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믿음을 어떻게 입증하는가?
우리네 교회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영접기도에 아멘이라고 동의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이 있다고 인정하고 구원을 받았다고 선포하고 있다. 그런 고백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다는 성경의 근거를 들이대며 성령이 안에 계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1분짜리 영접기도가 과연 예수를 영접하는 삶이며, 입만 달싹이며 고백하는 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이냐는 것은 별개이다. 또한 성령이 안에 계시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성령이 안에 계신 증거가 나타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네 교회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셨으며, 성령과 동행하였던 성령의 사람들은 기적과 이적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고질병을 고치는 능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우리네 교인들은 성령이 안에 계시다고 확신하고는 있지만 성령의 능력은 전혀 없다. 기가 막힌 일이다. 그러나 이런 구원론과 성령론은 이미 교단교리에 의해 확정된 것이므로, 여기에 대해서 의구심을 표출하면 절대 안 된다. 이미 우리네 교회는 그들이 신봉하는 신학자의 주장이 예수님의 말씀위에 있다. 그래서 성경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하신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교단 신학자의 성경해석이 중요하다. 기가 막힌 일이다.
그러나 울 영성학교는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을 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이곳의 기도방식은 열심히 하거나 희생적으로 하는 방식의 기도가 아니다. 성령이 내주하는 증거와 변화, 능력과 열매가 있어야 인정한다. 필자가 영성학교를 열고 3년이 넘었으며,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 공동체로 섬기면서 기도훈련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기적과 이적으로 귀신이 쫓겨나가며 정신질환과 고질병이 치유되고 삶의 지난한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러나 이런 기적은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령의 사람은 기적과 이적이 날마다 밥 먹듯이 일어나야 한다. 아쉽게도 그러한 성령의 사람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물론 이곳에서 기도 훈련하는 사람들은 기존 교회에서 기도하는 수준과 비교불가이다. 아침과 저녁에 각각 한 시간이상 기도하며 낮에도 틈만 나면 기도하는 게 기본이며, 그냥 편하게 기도하는 게 아니라 전심으로 배를 쥐어짜며 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죄와 싸우고 자기부인을 하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영성학교에서 기도를 허접하게 하는 사람들도, 기존교회에 가면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기도하더라도, 아직 성령이 사람이 되지 않았다는 게 필자의 고민이자 영성학교의 딜레마이다. 아시다시피, 영성학교의 훈련교과서는 성경과 필자가 성령으로부터 들어온 내용으로 가르친다. 그러므로 필자가 성령으로부터 들어온 내용이 과연 성경적인지 성경의 증거가 있는 지 분별해서, 진짜 성령이 주신 말씀인지 아니면 귀신으로부터 들어온 허구인지 판단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동안 영성학교에서 기적이 수도 없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귀신들도 얼마든지 입이 쩍 벌어지는 기적을 연출할 수 있으므로 성령의 열매가 있는 지로 분별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영성학교에서 요구하는 기도의 방식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기도한 것을 알고 있느냐? 그것이 기도의 강을 건너는 본보기 이다.
* 야곱의 기도를 배우라.
* 얍복강가에서 죽기를 각오하는 기도한 야곱을 묵상하라.
* 야곱의 기도는 주인을 기쁘게 한다.
* 이천년 전에 나는 기도의 사람으로 사람이 하는 것과 똑같은 훈련을 했다.
* 나도 기도의 종이었음을 알린다.
* 겟세마네적인 기도를 하라.
성령께서 필자에게 해주신 기도의 방식을 말해주는 성경의 위인은 여러 분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야곱의 얍복강가에서의 기도와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가 압권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 기도태도를 훈련의 텍스트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도방식은 한 시간만 하면 탈진할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기도태도이다. 그러나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하는 기도를, 하루에 한 시간이 아니라 기도할 때마다 매번, 그리고 끝도 없이 해야 한다는 것에 사람들은 기가 질리는 모양이다. 물론 필자가 과거에 그런 방식으로 기도한 것도 아니고, 지금도 그렇게 탈진할 정도로 절박하게 기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필자는 그간 15년이 넘는 세월동안 성령으로 죽기 살기로 기도했다는 인정을 받아, 각종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가지고 기적으로 이끄시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사역을 하고 있다. 그러나 훈련생들은 다르다. 필자처럼 15년이 넘는 세월을 주구장창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더 어려울 것이 틀림없다. 하나님은 기도의 빈도나 강도, 기도한 시간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를 보신다. 그 마음의 태도를 보시고 믿음을 측정하신다. 필자는 종이므로 성령께서 요구하신 텍스트를 바꿀 권한이 없다. 성령께서 요구하시는 기준은, 야곱의 기도나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절박한 기도의 태도이다. 그러나 정해진 기간이나, 하루에 해야 하는 물리적인 기도의 양은 따로 없다. 그러므로 언제까지 이런 기도를 해야 하는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성령께서 오케이 하는 날까지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많은 훈련생들이 이런 기도를 어떻게 할 수 있냐면서 볼 멘 소리를 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빈도와 강도 그리고 기도시간을 내서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성령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으로는 성령이 오실 턱이 없다.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탈진할 정도로 어떻게 주구장창 기도할 수 있냐고 항변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의 위인들에게 요구한 믿음의 수준을 살펴보겠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난 외아들 이삭을 죽여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하여 믿음의 조상이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얻었다. 요셉은 1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죽음이 어른거리는 지하 감옥에서 절망과 싸우면서 절박하게 기도하며 믿음을 지켜나갔다. 다윗은 목숨을 걸고 물맷돌 하나로,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백전노장인 거인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따르라는 명령에 가족과 직업과 부모형제를 버리고 즉각 따라 나갔다. 바울은 선교현장에서 수많은 고통을 겪고 셀 수 없을 만큼 죽음을 맞닥뜨렸다. 위의 성경의 위인들이 바로 성령과 동행하며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성령이 당신에게 요구하시는 야곱의 기도나 예수님의 겟세마네동산에서의 기도가, 위의 성경의 위인에게 요구하신 기준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가?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누구에게나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당신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의 테스트가, 성경의 위인들에게 요구하는 믿음의 테스트보다 훨씬 쉬워 보이지 않은가? 그러나 당신은 야곱의 기도와 예수님의 기도가 너무 어려워서 할 수 없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성령님의 뜻을 변경하고 축소할 권한이 없다. 야곱의 기도를 따라 해서라도 성령의 사람이 될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당신의 몫이다. 아니면 기존 우리네 교회에서 하는 쉬운 신앙방식과 기도방식을 고수하시면 된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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