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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 바울생가

Joyfule 2006. 6. 28. 14:27

 

 


다소 바울 기념교회

 


바울 생가 우물

 


사도 바울 당시의 생가 터

 


다소의 옛길

 


다소 클레오파트라 문

 


다소 출신 바울

 

다소


다소는 길리기아의 옛 수도로 이 지방의 동쪽, 비옥한 지대인 ‘길리기아 페디아스’의 주요도시이다. 다소는 터키의 남쪽, 소아시아의 남동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길리기아 관구 내에 있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이며 길리기아의 주요도시로 다소강과 지중해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터키의 남부 도시이며, 지중해로부터 약 19km 정도 북쪽에 떨어져 있다.  다소의 역사를 살펴보기 위해선 B.C. 3000경으로 올라가야 한다. 선사시대의 신석기시대로 소급되어지는데, B.C. 3000경에 다소는 이미 요새화된 성읍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소의 초기 역사는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B.C. 400경에는 페르시아 제국에서 점령했다가(B.C. 401에는 앗수르와 바벨론이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사라졌는데, 그때 당시 크세노폰이 쓴 원정기에 다소가 언급된다.) 그 뒤에 알렉산더 대왕이 지배했다. 알렉산더 이후에는 시리아의 수중에 들어갔으며, B.C. 200경에 유대인들이 처음으로 여기에 와서 살게 되었고 그 중에는 사도 바울의 조상이 있었다고 추정한다. B.C. 104에는 로마가 다소지역에 침투하였고, 따라서 다소는 B.C. 65에 폼페이우스가 지중해 동쪽 끝의 모든 민족들을 정복함에 따라 로마의 관할 지역이 되었다. B.C. 50경, 다소가 로마제국에 속하게 되면서 시세로가 총독으로 있을 때, 가이사 아구스도가 이 도시를 방문했다고 전해진다. B.C. 41에는 로마의 장군 안토니우스가 조공을 받기 위해 다소에 있었는데, 이 때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를 만나러 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클레오파트라 문’을 세웠다. 그 문은 아직까지 남아있다. A.D. 641에 아랍이 침입하여 이 도시를 파괴했으며, 1086에는 셀주크 투르크인들이 점령하여 1097년 십자군들이 여기에 들어올 때까지 이 도시를 지배했고, 결국 다소는 16C에 오스만 투르크인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금은 터키의 한 도시 ‘테르수수’라고 불려지고 있다. 현재, 아다나 공항에서 왼쪽으로 40km떨어진 곳에 다소가 있으며, 인구는 8만 정도 된다. 길리기아 평원의 비옥함은 다소에 부를 가져다주었으며, 특산물은 직조와 천막 제조업이다(바울도 천막을 제조하는 직업적인 기술을 가졌으며 전도 활동 중 생활수단으로 이 기술을 사용했었다.). 다소는 이집트와 시리아의 중앙 소아시아 사이에 무역을 하는 중요한 상업 지역이며 옥수수, 면, 양모, 가죽 등의 수출로 유명하다. 주전 334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길리기아를 통해 페르시아 정복을 하였고, 이로 인해 다소는 동, 서양 문화의 영향을 동시에 받았다. 사도 바울 시대에는 다소가 대학도시로서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를 능가할 정도였다고 하니 헬라 철학과 문화가 활발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길리기아의 중요한 도시로 여겨졌던 다소는 아덴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처럼 학문의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다소는 사도 바울의 출생지로 사도행전에만 5회 언급되었다(행 9:11, 11:25, 21:39, 22:3 등)

 

 

 


앗소 항구

 


앗소 아테나 여신전

 


앗소 아테나 여신전

 

앗소


앗소는 미둘레네 맞은 편에 있는 항구로 천연의 요새 조건을 갖춘 아름다운 도시이다. 소아시아의 서쪽 끝 무시아의 항구도시로 지금의 ‘베흐람쾨이’(Behramkoy) 자리에 해당하는 ‘아드람뭇데노만’(The Gulf of Adramyttium)에 있었다. 앗소는 에게 해변, 산 위에 세워진 도시로서 드로아 전쟁 때, ‘파다소스’(Padasos)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다. B.C. 1000, 미둘레네의 식민지였고, 그 후 리디아, 페르시아에 의해 점령 되었다. B.C. 334~241에는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후계자의 지배 하에 있었다. B.C. 241에는 버가모의 식민지였다.  원래 미둘레네(레스보스) ‘이올리아’의 식민지였던 앗소는 버가모의 왕들에 의해 ‘아폴로니아’로 재건되었으며 그 후에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화산 모양의 가파른 언덕 위에 세워진 성읍으로 3km에 걸친 방어 성벽이 쌓여있다. 앗소는 스토아 철학자 클레안데스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그 주변이 주로 농경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성읍은 그 항구에서 수출하던 좋은 품질의 밀로 유명했었다. 지금은 조용한, 고급스러운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앗소는 지금도 고고학적 탐사가 계속되어 여러 유물을 찾아냈는데, 286m 산 정상에 세워진 ‘아테나’(A소둠) 신전을 비롯해서 고대 도시의 유적이 남아있다. 그 중에는 도리아식 신전을 비롯하여 중요한 조각품들, 시장, 체육관, 목욕탕, 극장 등이 있다.

성경의 앗소는 바울이 도보로 방문한 성읍이다(행20:13~14). 드로아에서 바울은 자신의 동료들을 배로 ‘렉툼 갑’(Cape Lectum)을 돌아 항해하도록 보내고 자신은 육로를 따라서 앗소로 갔는데, 이는 약 32km의 여정으로서 곶을 돌아가는 것보다는 시간이 덜 걸리는 여행이었다.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올리고 미둘레네에 가서” 사도행전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