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핵을 포기할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이 말은 ‘북도 어엿한 핵보유국’이라는 현실을 미국이 인정하는 전제 하에서만 회담을 할 수 있으며, 회담이 열리면 그 어젠다는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대등한 핵보유국인 미-북 사이의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회담이라야만 한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 미국이 생각하는 회담과, 북이 생각하는 회담은 사전(辭典) 속 의미의 단어만 같을 뿐, 그 내용은 전혀 다른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덮어놓고 대화하자 하고 회담하자 하고 특사 보내야 한다고 하는 게 얼마나 안이한 낙관론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회담이 열리면 뭘 하나, 북이 뜻하는 회담은 우리의 백기투항을 받아내자는 것인데.
본래 대화, 회담, 협상이란 현상타파, 그것도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휩쓰는 현상타파는 하지 않기로 피차 수긍하고서 하는 ‘공정거래’를 뜻한다. 그런데 북은 비핵화를 자기들더러 망하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불공정 거래’라고 간주할 개연성이 높다. 반면에 ‘미-북 평화협정’ ‘주한미군 철수’는 우리더러 무장해제를 하라는 소리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이래서 양단간에 회담은 열려보았자 결국은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알았는지 미국의 존 케리 국무부장관은 “중국이 협력하지 않으면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중국이 협력하지 않으면 한반도 비핵화는 (회담이 열려도) 불가능하다'는 체념이나 다름없다. 그러면서 그는 “북을 절대로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북의 '핵보유국 인정 요구'도, 한국-미국의 비핵화 희망도 '현재로선' 둘 다 되기 어렵다는 회의론(懷疑論), 또는 비관론인 셈이다.
그래서 결국은 중국이 북을 압박해 주는 것 외엔 달리 해법(解法)이 없다는 실토(實吐)라 핳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과연 미국 입맛대로 놀아줄까?
이럼에도 불구하고 미-북 회담, 남북회담, 미-중-북 회담, 한-미-중-북 회담, 6자 회담 등이 어찌어찌 열린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나 회담이 열려도 아무 것도 되는 일이라곤 없으면서 마냥 시간을 끌며 지지부진할 것이다. 그러면서 북은 시간여유를 또 왕창 벌 것이다. 핵 능력을 경량화 다품종화 하고 실전배치하는 데 3~5년이면 충분하다니까.
그렇게 해서 북은 자신들의 군사적, 국제정치적 입지를 지금보다도 훨씬 더 높일 것이다. 그리곤 그 위세로 또 ‘최후통첩’을 할 것이다. “이제야말로 진짜 불바다냐, 이제야말로 진짜 투항이냐?” 그러면 우리 내부와 미국 일각에서는 또 “대화하라, 회담하라, 특사 파견하라“는 소리가 일어날 것이다. 상황이 우리에게 갈수록 더 나빠지는 악순환인 것이다.
이게 우리가 직면한 냉엄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북 같은 꼼수 집단과는 회담해 보았자 얻을 게 별로라는 인식으로, 미국 핵우산에 의존하는 게 과연 100% 보증수표일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으로, 미국이 만약, 언젠가, '평화협정'에 속절없이 맞물리는 경우엔 어찌 할 작정인지를 자문(自問)하면서, 그리고 우리의 생명과 재산과 가족을 지킬 자는 궁극적으론 우리 자신밖에 없다는 자명한 철칙을 상기해야 할 시점이 각일각(刻一刻) 죄어오는 것 같은 예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퇴임할 무렵, 북의 핵 능력이 어떻게 얼마나 더 쎄질 것인가를 박 대통령은 생각해 보았는가? 그걸 회담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건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