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 운동의 음악들. - 곽용화
영적인 부작용
서울에 사는 어느 삼십대 주부의 이야기다.
일년동안 운영하던 비디오 가게를 그만두면서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다
어느 다방에서 처음 듣는 순간 매력을 느껴 DJ에게 제목을 물어 레코드 가게에서
구입한 기타로의 실크로드를 듣게 되면서 음악에 몰입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안정되고 차분해지고 기분이 좋아져서 점점 더 듣게 되다가
나중에는 음악을 하루종일 듣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를 듣던 중에 매우 신비로운 음악을 듣게 되어
다시 그 음악의 제목을 알아내서 구입하게 되었는데
그 음악은 장 미셀자르의 랑데뷰였다.
이 두 가지 음악을 번갈아 가며 들으면서부터 음악소리가 귀에 들려야
안심이 되고 잠을 잘수가 있었다.
화장실에 가든 부엌에 가든 항상 카세트를 들고 다니면서 음악을 들었다.
항상 죽음을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죽을까, 자살하면 지옥에 갈텐데,
자살하지 않고 죽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금식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 하는 척 하면서 굶어죽으면 설마 하나님이 버리실까?"
시간이 지날 수록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다.
술에다 우유를 타서 네 달 동안 마실 뿐이었다
잠도 오지 않았다.
음악을 들으면 잠이 오다가 음악이 끝나면 다시 깼다.
두달 동안 전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오로지 음악만이 자신의 삶이고 희망이었다.
그리고 이전부터 가끔씩 나타나던 영적인 존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편의 형상을 한 시커먼 존재가 자신의 옆에 누워있기도 했다.
영적으로 방황하면서 그 주부의 삶은 엉망이 되어갔다
그러던 중에 힘을 내서 안양에 있는 기도원에 갔지만
마치 초상집에 온 느낌이 들어 견디지 못하고 하룻만에 내려와 버렸다.
그러한 방황의 시간들을 보내다가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회복이 되기 시작하면서
다시 말씀을 읽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신 것이다.
필자와 상담할 때 완쾌되지 않아 '뇌신' 이라는 독한 약을 복용하고 있었고
눈이 매우 붉은 상태였다.
한때는 이단에 빠질 뻔했지만 다시 나왔다고 하면서
지금은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고있고 몸도 많이 회복되었다고 했다.
이 주부는 뉴에이지 음악의 네가지 단계를 차례대로 거친 경우다.
심한 우울증과 영적인 방황을 거듭하다가 다시 신앙을 회복하면서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인간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제거시키려는 사단의 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계략이라고도 한다.
이 주부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 없는 인간의 삶의 결과를 잘 살펴볼 수 있다.
뉴에이지 운동의 도구로 사용되는 뉴에이지 음악에 빠져 들었다가
영적인 부작용까지 경험하게 되어 결국 멸망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갔던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은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영적인 부작용을 일으키도록 만든다.
심할 경우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포기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뉴에이지 음악을 통해 영적인 부작용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두통, 역겨움, 가위눌림 등을 경험한다.
대전에 사는 어느 여집사는 M방송의 아침 드라마를 볼 때마다
두통이 오고 구토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드라마는 매우 건전했지만 음악을 들으면 그런 증상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음악이 뉴에이지 음악이었다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온 송모씨가 만든
뉴에이지 음악과 조지 윈스턴의 음악등이 흘러나오는 드라마였다.
이처럼 뉴에이지 음악은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영적인 부작용을 경험하도록 만든다.
특히 말씀과 기도와 찬양의 시간을 가진 뒤에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불쾌해지고 두통이 생기는 것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음악에 들어있는 영이 다르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뉴에이지 음악 악보를 펴놓고 연주하는 청년 대학생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은 단순히 음악에 불과한데 뭐 그렇게 까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걱정하느냐고 이야기 한다.
과연 그럴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교회에서 인간이 무한한 존재라는 사상으로 이루어진
뉴에이지 음악이 흐르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방민족을 점령했을 때 그 신상에 입힌 은과 금을
취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것이 너희로 하여금 올무에 걸리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신7'25)이라고 하셨던 하나님께서
교회안에서 사악한 본질의 음악이 흐르는 것을 기뻐하실까?
진멸할 물건은 손에 대지 말라(신7:26)고 순결을 명하신 하나님께서 허락 하실까?
뉴에이지 음악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다. 분명한 영적인 목적이 있는 음악이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참평안을 얻는 대신 음악을 통해 거짓 평안을 얻도록
유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려는 사악한 음악인 것이다.
그것이 진실인지 궁금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뉴에이지 음악가들을 살펴보라.
그들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가를.
어떤 사람들은 뉴에이지 음악을 평가할 때 대중음악 평론가들의 의견만을 고려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대중음악에서 음악을 평가할때는
영적인 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인간의 영적인 삶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크리스천 평론가들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적인 삶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매우 자의적이고 세속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서
오히려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바른 영적 생활을 못하도록
방해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다.
신앙안에서 영적으로 문화적인 흐름을 분별해 내는데 도움을 주지 못할 망정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평론가들이 있는 것이다.
영화를 예로 들어 보았을 때 그들은 뉴에이지 사상을 가진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나
예수가 윤회한다는 내용의 비기독교적인 영화인 '아름다운 이야기'를 호평하면서
그것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욕설을 내뿜는다.
이같은 영적인 소경들이 얼마나 많은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눅6:39)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안타깝기만 하다.
뉴에이지 음악을 듣던 중에 영적인 부작용을 경험하게 된다면
기도하고 찬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음악을 버려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현명한 방법은 그러한 일을 당하기 전에 뉴에이지 음악을 듣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