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바나 다카시 - 사색기행. 중에서
<뉴욕 1981>
나는 방랑벽이 있어서, 세계의 수많은 거대 건축물들을
어지간한 사람한테 뒤지지 않을 만큼 보아 왔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세계의 어느 거대 건축물도 이만한 양감으로 육박해 온 적이 없었다.
이 양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물론 우선은 마천루가 한둘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는 데서 오는 즉물적 양감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강력한 것은,
어떤 빌딩을 골라서 놓고 봐도 그 안에 만 명 단위의 인구가 가득 차 있고,
그들이 모두 상상도 못할 정도로 다양한 활동을
한창 바쁘게 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살아 있는 양감이다.
그저 사람 머릿수가 많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이 대표하는 힘의 엄청난 크기가 있다.
고층 빌딩은 대부분 한 거대기업에 통째로 점유되어 있다.
그 기업 하나하나가 국가 못지않은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뉴욕은 그 초기부터 빈부 격차가 심햇던 도시다.
신천지에서 성공하기를 바라고 거의 빈털터리로 찾아온 이민자들은,
달리 정해 둔 곳이 없으면 대개 뉴욕에 머물렀다.
대체로 이민자의 3분의 2가 전국 각지로 흩어지고,
나머지 3분의 1은 뉴욕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태반이 로어 이스트사이드의 슬럼에 살았다.
로어 이스트사이드는 오랜 세월 동안 세계 최대의 슬럼이었다.
이곳 주민은 온갖 종류의 저임금 노동으로 출발해서, 성공하면 슬럼을 떠났다.
하지만 매년 떠나는 사람보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민자)이 더 많아서 슬럼은 줄곧 팽창해 왔다.
뉴욕에서는 새로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어디 사는지
(거주지가 아니면 어느 호텔에 묵는지),
어떤 이웃들이 있는지(근처 환경, 특히 근처 주민의 부류)를 묻는다.
그것으로 상대방의 진정한 사회적 지위를 판단하는 것이다.
'co-op'의 입주자 선정 방식은 일류 클럽의 신규회원 가입 결정 방식과 마찬가지다.
거부당한 사람에게는 다만 이사회의 투표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고만 말할 뿐,
'당신은 여기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차별은 언외(言外)의 말로 통보될 뿐이다.
어쨌든 이들 고급 'co-op'은,
돈이 있다고 아무나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클럽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