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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 도미노 다음 행선지는?

Joyfule 2011. 3. 20.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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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북부의 그 모든 부러진 뼈와 산산조각 난 삶, 무너진 집은 평온한 시기에 우리가 늘 잊고 싶어하는 엄중하고 섬뜩한 경고를 곧바로 떠올리게 한다. 인간은 땅의 허락 아래 이 지구에 살며 그 허락은 언제 철회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수천, 아니 수만 명에게 이 허락은 서늘한 봄날인 지난 금요일(3월 11일) 오후 2시 46분 급작스럽게 철회됐다. 사실 모든 지질학적 사건은 갑자기 일어난다. 전적으로 예상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전부 뜻밖으로 발생한다. 그 직전까지 일본 동부 사람 모두가 사무실에서, 기차 속에서, 논에서, 가게에서, 학교에서, 창고에서, 사원에서 일상생활에 임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대다수 일본인에게 낯익은 땅의 흔들림보다 훨씬 강하고 긴 충격일 따름이었다. 늘 그렇듯이 곧 아득한 정적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 다음이 이전의 익숙한 지진과 달랐다. 몇 분 뒤 우르릉거리는 낮은 소리가 들렸다. 곧 세계 모든 사람에게 아직도 생생한 6년 전의 인도양 비극이 끔찍하게 재연됐다. 혼슈(本州)섬 북부의 해안에서 바닷물이 불가사의하게 사라졌다. 더 먼 바다로 빨려 들어가버렸다.

우르릉거림이 지속되면서 수평선 위로 들쑥날쑥한 하얀 선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곧 상상할 수 없는 맹렬함으로 그 선이 뚜렷해지면서 높은 파도의 벽이 엄청난 속도로 해안으로 되밀려왔다. 몇 초 뒤 이 태평양의 바닷물이 일본 동부 해안선의 방파제에 부닥쳤다. 그 물은 무심할 정도로 쉽게 방파제를 넘어서더니 그 너머의 뭍을 가로질러 달리며 대지를 할퀴기 시작했다. 그 쓰나미(지진해일)는 냉정하고도 초연한 약탈자처럼 그 앞의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며 닥치는 대로 파괴했다.

이 모든 재난은 지리적 위치에서 비롯된다. 50년 전부터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은 태평양판, 북미판, 유라시아판, 필리핀판 등 지각을 구성하는 판이 여럿 합쳐지는 지역에 위치한다. 따라서 지구의 어느 곳보다 지진에 취약하다. 일본인들은 뛰어난 공학 기술과 사회적 응집력, 팔로워십(followership:기꺼이 당국의 지시를 받아들이는 태도) 그리고 자제력을 발휘해 자주 일어나는 지진을 큰 탈없이 견뎌냈다.

하지만 이번의 특히 끔찍한 재난은 지리적 위치만이 그 원인이 아니다. 지형도 이 비극에서 큰 역할을 했다. 쓰나미 위험이 높은 해안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격언이 있다. “바다가 저 멀리 빨려 들어가면 무조건 뛰어라. 내륙 쪽으로 뛰고 가능하면 언덕 위로 뛰어 올라가라.” 하지만 일본 북동쪽의 이 지역은 넓은 평야다. 논이 많고 이상적인 공장 지대이며 공항의 입지 조건에 적합하다. 내륙은 무척 넓지만 언덕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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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은 저 멀리 서쪽에 있고 동부 해안 지역은 온통 평평한 평야다. 거대한 파도가 제트 여객기의 속도로 내륙으로 치닫고, 그 파도의 노여움을 피해 뛰어 올라갈 언덕이 없다면 결과는 뻔하다. 그 거대한 물결은 인간을 하찮은 미물처럼 형체도 알아보지 못하게 분쇄해버린다. 인간과 인간의 창조물은 쓰나미 앞에선 완전히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지리적 위치나 지형보다 더 큰 걱정거리가 있다. 지질학적 역사다. 지난주 일본 동부를 강타한 지진과 쓰나미는 돌발적인 사건이 결코 아니다. 지난 2월 22일 뉴질랜드에서 대형 지진이 일어났다. 약 1년 전엔 그보다 파괴력이 더 큰 규모 8.8의 지진이 칠레를 덮쳤다. 이 세 건에는 같은 환태평양 단층선과 지각판 경계선이 관련됐다. 과학적으로 구체적인 이유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지진은 무리 지어 발생한다는 점이 이제 거의 확실해졌다. 하나의 주요 지각판 한쪽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면 몇 주나 몇 달 뒤 그 지각판의 다른 쪽에서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는 경우가 잦다. 예외도 있지만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그런 현상이 빈번히 나타난다. 큰 망치로 한쪽을 치면 파동이 모든 방향으로 울려 퍼지는 거대한 종과 흡사하다. 태평양판의 세 모퉁이에서 큰 재앙을 부른 지진이 일어났다. 지난 금요일 서북쪽에서 하나, 지난달 서남쪽에서 하나, 그리고 지난해 동남쪽에서 하나다.

그렇다면 이제 한쪽 구석만 남았다. 동북쪽이다. 태평양판 동북쪽의 단층은 샌프란시스코를 떠받치는 샌앤드레어스 단층이다.

지질학계는 크게 우려한다. 샌앤드레어스 단층이 언젠가는 파열한다는 점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1906년에 한 번 크게 터졌다. 그 이후 내부 압력이 계속 증가하면서 지금은 가까스로 버텨나가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 단층이 다시 파열하면 그 위에 사는 수백만 명이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도 힘들다. 단층이 파열되려면 몇몇 기폭 사건이 일어나야 하는데 이미 그런 사건으로 간주될 만한 지진 세 건이 발생했다. 따라서 미국 서부에는 크게 불안해 하는 사람이 많다. 그토록 쾌적한 곳에 살도록 해주는 땅의 허락이 예상보다 빨리 철회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필자는 영국의 저술가로 최근 ‘대서양(Atlantic)’을 펴냈다. 번역 이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