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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방식

Joyfule 2019. 7. 17. 02:21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방식


아시다시피, 3주 전에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기도훈련을 시작한다고 선포했다. 왜냐면 그간 4년간의 기도훈련이 그다지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17년을 해온 기도방식을 토대로, 성경의 기도방식을 텍스트로, 성령께서 해주신 가르침을 참고서로 기도훈련을 했는데, 왜 이런 초라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기도훈련을 해온 방식을 죄다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판을 짜려고 한다.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1:12~14)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2:38~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4:2)

 

위의 구절이 성령이 임재 하는 기도의 모습을 보여준 사건이다. 사도들과 120명의 제자들이 이렇게 기도해서 성령이 임재 하였으며, 예루살렘 교회에 입교한 유대인들에게 사도들이 자신들이 한 기도의 방식을 그대로 가르쳐서 초대교회 교인들에게도 성령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스데반집사와 빌립집사이다. 이 때 사도들이 가르쳤던 기도방식도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썼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썼다.’ 이 말의 헬라어는 프로스카르테룬테스 프로스케이다. 이 헬라어 단어가 다른 성경에 쓰인 곳이 있다. 바로 골로새서 4:2이다. 여기에서는 기도를 계속하고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이 구절이 뜻하는 것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기도를 계속하면서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쓴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네 주변에 열심히 기도한다는 교회는 적지 않았지만, 초대교회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재현한 교회는 없다. 말하자면 아쉽게도 초대교회 이후에, 교회 공동체적으로 성령이 내주하시는 사건은 더 이상 없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에서는 세대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성경이 완성된 이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초대교회와 같은 기적과 이적으로 통치하지 않는다.’ 라며, 자신들에게 기적과 이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다. 그러나 울 영성학교는 아니다. 초대교회와 똑같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필자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그동안 4년 동안의 기도훈련 성적표가 이를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혀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서 귀신이 쫓겨나가고 수많은 정신질환과 고질병이 치유가 일어났으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소수의 사람들만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치유하는 성령의 사람들이 되었을 뿐,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성령의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필자가 새롭게 기도훈련을 하겠다고 선포한 이유이다. 새롭게 기도훈련을 하면서 바뀐 대목은, 이미 검증된 방식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필자가 17년 전에 사업에 실패하여 인생이 무지막지하게 떠내려가고 나서, 하나님께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애걸복걸하며 하나님을 만나겠다고 결심하면서 기도를 시작했다. 성경에 기록된 기도의 방식은 쉬지 않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11년 차가 되었을 때 필자의 부부에게 나타나셔서 영음과 음성으로 말씀하시면서, 기도훈련을 시켜서 악한 영과 싸워 이기는 일당백의 정예용사를 양육하고, 악한 영의 아가리에 있는 양들을 끄집어내어 구원의 강가로 데리고 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어떻게 기도하여야 하는지 책으로 두 권 분량의 말씀을 해주셨다. 그 때 필자가 그간 기도한 것에 대한 평가도 해주셨는데, 필자를 기도의 종이라고 종종 불러주시면서, 필자가 죽기 살기로 나를 찾아왔다, 기도의 종의 기도방식을 따라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격려해주셨다. 이 말씀은 그동안 필자가 해온 기도방식이 성령께서 인정해주셨다는 의미이다. 그 후에 필자는 귀신을 쫓아내며 정신질환과 고질병을 치유하면서 사역을 해오고 있다. 기적을 경험한 것만도 천 번이 넘는다. 또한 필자의 사역에 예언으로 말씀해주신 것들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다음카페의 예언게시판에 올려놓았으니 읽어 보시고 분별하시기 바란다. 그래서 이번에는 필자가 기도한 방식을 그대로 벤치마킹해야 하는 것으로 훈련방식을 바꾸었다. 3주전에는 필자의 기도자세를 보여주고 훈련시키고 있으며, 이번에는 필자가 하루 종일 어떤 태도로 기도하는 지를 알려드리고 싶다. 먼저 성령께서 말씀해주신 기도의 태도를 올려드린다.

 

입으로 나를 찾는 자는 기도의 본질을 모르는 자다. 기도의 본질은 나이고 자기도 알 수 없는 자를 만나는 것이므로, 그분이 누구인지 알려면 마음으로 만날 분을 사모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에게 오시도록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나를 찾아주시도록 보이지 아니하고 들리지 아니한다 해도 오직 기도하는 일에 모든 집중을 다해서 일상에서도 기도하는 마음이 떠나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오시도록 집요하게 조르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이 기도를 하지 않고 중도에 포기하고 내가 그를 만나려고, 주리고 목마른 자가 오로지 나를 찾고자 하는 것을 혹독한 마음을 읽었을 때 내가 그를 만나려고 하고 있는데, 그들은 중도에 포기하고 자기들의 입으로 하나님은 자기에게 오시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고 있다. 이렇게 기도하는 자는 어떤 일에서도 인내하지 아니하고 자기 고집대로 모든 일을, 하나님 없이도 자기의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나를 만날 수도 나는 그런 사람의 아버지도 아님도 알 것이라. 모든 사람들이 이런 기도를 하고 정성스럽고 끈질긴 자들이 나를 만나는 것이지, 조급하고 자기중심으로 나를 만나려고 하는 사람은 나도 그들을 만날 수 없다는 걸 알려라.’

