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관 자료 ━━/聖地巡禮

밧모섬(그리스 지역) - 사도요한 유배지

Joyfule 2006. 6. 28. 14:31

 


요한이 기도하던 동굴교회

 

항구 스칼라에서 코라로 올라가는 길 중간에 계시의 동굴이 있는데 현재는 계시 수도원으로 덮혀이다. 이 동굴은 또한 정교회와 천주교간의 우호적 대화가 있었던 장소이다. 동굴로 내려가다보면 내부 정원을 통과하여 몇 계단을 내려가는데 이때 만나는 오른쪽에 만나는 예배소가 성 알테미오스(18세기) 예배소이다. 계속 내려가다 교회 앞 넓은 홀(나르텍스)의 오른 쪽 돔과 성 안나 종탑을 왼쪽에 보게된다. 더 내려가면 성안나 교회 입구와 동굴에 이른다. 입구에 있는 비문은 인상적이다. "이 장소가 초라함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전이다" 앞으로 곧장 들어가면 성 안나 교회에 이른다. 전통에 따르면 11세기에 이곳에 호시우스 크리스토둘로스는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를 기념할 뿐아니라 어머니 마리아, 또 자기를 밧모를 가도록 도와 준 당시 황제의 어머니 안나를 기념한 것이라한다. 교회 오른 쪽에 고대 동굴의 경사진 천장이 있는데 시작하는 천장 부근에 3가닥으로 갈라진 틈이 있다. 이것은 성 삼위일체를 상징하고 이 방향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계 1:10) 계시를 들을 때 요한은 동굴이 좁아지는 쪽 한 홈에 머리를 대고 기도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요한의 초상화를 보면 이마에 굳은 살이 박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요한이 기도후 일어설 때 짚었다는 홈이 머리를 두던 홈 오른 쪽에 남아있다(요한은 분명히 오른 손잡이였을 것이다!). 오른 쪽을 쳐다보면 사람이 서서 책을 둘 만한 천연 장소가 있는데 전통에 따르면 이곳에서 요한의 제자 프로코로스가 그의 선생이 지시하는 모든 것을 기록하였다고한다.

 


동굴교회 입구

 


동굴 입구

 


계시 동굴 내부

 


동굴 내부(계시가 임할 때 갈라진 바위)

 


동굴 내부

 


동굴 내부

 


요한이 제자 브로고로 집사에게 계시를 대필시키고 있다

 


사도 요한

 

요한은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다. 주님께서 요한을 부른 뒤 그는 베드로, 야고보과 함께 제자들 중 핵심인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요한은 중요한 사건(야이로의 딸을 살림, 변화산, 겟세마네 기도)이 있을 때마다예수님으로부터 선별된 인물로 대접받았다.물에 익숙하였던 요한은 예수님이 갈릴리 주변을 옮겨다니며 전도하실 때 유능한 노잡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교통수단인 배를 수배하고 운전하였을 것다. 그래서인지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요한이 대제사장과 친분이 있었던 점과 아버지가 배를 가지고 있는 선주였다는 것을 보면 요한이 어느정도 유력한 집안에 속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요 18:15) 그러나 그의 성격은 매우 과격하여 형제 야고보와 함께 '우뢰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하루에 5,000명이 넘는 사람을 전도할 만큼 큰 능력을 얻었으나 그는 곧 슬픈 소식을 접한다. 그의 형제 야고보가 헤롯 아그립바에게 순교를 당한 것이다. 이런 소식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와 한 조가 된 요한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확고히 하는 등 활동을 왕성하게 한다. 언제부터인가 베드로와 따로 행동하던 요한은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후 에베소에 와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곳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데려와 모시고 살면서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들(1-3서)를 기록하였다. 주후 81-96년 도미티안 황제의 기독교 박해기간 사도 요한은 밧모섬으로 유배되었다. 요한은 그의 제자 프로코로스와 함께 '계시의 동굴'에서 있을 때 계시를 받아 요한계시록을 썼다. 또한 요한의 가르침으로 많은 주민들이 기독교인이 되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계 1:9) 96년 도미티안 박해가 끝나 새 황제 네르바에의해 풀려난 요한은 에베소로 돌아갔다. 그는 그곳에서 99세까지 장수하다가 104년에 하나님 곁으로 갔다. 지금도 그의 무덤이 에베소 요한교회에 남아있다. 그리스 정교회는 5월 8일에 그를 기념하고 9월 26일 그의 변화(metastasis)를 축하한다. 4세기 콘스탄틴 대제 이후 순례지가 된 밧모는 7세기 비잔틴과 사라센의 갈등 속에 약탈당하기도 했다. 주후 6-9세기까지 밧모섬은 다른 주변 섬들과 마찬가지로 해적들의 침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동굴 교회에 그려진 요한, 세계적인 초상화

