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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홀드 니버(1892-1971)

Joyfule 2018. 7. 21. 00:02

 

  라인홀드 니버(1892-1971)

 

 라인홀드 니버는 한 번도 자신을 신학자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는 설교가요 목사였다. 그가 수료한 최고의 학위는 예일에서 받은 문학 석사였다.


 니버의 경력과 지적 발전과정: 니버는 왈터 라우센부시와 마찬가지로 경건주의적 기독교 환경 가운데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프러시아의 루터교 전통과 개혁교회 전통을 합한 것에 그 뿌리를 가지고 있던 복음파 교회(현재 연합 그리스도교의 일부)의 목사였다. 라인홀드 니버는 일리노이 주 링컨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1913년 예일로 향하기에 앞서 엘머스트(Elmhurst)대학과 이든신학교를 수료했다. 그는 예일에서 신학사와 그리고 1915년에는 문학석사를 받았다.


 전문인으로서 니버는 디트로이트에서 시작되었다. 라우센부시가 뉴욕의 '헬스 키친'에서 목회한 경험에 의하여 사회주의적 편향성으로 기울었던 것처럼, 젊음 목사 니버도 사회 변혁을 위해 그와 유사한 제안을 들고 나온 대변인이 되었다. 그는 디트로이트에서 자신이 신학교에서 받았던 자유주의의 신학 훈련이 20세기의 목회라는 도전을 맞이하기에 모든 면에서 불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28년에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윤리학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여기서 그는 1960년에 퇴직하기까지 가르쳤다. 그의 생애에서 최고 전성기는 1939년 에딘버러에서 그 유명한 기포드 강연의 강연자로 초대되었을 때였다. 그 강연은 후에 그의 책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인간의 본성과 운명](The Nature and Destiny of Man)이라는 책으로 묶어져 출판되었다.


 니버의 연구가인 로널드 스톤은 그의 생애를 네 단계로 나누고 있다.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실용주의자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실용주의적 자유주의자이다.


 실천적인 기독교: 그의 저술에는 세 가지 상호 관련성이 있는 주제들이 주조를 이루고 잇다. 첫째로, 그는 기독교 신앙의 실천적 의미에 대하여 강도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기본적인 목표는 기독교적 전통에서 나오는 통찰들을 현대적 상황에 적용하는 것과,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의 신앙으로 인하여 주입된 확신들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그의 목표는 언제나 "현대의 문제들에 대한 기독교 신앙의 적실성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의 노력을 신학적 토론을 추구하는 것과 같은 일에 국한시키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행동가가 되어 신학에서 얻은 통찰들을 정치나 국제 관계, 인권, 경제 제도와 같은 영역에 적용하려 했다. 그는 전반적으로 복음을 배척해 버린 한 사회 안에서 기독교 신앙의의미와 가치를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에, 혹은 "세속 사회 안에서 기독교 신앙의 정당성을 보여 주고 그것을 변호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변증가의 한 전형으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하겠다.

 
니버는 기독교 신앙이야말로 삶의 의미를 제공한다고 제사하려고 했으면서도 "삶의 의미를 궁극적인 차원에서 말하는 것은 합리적인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당대를 풍미하던 자유주의 신학이 신앙의 부조리를 축소시키기 위하여 성경의 메시지를 윤리학이나 존재론의 '영원한 원리들'로 환원시켰던 데 반해, 니버는 인격성이나 역사와 같은 개념들이 존재론적으로 볼 때 모호한 위상을 가진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변증학을 주장했다.

 

 이러한 흐름의 이면에는 데이비스가 묘사한 대로,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복음이 상대적인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는 복음의 적실성의 원리, 곧 모든 사회적 상황에 대한 기독교의 적용성"에 대한 확신이 자리잡고 있었다. 니버가 보았을 때 기독교의 적실성(실용주의적 적용)은 그 외의 다른 관점들을 상대화시켰다. 그 다른 관점들 가운데 당대에 만연되어 있었던 것 중에서 으뜸가는 것으로는 인간과 인간사회를 낙관적으로 보는 부적절한 견해가 있었다. 그의 통렬한 비판에 어떤 이는 "일개의 사상가로서 니버만큼 우리 시대의 세속적 환상과 이상이 파산된 것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근사치 정의: 둘째, 그의 저술에 나타나고 있는 것은 '근사치 정의'에 대한 지속적인 강조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 사회 안에서 정의에 대하여 부분적인 경험만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라고 말한다. 완전은 불가능한 목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우리를 충동질하는 '불가능한 가능성(impossible possibility)'이다. 

 
니버에 따르면 이러한 상황은 인간의 상황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변경 불가능한 현실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의 병리들에 대하여 우리가 제시하는 해결책들이나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우리의 열정어린 노력을 통하여 완전한 인간의 질서가 설정될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은 어제 있었던 것보다 좀더 정의로운 사회일 뿐이다. 신학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성취가 불가능한 목표이고 우리가 결코 다다르지 못할 표준이지만 그것은 항상 인간 사회 위에 심판자로서 서 있다. 그것은 역사 속에, 즉 인간의 행동에 의하여 임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저 너머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기독교적 인간학: 셋째, 니버는 완전히 정의로운 사회를 창조하는 것이나 현실의 영역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이상을 성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그 불가능성 속에 놓인 인간의 상황을 탐구한다. 인간의 곤경에 대한 그의 이해는 그의 사고를 묶어주는 하나의 맥락이다. 니버가 당시에 자유주의적 전통이 성경적인 인간론의 주제들을 배격하고 대신 당시의 중심적인 문제들을 야기시켰던 인간의 완전성이나 진보의 관념 등과 같은 거짓된 교리들을 배격하였다.

 
자유주의에서는 "기독교의 정통주의에서 '죄'라고 하는 것을 무지에 의한 불완전이라고 하여 적절한 교육을 통하여 그것은 곧 극복될 것이라고 본다"고 그는 주장했다. 자유주의가 추종한 순진한 낙관론, 인간 이성에 대한 강조, 그리고 교육에 대한 믿음 등에 반하여, 성경은 현실주의적인 관점을 제시한다고 니버는 주장했다. 그 결과 그기 안간의 현재적 상황이 가지는 양면성을 강조하려고 했던 면에서 그의 인간론은 고전적 기독교의 인간론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는 성경이 말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죄악성이라는 주제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위대함에 대해서도 긍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