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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마가의 다락방이 어디인지 찾아다닌다

Joyfule 2019. 7. 16. 01:03



 하나님은 마가의 다락방이 어디인지 찾아다닌다.
  



위의 칼럼의 제목은 성령께서 말씀해주신 것이다. 이 말에 딴죽을 거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사도들과 120여명의 제자들에게 성령세례가 임한 사건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대교회 이후에 그런 사건은 자취를 감추었다. 개인적으로 성령이 임한 사건은 종종 있었지만 교회 공동체단위로 일어난 적은 없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웬 은혜인지 필자에게 그 사역이 주어졌다.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을 하는 사역 말이다. 아시다시피, 필자가 충주에 영성학교를 열기 전에는 재래시장과 식당가를 다니면서 저가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며 생계를 이어나가면서,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해 오고 있었다. 11년차에 접어들면서, 성령께서 영음과 음성으로 말씀해주시면서 지금의 사역을 준비시켰음은 익히 들어 여러분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게 4년 전에, 성령의 명령과 인도하심으로 기적적으로 충주 영성학교가 설립되었다. 그리고는 성령께서 약속해주신 대로 수많은 사람들을 영성학교에 보내주셨다. 그래서 필자가 그동안 해온 기도습관을, 성경말씀과 성령께서 영음으로 해주신 것을 바탕으로 가르치고 훈련하고 있다. 그러나 4년이 흐른 지금 훈련성적표를 받아보니 아쉽기 짝이 없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으니, 상당수의 훈련생들이 성령의 사람이 되어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성령의 사람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오늘은 왜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훈련받는 이들에게 성령이 내려오시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다.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1:12~14)

 

위의 구절이 바로 성령이 임한 사건을 설명하는 제자들의 태도를 말해주는 내용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기쁨도 잠시, 승천하시는 모습을 보고 돌아와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을 따라서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내용의 기도를 했겠는가? 자신의 유익을 구하거나 삶의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기도는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내려달라는 기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인가? 아니다. 사도들은 이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인 것을 고백하였으며,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했다. 게다가 부활 하신 예수님을 목격하였으니 말이 따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들은 또 다시 성령을 내려달라는 기도를 해야 했는가? 이들에게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3년 반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신앙고백도 하고, 때로는 예수님께서 능력을 주어 귀신도 쫓아내고 질병도 고친 경험도 하였지만, 그들에게 아직 성령이 계시지 않았다. 그러므로 성령을 내려달라는 기도를 드려야 했던 것이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19:1~3)

 

위의 구절에서 말하는 에베소의 제자들도 사도들과 동일한 상태이다. 그들이 예수를 믿었지만 아직 성령이 계신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네 교회는 영접기도행위만 하면 성령이 자동적으로 들어오신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그렇다면 마가의 다락방에서 사도들과 제자들은 어떤 태도로 기도했는가? 전심으로 기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심이라는 뜻은 마음을 다해, 또는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쓴 태도를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돌보아야 할 가족들도 없었으며, 생업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었는가? 아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이 모든 것을 뒤로 미루고, 예수님을 죽기 살기로 쫓아다니다가 마가의 다락방까지 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성령을 만나야 한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이 없었다. 필자가 가장 아쉬워하고 있는 게 바로 이런 태도이다. 그동안 필자가 4년 동안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기도훈련을 해오고 있다. 그중 백여 명의 사람들은 영성학교 공동체 식구로 남아 매주 찾아오면서 집중적인 훈련을 받아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태도를 꾸준하게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그래서 아침과 밤에 각각 한 시간 이상, 낮에도 틈만 나면 기도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하는 시간을 보시는 분이 아니다. 어떤 태도와 마음으로 기도하는 지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보고 있다.

 

그 태도가 바로, 하루 종일 죽기 살기로 하나님을 찾아오는 것이다. 필자가 이 기도를 시작한지 17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하루 종일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 외에는 다른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규칙적으로 2시간동안 기도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루 종일 틈을 내서 기도하다가, 밤에도 한두시간 기도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을 습관으로 하고 있다. 선호하는 취미도 끊었으며 친구도 만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건강을 위해 뒷산에 오르거나, 한가하면 아내와 풍광이 좋은 자연 속에 가서 산책을 하거나 자동차 안에서 기도하는 게 유일한 소일거리이다. 남은 시간은 주어진 사역을 성실하게 하는 것뿐이다. 사역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 게으르지 않고 성실하게 할 뿐이다. 필자가 하루 종일 하려고 애쓰는 것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읽기이다. 예전에 화장품 장사를 하는 것이 사역으로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 그래서 하루 종일 수십 번, 수백 번씩 기도하려고 애쓰고 기도하다가 하루해를 보낸다. 그런데 영성학교 식구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필자처럼 하는 이들이 드물다. 성실하게 의무적으로 규칙적으로 기도할 뿐이다. 이런 태도는 하나님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하나님은 죽기 살기로 찾아오는 사람들만을 만나주신다. 성실하게 의무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시간낭비일 뿐이다. 울 영성학교 식구들의 상당수가 바로 이런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코칭시간 때마다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말하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결단을 하고 행동에 옮기려고 하지 않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하나님의 기준을 바꾸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을 바꾸지 않는다면 영성학교에서조차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