 

1. 말이 필요 없다. 하루 종일 기도하려고 몸부림쳐야 한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살전5:17~19)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21:36)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4:2)

 

쉬지 말고 항상 기도를 계속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콕 집어서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가? 열심히 하고 있을 것이다. 영성학교 식구들이라면 아침과 밤에 각각 한 시간이상, 그리고 낮에도 틈나는 대로 기도하고 계실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기도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필자가 어떻게 기도하는 지 말씀드리겠다. 필자는 하루 종일 기도하려고 애쓰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2시간 기도하고 밤에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두시간 기도하는 것은 기본적인 습관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낮에도 혼자 있는 시간이나, 틈나는 대로 기도하고 있다. 그래서 하루 대여섯 시간 기도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물론 필자가 사역자니까 직장이나 자영업을 하지 않으며, 가족을 돌보는 가정일이 없으니까 그렇게 기도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니다. 필자는 사역을 시작하지 전에, 아내와 저가화장품 방문판매를 하고 있을 때에도 그렇게 기도했었다. 그러니까 장사하는 것은 성실하게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아 무 생각 없이 주구장창 하루 종일 기도했었다. 필자가 말하는 것은 기도하는 시간이 아니라 기도하는 태도이다. 필자는 아침과 밤에 방해받지 않고 기도하는 시간만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기도했지만, 낮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기도하는 시간이 불규칙했다. 어떨 때는 시간이 넉넉하게 기도하기도 했지만, 아주 바쁜 날은 기도를 전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틈만 나면 기도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말하자면 기도하기 위해 돈을 벌고, 기도하기 위해 가정을 꾸리고, 기도하기 위해 잠을 자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기도하는 게 모든 삶의 우선순위였으며, 포커스를 맞추며 살았다. 하나님은 당신이 기도하는 시간이나 기도하는 자세 그리고 희생적인 태도로 기도하는지를 보시는 분이 아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방언으로 기도하고, 금식을 하면서 기도하고, 하루에 5시간 이상 기도하는 것 등은 하나님이 보시는 잣대가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루 종일 전심으로 자신을 사모하며 찾아오는 것만을 보신다. 하나님은 하루 종일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신다. “24시간 기도한들 어떠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당신의 마음이 하루 종일 기도하려고 미쳐야 한다. 성실하게 열심히 해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당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만큼 기도해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2. 성령의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잊지 마라.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13:44~46)


당신이 기도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안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정신질환이나 고질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일수도 있다. 아니면 악성부채를 해결하거나 가정이 화목하고 새 직장과 자영업이 잘되는 것일 수도 있다. 성령의 사람이 되면 형통하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까 이런 정도의 기적이야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목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성령의 사람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도맡아 할 사람이다. 하나님은 기적과 이적으로 일하시는 분이시다.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치유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이 내려오는 등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초능력의 보유자가 되는 것이다. 성경의 위인들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사무엘, 다니엘, 베드로, 바울 등을 보라. 그들은 세상을 압도하는 그런 인물이 아닌가? 그렇다면 당신도 성령의 사람이 되면 그런 능력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 사실을 믿지 않거나 종종 잊어버리고 있다. 그래서 기도하는 일에 목숨과 인생을 걸지 않는다. 목숨과 인생을 걸지 않는 사람들은 성령의 사람이 될 수 없다. 성령의 사람들은 기도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왜 그런지 아는가?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을 만나 동행하려고 하는가? 하나님은 당신의 생명과 영혼의 주인이시며, 영원한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게 해주시는 분이시며, 이 땅에서도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해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분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며, 당신이 상상하는 그 이상을 선물로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렇다면 당신이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에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당신은 고작 병이 낫거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만 하나님의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당신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당신이 목숨을 다해 하루 종일 미친 듯이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성령의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잊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간 기도할 때 마다 5만 원짜리 지폐가 떨어진다면 세상에 기도하지 않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루에 두 시간 기도해도 먹고 사는 게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고작 오만 원짜리 지폐보다도 못한 분이신가? 그분은 세상의 재물을 소유한 분이시다. 당신이 그 사실을 잊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기도하지 않는 이유이다.

