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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의 신앙행위로 축복의 삶을 누리고 계신가?

Joyfule 2019. 1. 10. 03:45



 
    당신은 지금의 신앙행위로 축복의 삶을 누리고 계신가?




우리네 교회에서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며 영접기도를 통해 입으로 시인하였으니까 구원을 얻었다고 선포하고 박수치고 천국백성이 되었다고 축하해주고 있다. 그 다음에는 무얼 하는가? 구원을 받았으니까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축복을 받으려면 교회 예배에 성실하게 참석하여 헌금과 십일조를 잘 드리고, 교회조직을 지탱하기 위한 각종 봉사와 교육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담임목사의 가르침에 순종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여기까지가 우리네 교회가 추구하는 신앙생활의 모습이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라. 교회에서 축복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제시하는 얘기들은 없다. 그래서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하고 싶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28:1,2)

 

위 구절은 나들복(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가도 복을 받는다는)으로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한 구절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조건이 무엇인가?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명령하시는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이다. 그게 우리네 교회에서 요구하는 예배의식에 참석하여 십일조와 헌금을 넘치도록 바치고, 교회에서 요구하는 봉사와 더불어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는 것인가? 그게 하나님이 성경에서 명령하시는 명령이고 여호와의 말씀인가? 솔직히 말해서, 그런 얘기들은 없다. 신학자들과 교회지도자들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교회에서 요구하는 신앙행위들이 비성경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종교의식에 참석하는 등의 신앙행위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콕 집어서 말한 대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요구하는 신앙행위는 하나님의 축복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라. 만약 그 신앙행위들이 하나님의 명령이었다면 목사들을 필두로 교인들이 하나님의 축복의 수혜자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사람들로 미어터져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어야 할지 않을까? 그래도 필자의 말이 의심스러운 분들을 위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축복의 조건을 말씀드리겠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5:3~10)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축복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세속적인 축복하고는 거리가 멀다. 영혼이 잘 되는 축복이다. 즉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살게 되는 축복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었다고 선포(10:10)하였으니까 더 이상 의심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사도바울이 롬10:10에서 선포한 것과 다른 조건을 줄줄이 나열하시는 것일까?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해하며,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화평케 하며,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들이 천국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이 가난한다는 것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어찌 할 수 없는 자신의 죄를 통회하고 애통해하면서 날마다 십자가 앞에 끓어 엎드려 회개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죄를 용서해주신 하나님의 의를 갈급해하며, 부족하고 연약함으로 인해 지은 죄를 즉각 회개하여 씻음을 받고 날마다 죄와 피터지게 싸우며, 미움과 시기와 싸움과 분열의 죄악 속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평안한 영혼과 삶을 인도하고, 하나님의 의와 그의 나라를 위해 기꺼이 박해와 고난을 짊어지는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1분짜리 영접기도에 아멘 하였다면 구원을 받았다고 가르치고 나서, 세속적인 축복을 얻으려면 예배의식에 참석하여 헌금을 잘 내고 교회조직을 지탱하는 교회봉사를 강요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구의 말이 옳은가? 당신네 교회의 담임목사인가, 예수님인가? 필자의 말에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당신의 얼굴이 못내 우스꽝스럽다.

 

그렇다면 우리네 교회지도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신명기 28장의 축복으로 돌아가 보자. 하나님이 축복해주신다는 조건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이다. 하나님의 명령과 여호와의 말씀, 혹은 하나님의 뜻, 예수님의 명령 등은 같은 의미이다. 죄다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것도 모든 명령을 지켜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성경에서 명령하시는 모든 명령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애쓰고 있는가? 물론 하나님은 먼지만도 못한 피조물들이 그 명령을 지킬 능력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계시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그 명령을 대하는 피조물들의 태도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네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 따위는 관심조차 없으며, 교회지도자들이 성경을 비틀어서 아전인수식으로 가르치는 교단신학자들의 교리와, 번영신학을 앞세워 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려는 목회성공을 위한 헌금과 교회봉사, 그리고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오라는 전도행위만을 닦달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는 교회에서 요구하는 신앙행위들을 잘 하는 이들이 믿음이 좋은 교인들이며 축복을 엄청나게 받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천국의 조건은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죄를 좋아하고 죄를 추구하려는 속성인 죄성을 지니고 죄로 변질된 자아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온전하고 거룩하게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주신 이유이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믿기만 하면, 죄를 씻어주시며 거룩하고 온전하게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그러나 자기 확신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믿음의 소유자여야 가능하다. 이는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보혈의 능력을 가슴에 새겨주셔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날마다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 길만이 영혼이 잘 되어 천국의 백성이 되며, 정신질환과 고질병이 치유되어 건강하게 되고 세상에서 잘 되는 축복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