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살하는데, 어떻게 성령이 찾아오시겠는가?
우리네 교회는 성경말씀을 자의적으로 비틀어서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교단신학자들의 주장 뒤에 숨어서 무능하고 무기력한 성경공부만을 답습하고 있다. 이 시대가 성경이 완성된 시대이므로 말씀을 잘 배우면 능력이 임한다고 가르치지만, 우리네 교회 주변에서 말씀의 능력을 삶의 현장에서 드러내고 있는 이들을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게 우리가 마주한 차가운 현실이다. 그러나 삯꾼목사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교인들이 싫어하는 죄에 대한 날카로운 질책과 회개촉구를 잊은 지 오래되었다. 대신에 교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달콤한 위로와 덕담만을 들려주면서 부와 명예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는다. 초대교회 이후에 교회공동체적으로 성령이 임재하신 역사가 없다는 게 그 증거이다. 그러나 어느 교회에서도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니까 성령의 역사가 없는 현상을 당연시 하거나, 기회를 틈타서 신비한 이적을 자랑하며 홍보하는 이단들이 판치고 있다. 그 혹독한 대가는 고스란히 교인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삯꾼목자를 잘못 만난 그들의 무지와 어리석음의 결과는 지옥의 불길로 던져지는 참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왜 오늘날의 우리네 교회에 성령이 임재하지 않으시는지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그 이유는 아는 게 어렵지 않다. 성경을 찾아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2: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12:12)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8)
마가의 다락방에서 사도들과 120여명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재하신 사건을 너무 유명해서 모르는 크리스천이 없을 것이다. 그 때 그들이 기도했던 태도는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썼다’이다. 이 말의 헬라어는 ‘프뤼스케 프로스카루테룬테스“이다. 그래서 이 단어가 사용된 다른 성경말씀을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기도를 계속하고‘나 ’기도에 항상 힘쓰며‘라고 번역되어 있었다. 결국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조건은 항상 기도에 힘쓰며,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쓰고, 계속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네 교회에서는 영접기도행위에 동의하면 성령이 안에 들어오셨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인들은 규칙적인 기도를 하지 않으며 하루에 5분도 기도하지 않은 교인들이 허다하다. 그래서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교회마당을 밟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들에게 성령이 내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필자가 이런 주장을 큰소리로 외치더라도 들을 생각조차 없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필자에게 해주신 내용을 옮겨드리겠다.
‘입으로 나를 찾는 자는 기도의 본질을 모르는 자다. 기도의 본질은 나이고 자기도 알 수 없는 자를 만나는 것이므로, 그분이 누구인지 알려면 마음으로 만날 분을 사모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에게 오시도록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나를 찾아주시도록 보이지 아니하고 들리지 아니한다 해도 오직 기도하는 일에 모든 집중을 다해서 일상에서도 기도하는 마음이 떠나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오시도록 집요하게 조르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이 기도를 하지 않고 중도에 포기하고 내가 그를 만나려고, 주리고 목마른 자가 오로지 나를 찾고자 하는 것을 혹독한 마음을 읽었을 때 내가 그를 만나려고 하고 있는데, 그들은 중도에 포기하고 자기들의 입으로 하나님은 자기에게 오시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고 있다. 이렇게 기도하는 자는 어떤 일에서도 인내하지 아니하고 자기 고집대로 모든 일을, 하나님 없이도 자기의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나를 만날 수도 나는 그런 사람의 아버지도 아님도 알 것이라. 모든 사람들이 이런 기도를 하고 정성스럽고 끈질긴 자들이 나를 만나는 것이지, 조급하고 자기중심으로 나를 만나려고 하는 사람은 나도 그들을 만날 수 없다는 걸 알려라.’
위의 성령의 말씀을 통해서, 왜 우리네 교회에 성령이 내려오시지 않는지 그 이유를 콕 집어서 말씀드리겠다.
1. 조급해하며 인내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18:1,8)
당신은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응답이 신속하게 내려오며, 성령이 쏜살처럼 내려와서 당신의 기도를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의 종일 것이다. 왜 하나님은 당신의 기도에 군소리 없이 응답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왜 그래야만 하는가? 그것은 그동안 교회에서 들어온 인본주의 신앙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원칙을 고수하신다. 그래서 그동안의 우리네 교회에서 울며불며 기도했던 기도의 목록들이 쓰레기통에 사정없이 내버려진 이유이다. 하나님은 오직 자신의 뜻대로 기도하는 기도에만 귀를 기울이신다. 그러나 우리네 교인들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기도만 하고 있다. 설령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라고 할지라도, 그분의 자신이 원하시는 시간에 맞추어 응답을 해주신다. 어쨌든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응답이 오지 않으면 사람들은 조급해하며 기다리지 못한다. 그리고 그게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극악무도한 죄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왜 인내가 성령의 열매에 들어있는지 곱씹어보시라.
2. 자기고집대로 자기중심적으로 기도한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잠30:15)
자기 고집대로 하는 기도, 자기중심적인 기도는 귀신들이 넣어주는 기도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에 대해 적지 않은 분량을 할당하고 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주기도문이 그 대표적이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문대로 기도하고 있는가? 아니다. 새벽기도회나 철야기도, 혹은 교회에서 정한 기도회에 참석해서 그들이 무엇을 기도하는 지 잘 살펴보라. 대부분 교회의 담임목사나 원하는 목록이나 자신이 원하는 목록을 주구장창 반복하는 기도일 것이다. 그래서 응답이 내려오지 않으면 희생의 강도를 더한 기도행위를 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거나 소원을 바라고자 할 때는 작정기도라는 것을 도입한다. 작정기도는 자신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도하는 기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런 기도방식은 하나님의 의중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오직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응답이 내려오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고집대로 자기중심적으로 하는 기도에 관심을 가지실 턱이 있겠는가? 기도자리에서 죄악과 저주만 쌓고 있을 것이다.
3. 불평하고 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기도를 하다가 응답이 없으면 중도에 포기하고, 하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쏟아 붓고 있다.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자 예수님의 명령이다. 응답이 오고 안 오고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는다고 원망과 불평을 하면서, 더 이상 기도자리에 앉지 않는다.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드는 것으로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극악무도한 행위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이 응답해주시며 성령이 찾아오시겠는가?
그동안 자신의 기도에, 왜 하나님의 응답이 없으신지 잘 살펴보시라. 조급해하며 인내하지 않고, 자기고집대로 자기중심적인 기도를 하고 있으며, 원망하고 불평을 쌓아두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이 취해야 행동은 둘 중의 하나이다. 아예 하나님을 떠나든지, 아니면 위에서 말씀하신 성령님의 경고를 즉시 회개하고 고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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