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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성령의 사람이 되지 못하는 이유

Joyfule 2019. 7. 14. 22:35



 
 당신이 성령의 사람이 되지 못하는 이유 


아시다시피, 필자는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을 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성령의 사람이 되지 못하는 지에 대해 훤하게 알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영접기도행위를 통해 성령이 안에 들어왔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성령이 누구신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시다. 성령과 동행한 성경의 위인들을 보라. 놀라운 기적과 이적, 형통한 인생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증명했다. 신약시대에 들어서,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난 성령의 능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악케 하였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성령이 안에 들어왔다고 믿으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는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필자가 오랫동안 성령의 사람들을 양육하면서, 왜 교인들이 성령의 사람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콕 집어서 말씀드리겠다.

 

1. 전심으로 기도하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전심으로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한 사도들과 120여명의 제자들은 성령이 내려오는 기적을 맛보았으며, 사도들은 유대교에서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을 훈련시켜서 성령의 사람을 배출했다. 그 기도의 방식은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전심이란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기도하는 일에 목숨을 거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영성학교에서 가르치는 훈련이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훈련생조차 자신이 할 수 있을 만큼, 혹은 하고 싶은 만큼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아침에 한 시간 이상, 저녁에 한 시간 이상, 그리고 낮에도 틈나는 대로 성실하게 기도하고 있다고 답변하고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기도하더라도 하나님을 감동시키지 않으면 성령이 오시지 않는다. 성령이 오시는 기도는 하루 종일 미친 듯이 기도하여야 한다. 시간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한가하면 한가한 대로 바쁘면 바쁜 대로, 기도하는 일에 전부를 바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그저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2. 전심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마음대로 육체가 원하는 생각을 받아들인 것이다. 성경에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부패되었다고 선포하고 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마음이나 생각이다. 성경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며, 마음이 원하고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 자신의 유익을 원하는 기도를 가르치고 있으니 기가 막히다. 그뿐 아니다. 과거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진정으로 회개기도를 했으므로, 더 이상 회개하지 안 해도 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회개기도가 끝나자마자 새로운 죄를 짓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날마다 쉬지 않고 자신이 깨달은 죄와, 깨닫지 못하는 죄까지 철저하게 회개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은 회개하는 죄에 대해서만 씻음을 받는 효력이 있다. 회개하지 않는 미래의 죄까지 용서받는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어불성설이 된다.

 

3. 죄와 피터지게 싸우지 않는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자신의 죄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죄를 지으면서도, 그게 죄인지 모르는 이들도 허다하다. 그러니 성경에서 그게 죄라고 말해주어도, 죄와 피터지게 싸울 생각이 없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어떤 이는 열심히 죄를 회개하고 있으니까 괜찮다든가, 혹은 연약하고 부족한 육체를 입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자기합리화를 하는 이들도 있다. 하나니은 죄를 미워하시며 죄인과 가까이 하실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죄인지 알고 있지만, 죄를 짓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 않는 사람들을 가증스럽게 여기신다. 천국이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는 의미는, 천국에 입성하는 자들은 죄와 죄를 부추기는 악한 영들과 피터지게 싸워서 전리품으로 얻어지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싫어하는 죄와 피터지게 싸우지 않는 이들이, 어떻게 천국백성이 되겠는가?

 

4.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1:28)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지만, 그게 얼마나 가증스런 일인지 깨닫지 않는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쉬지 않고 부르는 것을 좋아하여, 틈만 나면 갈급해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종교적인 행사로 기도하거나, 마지못해서 의무적으로 형식적으로 기도하고 있거나 아예 기도를 하지 않는다. 종이 주인을 찾아오기 싫어하는데, 어떤 주인이 같이 살고 싶어 하겠는가? 이런 저런 이유로 기도하는 이들은 적지 않아도,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며 하나님을 찾아오는 자들은 희귀하다. 아무리 오랫동안 기도하고 있더라도, 하나님을 좋아해서 만나고 싶지 않는다면 성령께서 찾아오실 턱이 없다.

 

5. 기도행위를 자기 의로 여기거나 자기만족을 위해 기도한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기도행위를 남들이 알아주거나, 자신이 하나님과 얼마나 친근한지에 스스로 만족해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랬다. 그들은 자신의 기도행위를 알리려고 애썼으며, 자신이 얼마나 율법의 조항들을 철저하게 지키는 지 광고하는 데 혈안이었다. 그게 바로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자기 만족이란 기도하는 행위를 스스로 만족해하는 것이다. 이런 이들은 몇 시간 기도했는지, 얼마나 희생적으로 기도했는지, 기도할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등을 중요한 척도로 삼고 있다. 그러나 기도란 하나님과 내 영혼이 교제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종이 기도로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려고 애쓰는 행위를 남에게 자랑할 것도, 스스로 만족해 할 것도 아니다. 지극히 마땅한 일일 뿐이다. 그러나 하루에 몇 시간 기도하고 있는지, 혹은 기도할 때 힘을 많이 주고 있고, 간절한 느낌으로 기도하는 것을 토대로 자기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는 지금까지 기도응답을 받은 것이 많고 은혜를 체험한 것을 훈장처럼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기도행위를 자기 의와 자기만족으로 여기는 종교주의자(율법주의자)들이다. 이렇게 가증스러운 사람들에게 어떻게 성령이 찾아오시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