울증에 걸리게 되는 것일까?
뉴에이지 음악을 듣는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마음이 안정되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하면서 점점 깊이 빠질수록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우울증에 걸린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뉴에이지 음악이 거짓 평안을 주기 때문이다.
항상 거짓 평안은 허무와 우울증과 염세주의를 동반한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안정을 시켜준다고 하지만
순간적인 거짓 평안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명상으로 유도하며 뉴에이지 운동의 사상을 담은 것이라면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찾도록 되어 있는 인간이
스스로 무한한 존재라고 여기게 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영적인 모순은
충분히 정신질환을 가져을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영적인 방황과 연결되어 있고 영적인 타락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삶은 의미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고 삶을 살도록하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의미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의미있는 삶을 절망과 회의의 구덩이로 몰아넣고
심할 경우에는 포기하도록 만드는 음악은 정말 가치 있는 것인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방황하게 만들며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도록 만드는
음악이 정말 음악다운 음악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사라져 버릴 세상 음악들.
그런 음악들에 큰 가치를 부여하고 삶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천국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음악들을 그저 세상에 존재하는
단순한 하나의 음악으로 여기지 않고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정신적으로 위안을 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소망이 없는 음악,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치있는 인생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도록 만드는
음악에 빠져있는 크리스천들도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으로 방황하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삶을 사는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에 심취하면 당연히 정신적인 불안정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만큼 뉴에이지 음악이 가치있는 음악은 아니다.
오히려 이 음악은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음악의 노예가 되도록 만들어 버린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군사, 아름다운 자녀가 되길 원하는가
음악으로 인해 죄의 노예가 되길 원하는가?
여전히 두 갈래 길에서 방황하는 크리스천들이 많이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어떤 크리스천은 뉴에이지 음악에 반기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매우 불쾌하게 여긴다.
또 어떤 사람은 뉴에이지 음악의 반기독교적인 면을 부각시키므로
뉴에이지 음악을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죄악이 성행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귀에 들어오지 않으면
전혀 문제가 없다고 안심하는 사람들이다.
왜 죄악이라는 벌집을 들쑤셔서 더 앵앵거리게 만드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은
영혼을 썩게하는 죄악을 방치하는 사람들이다.
목회자 중에도 반뉴에이지 기독교인들이 오히려 뉴에이지 운동을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하는 분들이 있다.
이미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서 곰팡이처럼 빠른 속도로 번식하고 있고
교회로 파고들어 크리스천들의 영적인 삶을 흐리게 만들고 있는데
그저 덮어두면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뉴에이지 음악을 듣다가 정신질환에 걸린 교인이 상담을 요청하면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목자는 양들의 고민을 알아야하며 영적으로 양육하는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양은 자신의 목자에게 상담하고 영적으로 치유받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해하지 못하고 반기독교적인 영적 흐름에 민감하지 못하고
덮어두려는 목회자들, 자신의 교회에는 뉴에이지가 절대로 들어을 수 없다고
방심하는 목회자들로 인해 자신의 목자가 아니라 다른 목자를 찾아 방황하며
영적인 상담을 하는 양들이 있으니 이 얼마나안타까운 일인가?
뉴에이지 음악을 듣다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이 그러한 굴레를 벗어버리는 방법은 뉴에이지 음악을 버리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표현하자면 뉴에이지 음악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버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복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단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