 

필자는 이 기도를 해서 인생이 확 바뀌었다. 하나님은 필자를 많은 사람위에 세워주셨으며, 사역과 먹고 사는 필요를 넉넉히 채워주신다고 하셨으며, 이 땅을 떠날 때까지 재정적으로 돕는 이를 붙여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사역이 열리고 나서 4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 약속이 유효하다. 놀라운 기적들이 날마다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이 기도를 미친 듯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필자가 기도를 시작하고 나서 10년 동안 아무 일이 없었다. 그러나 11년차 이후부터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경험한 기적이 천 번이 넘는다는 입이 떡 벌어지지 않겠는가? 그런데 성령께서는 필자가 아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다. 당신이 이 기도에 목숨을 걸지 않는 이유는 성령의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종종 잊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인물들은 성경에나 나오는 인물에 불과하며, 삶의 현장에서 입이 떡 벌어지는 기적과 이적을 드러내는 성령의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영성학교는 아니다. 필자가 한 말이 거짓이라면 당신이 여기에 매주 꼬박꼬박 올 일이 없을 것이다. 여기에 와서 기적이 수도 없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고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내려오는 성령의 사람이 어떤 사람임을 잊는다는 게 기가 막힌 일이다.

 

3. 기도를 방해하는 것은 철저하게 차단하라.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1~33)

 

당신이 하루 종일하고 싶어도 기도를 못하게 하는 게 무엇인가? 새벽에 출근하여 밤늦게 퇴근하는 직장 때문에 기도를 못한다고 대답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은 시간까지 가게 문을 열고 있어도 요새 같은 불황에 적자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서 직장사정과 자영업 때문에 충분히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은 지금처럼 먹고 살기에 급급하다가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직장을 그만두거나 자영업을 그만 두라는 것이 아니다. 성실하게 하되 일에 매달리지 말라는 것이다. 일에 매달려서 기도를 등한시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가 장사를 할 때는 딱 먹고 살만한 돈을 벌었다. 당시 아내와 둘이 월 150만원을 벌어야 최소한의 생계비였다. 사실 엄청난 빚더미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벌어서는 안 되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아등바등해야 하는 게 불 보듯 환한 일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딱 한 달 먹고 살만한 수입만을 벌고 나머지 시간을 기도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므로 직장이나 자영업 때문에 충분히 기도할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은 이 기도를 할 수 없다. 돈을 우상으로 섬기고 살기 바란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6:21)

 

기도를 방해하는 것들은 당신 주변에 수도 없이 많다. 스마트 폰이 그렇다. 스마트 폰은 손 안에 컴퓨터가 있는 셈이다.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것들과 궁금해 하는 것들을 금세 알 수 있으며, 하루 종일 들여다보아도 재미있는 것들이 널려 있다. 그래서 당신 손에 스마트폰이 붙어 있다면 성령의 사람이 될 꿈을 버리라.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가방에 두거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두었다가 꼭 필요한 상황일 때 이용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보고 계신다. 아니라고? 스마트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있다고? 오홋 그런가? 그렇다면 출근을 할 때나 외출을 할 때 스마트폰을 집에 놓고 나가보시라. 왠지 허전하며 안절부절 하고 불안해하고 있다면, 당신은 성령의 사람이 될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라. 필자도 한동안 스마트폰에 마음이 가 있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었다. 필자의 사역이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유투브 동영상, 페이스북에 널려있었고, 문자나 전화 카톡으로 상담이나 기타 연락해야 할 상황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필요한 것만 하고 끝나지 않았다. 쓸데없이 몰라도 되는 인터넷 기사를 시도 때도 없이 들여다보게 되었으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사나 장면에 눈을 고정시키기 일쑤였다. 그래서 지금은 스마트폰을 던져놓고 있다. 무음으로 해놓아서 전화가 와도 필자를 부르지 못한다. 외출할 때도 가급적이면 지참하지 않는다. 집에 있어도 서재 한구석에 놓고 눈에 뜨지 않게 하고 있다. 그래서 스마트 폰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도록 싸우고 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12:51~53)

    

마음을 빼앗는 것이 어디 그뿐이랴? 어떤 이들은 남편이나 아내, 자녀나 부모의 말이나 행동, 상황에 신경을 곤두서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기도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하나님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는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셈이다. 가족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는 이 기도에 방해가 된다면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택하든지 아니면 가족을 택하든지 말이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잊지 마시라.

 

하루 종일 기도하는 일에 마음을 빼앗는 것들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하시라. 그동안 당신이 해온 기도방식을 앞으로도 계속한다면, 지금처럼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살다가 지옥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이제 영성학교의 기도훈련은 필자가 해온 기도의 자세와 기도의 태도를 그대로 따라해야 할 것이다. 왜냐면 필자의 기도는 성령으로부터 검증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당신이 하고 싶은 것만 따라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는다면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은 포기하기 바란다. 영성학교에도 당신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기도방식은 옥석을 가리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세간에 영성학교에서 성령의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소문이 나면, 당신의 자리를 내어주게 될 게 불 보듯 환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