 


스카라항에서 본 밧모섬 전경

 


밧모섬 항구

 


동굴교회에서 본 밧모섬 항구 지역

 

섬 정상의 요한 기념교회

 


기념교회 안 성화(사도요한이 물에 빠진 섬 책임자의 아들을 살려냈다)

 


사도 요한의 장사

 


기념교회 성화

 


사도요한이 세례주던 곳(항구)

 

 


계시록의 내용 성화

 

밧모섬은 그리스의 영토이다. 터키 해안에서는 불과 60㎞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나 아테네에서는 250㎞나 떨어져 있다. 밧모섬의 크기는 남북이 약 16㎞,동서로는 넓은 곳이 약 10㎞이며 중간 부분은 너비가 불과 1㎞정도밖에 안된다. 해안 굴곡이 심하여 주위 둘레는 약 60㎞에 이르나 면적은 34㎢이다. 주민은 2700여명인데 반 이상이 섬 중앙의 산언덕에 있는 호라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특히 이곳의 집들은 대부분 백색이어서 매우 깨끗하게 느껴진다. 이곳의 교통수단은 굴곡이 심한 지형상 특징 때문에 승용차보다는 오토바이가 많이 이용된다. 관광객들 역시 오토바이를 빌려 사용한다. 로마제국 시대에 밧모섬은 정치·종교 중범자들의 유배처였는데 한번 들어가면 살아나오기 힘든 생지옥이었다. 예수의 제자 중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은 사도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이 섬으로 유배됐다가(주후 95년께·계1:9) 도미티아누스가 죽은 후 석방돼 96년 에베소로 귀향하였다. 이곳 전승에 의하면 요한은 돌을 깨는 일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아직도 이곳 채석장에서는 돌을 생산하고 있다. 사도 요한이 유배생활 중에 계시를 받았다는 산 중턱의 요한 계시동굴 안에는 요한이 계시를 받을 때 갈라졌다고 하는 바위가 있고 바위벽 1m 높이에는 요한이 기도하고 일어날 때마다 손을 짚어 파였다는 손자국이 있다. 계시 동굴 입구에는 눈이 어두운 요한 대신에 계시의 내용을 대서한 요한의 제자 브로고로 집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도행전 6장 5절에 따르면 브로고로 집사는 예루살렘 교회 초대 7집사 중 한 사람으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산정상에 요한 수도원이 있다. 요한 수도원은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성으로 섬을 압도할 듯 버티고 서 있다. 이 수도원은 1088년 수도자 성 크리스둘툴러스가 사도 요한을 기념하여 세웠고 이 지역에 자주 출몰하는 해적들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요새화된 것이었다. 원래 이 장소는 그리스 여신 아르테미스의 신전이 있었던 곳이라고 전한다. 이 수도원에는 값진 보물과 희귀한 성경이 많은데 특별히 500년대에 기록한 마가복음은 매장 첫 글자를 순금으로 썼고 나머지는 은으로 썼다. 그리고 해상무역으로 큰 돈을 번 상인들이 안전 항해를 기원하며 많은 보물을 기증, 엄청난 보물이 있다고 한다. 특히 이곳에 있는 계시록의 책을 펼쳐 들고 있는 요한의 초상화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성화이다. 밧모섬에 기독교가 정착하게 된 것은 바로 요한수도원이 세워지면서부터다. 이 수도원이 세워지면서 다른 많은 수도원과 교회들이 속속 세워졌고 수도사들의 학문 연구를 위해서 도서관도 세워졌다. 1453년 이후 터키인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 로마 교황청의 지원을 받기도 했으나 16세기에는 터키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1912년 이탈리아에 귀속되었다가 1947년 그리스에 양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이곳에는 뜨거운 태양과 물이 귀한 기후 때문에 약간의 곡식과 채소,포도가 재배될 뿐이다. 요한수도원을 내려와 남쪽길로 항구에 내려오면 엘리야 기념교회가 산 중턱에 자리해 있으며 오른쪽에는 요한신학교가 있다. 요한신학교는 1713년에 창건되었고 그리스정교회 신학교 중 뛰어난 사제들을 배출한 우수한 신학교다. 기독교가 로마 황제에게 극심한 박해를 받던 어두운 시기에 사도 요한은 이곳 밧모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중 인류의 미래를 보여주는 계시를 받고 요한계시록을 기술했다.

'━━ 보관 자료 ━━ > 聖地巡禮'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묵칼레 - 흰 눈이 쌓인 듯한 온천지대,목화성  (0) 2006.06.28
라오디게아  (0) 2006.06.28
다소 - 바울생가  (0) 2006.06.28
파묵칼레 (PAMUKKALE)  (0) 2006.06.28
앗달리아 (안탈랴, 터키)  (0) 2006.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