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동서문학상 수필 은상]
다리 - 김미향
아릿한 통증이 인다. 키 큰 나무 아래서 또다시 멈춰 선다. 무릎 속의 반란으로 주저앉은 게 몇 번째인지 모른다. 몸의 무게가 화근이었을까. 오십여 년 동안 나를 지탱해 준 다부진 다리, 절름거리는 걸음이 어색하여 잠시 몸을 벤치에 내맡긴다. 머리만 늙나보다 했던 생각은 망각이었을까. 나이는 비켜 가는 곳 없이 온 몸 구석구석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건망증이 일고 육신이 피로해질 무렵 뜻하지 않은 무릎이 나를 붙들어 매고 만다.
이태 전, 어머니는 성치 않은 무릎에 결국 칼을 대셨다. 견디고 견디다 더는 견딜 수 없는 통증이 팔순 노모의 발목을 잡았다. 영원히 변치 않으리라 믿었던 젊음의 단단한 뼈도 세월에 바람이 들고, 물컹하던 연골도 말라갔다. 치미는 아픔도 숨기고 살아왔던 어머니, 돌아보면 당신의 삶은 고단함이 전부였던 것 같다. 세우러을 한탄할 수는 없으나 어머니의 지나간 삶이 자꾸만 목이 멘다. 어디로 갔을까. 어머니도 젊음도, 육신의 버팀목들도.
수술을 권하는 의사와 죽어도 받지 않겠다는 어머니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한이 있어도 나는 병원 신세 안 질 거요." 큰아들뻘 되는 의사 앞에서 손사래를 치며 진료실 문을 박차고 나오는 어머니의 기세는 죽지 않았다. 팔순에도 늙지 않는 자존심, 어머니의 당당한 모습이 좋았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아마도 수술비 걱정을 먼저 했던 모양이다.
고향집으로 돌아온 어머니의 거동은 날로 지쳐갔다. 아무리 설득을 해도 고집은 한결 같았다. 언니들도 어머니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지켜보던 큰오빠가 지금껏 하지 못했던 말을 건넸다. 더 나빠져 걸을 수 없을 때, 객지에 사는 자식들 집에는 어떻게 올 것이며, 대소변은 누가 받아낼 것이냐는 말은 단호했다. 어머니의 눈빛이 조금씩 누그러들었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묵묵히 짐을 꾸렸다. 자식들과의 단절이 두려웠던 것일까. 못 이긴 척, 쇠고집을 꺾고 수술대 위에 몸을 뉘이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점점 노쇠해가는 당신을 큰오빠에게 의지하고 있는 어머니, 큰오빠는 지아비이자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으리라.
현대의학이 어머니의 무릎을 매만졌다. 두려움은 잠시였다. 몇 개의 인공관절이 옹기종기 들어 앉아 허물어져가는 육신을 가볍게 돌려놓았다.
젊었을 때, 어머니는 행상을 다녔다. 생선이 귀한 산골 마을도, 오불꼬불한 언덕길을 지나는 작은 마을도, 생선 대야를 이고 드나들었다. 어느 날부턴가 어머니는 수시로 다리를 주무르라고 일렀다. 철이 없었던 나는 몇 번 조물락거리고는 잠이 들었다. 수차레 끙끙 앓는 소리를 잠결에 들었고 벌떡 일어나 다리를 두드리기도 하셨다. 민간요법으로 풀뿌리를 짓이겨 동여매는가 하면 다리를 밟게도 했다. 작은 손보다는 체중을 실어 누르는 자식들의 발이 더 시원했나 보다. 그러나 어머니의 무릎은 갈수록 기능을 잃어갔다.
자식들의 눈에 어머니의 다리는 왜, 세월을 거스르는 튼튼한 다리로만 보였을까. 어머니는 늘 강인한 여인인 줄 알았다. 크게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아픔을 보람으로 승화시켰던 어머니. 버텨온 세상의 무게를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어머니는 마당 넓은 기와집에서 곱게 자란 아기씨였다. 몸종을 부릴 만큼 윤택했던 집안의 맏딸이 가난한 아버지에게로 시집을 온 것이었다. 궁핍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쳐도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고 더 무거운 짐이 쟁여졌다. 행여 자신의 처지가 걱정을 끼칠까 봐 차츰 친정집도 멀리했다. 열아홉의 꽃 같은 나이에 궁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고 오 남매를 둔 어머니는 힘겹게 삶을 일구어 나갔다.
어머니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건 생명력 강한 삶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픈 다리를 숨기며 지금까지 보여준 사랑을 깊이 되새긴다. 생선 대야를 이고 낯선 골목골목을 헤매며 자식들의 미래를 궁리했으리라. 생활이 힘겨운 만큼 뼈는 내려앉았고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만큼 관절액은 메말라 갔을 터이다. 잘려져 나간 어머니의 관절은 희로애락이 엉겨 붙어 있는 팔십 년 세월의 축소판이었다.
고되었던 과거를 이제는 넋두리처럼 잉기 하신다. 식구들 배 골리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하루 종일 이 고개 저 고개를 오르내리느라 얼마나 휘청거렸을까. 홀로 산을 넘자면 그 산은 아마 태산보다 더 높아 보였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흘러간 추억으로 기억된 그 순간이 생에서 가장 환히 빛나던 때였으리라.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는 휘어진 두 다리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엊그제 일처럼 아직도 생생한데 지금은 기억 속의 일이 되었다고 주름보다 더 깊은 미소를 짓는다.
한때는 휘어진 다리가 부끄러워 월남치마만을 고집하더니 요즘은 바지를 더 즐겨 입는다. 곧아진 다리가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던 것일까. 키도 더 커진 것 같다며 활짝 웃는다. 새색시 적 고운 다리는 아니지만 인공적으로 곧아진 다리가 이제라도 어머니의 자존심을 꼿꼿이 지켜주게 되어 다행이다.
지금은 내 걸음보다 더 늦어진 어머니의 걸음을 위해 걸음나비를 맞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몇 걸음이나 뗐을까. 나는, 일부러 다리가 아프다며 응석을 부린다. 아직 젊은데 뭐 그리 아프냐며 어머니가 먼저 벤치에 걸터앉는다. 나도 슬쩍 옆에 앉아 어머니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쉰을 바라보는 나는 홀로서기를 하며 세상의 풍파를 더러 만났다. 좌절과 절망이 온몸을 옥죄어올때는 두렵기까지 했었다. 막막한 세상 속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고민할 때나 세상을 향해 울분을 흘려보낼 때도 어머니는 아픈 무릎에 나의 고단한 머리를 얹게 해 주었다.
어머니의 마음 위에 설익은 나의 마음을 올려본다. 나는 혼자 버티기에도 힘겨운데 온 가족을 지탱한 어머니의 다리는 얼마나 고단했을까?. 내 삶의 무게는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한 여인의 아픈 다리를 통해서 깨우친다. 나는 앙상해진 어머니의 다리를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따뜻이 어루만져 준 적이 있었던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앉은 자리가 바늘방석 같아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욱신거렸던 다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짙어가는 가을 오후, 저 멀리서 아기씨 적 앳된 모습의 어머니가 코스모스처럼 한들한들 걸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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