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진짜 문제는,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
세상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문제가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뿐이라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서, 많은 돈을 들이고 시간을 내어 전문가를 찾아다니고, 심지어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가 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해결되는 문제보다, 새로운 문제가 더 빠른 속도로 생겨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6~19)
위의 구절은 하나님께 범죄 한 아담과 하와에게 죄의 처벌을 선포하고 있다. 이 때부터 아담과 하와는 노동을 통해 먹고 살아야 할 것이지만, 그 통로는 생산성이 없으므로 고통을 예고하고 있다. 결국 죄 때문에 고통의 문을 열게 된 셈이다. 아담을 통해 이 땅에 죄가 들어왔고, 죄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으로부터 떠나시게 되었으며, 죄 때문에 악한 영들이 사람들을 포로로 삼아 생명과 영혼을 사냥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 땅에서 고통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이 문제에 대해 느긋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오홋, 그런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 땅에서 평안하고 형통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여전히 삶의 각종 문제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면, 여전히 당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보혈의 능력이 당신의 삶과 영혼에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즉 당신이 믿는 것은, 실제로는 스스로 믿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지 예수님께서 인정해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아는가? 당신이 교회마당을 정규적으로 밟고 있고는 있지만, 죄를 인지하지도 못하고 죄와 싸우려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으려하겠지만, 당신이 처한 현실을 직시해보라. 예수님께서 당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었다면, 기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증명해보여야 한다. 아니라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는 별도로, 여전히 당신은 죄 때문에 불행에 빠져서 고통당하고 사는 중이다. 그 이유는 당신을 고통스러워하는 삶의 문제들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그래서 그 태도를 낱낱이 곱씹어보도록 하자.
1.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문제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피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게임에 빠지거나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거나 낚시를 떠난다. 즉 삶의 쾌락을 찾아서 현재의 고통을 잊고 싶은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문제가 타인에게 전가한다. 배우자나 부모, 자라온 환경, 직장상사나 동료, 심지어는 정부나 대통령을 잘못 만나서 그렇다고 여긴다. 그래서 틈만 나면 불평과 불만, 원망과 냉소를 쏟아 붓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이 모든 삶의 고통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방이나 타인에게 문제를 전가하고 회피하며 합리화하기에 바쁘다.
2. 그간의 신앙행위나 종교행위를 앞세워 문제를 덮어버린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지금까지 해온 희생적인 종교행위와 신앙행위를 기억하면서, 적당한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을 믿고 있다. 말하자면 자신에게 발생하는 문제는 견고한 믿음을 위한 하나님이 내리시는 고난쯤으로 여기고 있다. 이 역시 삶의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지 않는 태도이다. 물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스스로 선택하는 고난도 있다. 그러나 그런 고난은 영혼구원을 위한 사역이나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에게 임하는 고난은 무지와 어리석음 등에서 기인되며, 죄의 덫을 밟아서 시험에 드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기는 고사하고 더 악화되다가 이 땅을 떠나간다. 많은 목회자들이 때가 되면 하나님이 해결해주실 거라는 덕담을 늘어놓지만, 이는 무책임한 말일 뿐이다. 앞서 이 땅을 떠난 신앙의 선배들을 보라. 그들은 평생 그런 말을 듣다가 고난에 시름하다가 죽어갔다.
3. 자신의 능력과 의지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규칙적으로 기도하지 않거나, 매일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기도행위로 삶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고 있지 않다. 그전에 새벽기도회에 나가 작정하고 애걸복걸하며 기도한 경험도 있었고, 기도원에 짐 싸들고 올라가 금식하며 울며불며 기도한 적도 있었지만 아무런 효험도 보지 못하자 지금은 더 이상 기도자리에 앉지 않는다. 설령 기도하는 이들조차 보험에 들어놓는 심정으로, 응답을 기대하지 않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는 세상 사람과 진배없이 자신의 능력과 실력, 돈과 인맥, 지식과 경험, 학력과 경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물론 필자가 기도만 하고 아무런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마음의 속내이다. 하나님이 해결해주신다는 견고한 믿음이 없이, 세상의 방식이나 인본적인 방법에 더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4. 포기하는 심정으로 팔자타령을 하고 있다.
네 번째 태도는 죽을 때를 기다리는 말기 암 환자 같은 심정으로,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할 마음을 내려놓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문제를 해결할 의욕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이다. 이런 사람은 교회를 규칙적으로 다니는 크리스천이거나, 아니면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이거나 상관이 없다. 말하자면 하나님을 더 이상 의지하지도,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해결할 의지조차 없다. 그냥 운명이라고 받아드리고 팔자가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위의 4가지 유형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돌보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오랜 신앙의 연륜이 쌓였거나 교회직분이 높아도,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외면하시고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깊은 속내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맡기는 마음이 없다. 안타깝지만, 이런 사람들이 교회주변에 널려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들이 이 땅을 떠나면 갈 곳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물론 천국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안타깝고 섬뜩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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