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움브란트,고난,핍박,공산주의
1살 때 고아가 된 나는 1차 세계대전 기간에 처절한 빈곤을 겪었기에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에는 기쁨이 무엇인지 모르고 지냈다. 나는 유대인이었으나 기독교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고, 어린 나이에 이미 무신론자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늘 이 세상 어딘가에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 줄 마음을 지닌 존재가 있기를 바랐고,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나에게 그분의 존재를 나타내야 할 의무가 그분께 있다고 외쳐대곤 했다.
사실 그러한 외침은 내가 겪고 있는 번민을 표출한 것이었다. 그즈음 루마니아의 한 산간 마을의 늙은 목수는 "죽기 전에 유대인을 주님께 인도하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루마니아의 12,000개의 마을 중 우연치 않게 그 목수가 사는 마을에 가게 된 나는 그가 건네준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께 무릎을 꿇었다.
그후 나찌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나는 안수받은 목사는 아니었지만 교회를 인도하고 있었기에 여러 번 그들에게 체포되어 구타를 당했다. 그 때에 많은 소련군 포로들이 루마니아에 끌려왔는데, 소련군 포로와의 첫 만남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느냐는 내 물음에 그는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나는 그런 명령을 받은 적이 없으며, 만약 그런 명령을 받으면 믿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공산주의자들에게 성경의 사실들을 설명하면 그들은 더욱 의아해 한다. 99마리의 양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에 대해 이야기해 주면 그들은 "어떻게 그 사람이 일백 마리의 양을 소유할 수 있습니까? 협동조합에서 빼앗아 갈텐데요?"라고 되묻는다.
예수님이 왕으로 오셨다고 말하면 "왕들은 다 인민들을 학대하는 나쁜 놈들이니, 예수도 반드시 폭군이겠군요?"라고 말한다. 포도원 농부에 대한 비유를 들려 주면 "농부들이 포도원 주인을 대항하여 나선 것은 잘한 일이지요. 포도원은 협동조합에 속해야지요"라고 대답한다. 공산주의가 인간에게 행한 것은 실로 나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나의 조국 루마니아인들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자인 소련군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로 다짐했다.
공산당은 정권을 잡은 후 교묘히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타협의 길을 걷지 않는 참된 교회들은 모두 지하로 숨어들어 갔다. 나는 1948년 2월 29일 지하교회에서 주님을 섬기다가 납치되어 그후 여러 감옥에 있었다. 그들은 나를 고문했다. 내 척추와 뼈들을 부러뜨렸고, 12군데나 칼자국을 냈고, 18군데의 화상 자국을 남겼다. 나는 감옥에서 나온 후 일주일 만에 다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3년 후에 다시 투옥되었다.
나와 내 아내가 잡혀간 후 내 아들 미하이는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유랑아가 되었으며, 미하이를 불쌍히 여겨 몰래 도와 주었던 두 자매님들도 잡혀가 매를 맞아 불구자가 되었다.
우리는 죄인이 아닌 죄인이 되어, 안쪽에 톱날이 선 족쇄로 채워졌다. 거꾸로 매달아 채찍으로 때리는 고문 정도는 예사이다. 나는 지금도 냉장고 문을 열기를 꺼리는데, 속옷만 입고 냉동실에 끌려갔던 고문의 후유증 때문이다. 냉동실에 들어간 우리는 얼어 죽을 것 같으면 다시 따뜻한 방으로 옮겨졌고, 몸이 풀리면 다시 냉동실에 잡아 넣는 고문을 반복적으로 당했다. 더 이상의 것들은 차마 언급할 수조차 없다.
후르레스끄라는 성도는 죽도록 매를 맞았다. 그리고서 붉게 달아오른 쇠갈고리와 칼로 고문을 당한 후, 굶은 쥐들을 감방에 넣어 잠을 자지 못하도록 했다. 2주일 내내 밤낮 없이 선 채로 그가 고문받은 이유는 동역하는 성도들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가 굴복하지 않자, 그들은 14살 난 그의 아들을 데려다 그 앞에서 사정 없이 채찍질하기 시작했다.
"아들아, 나는 이들에게 말해야 되겠다. 나는 더 이상 차마 볼 수가 없구나." "아버지, 저는 주님을 파는 아버지를 원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견디십시오. 만약 이들이 나를 죽인다면 나는 예수님과 조국을 위해 죽겠습니다."
악에 찬 간수들은 소년을 그 자리에서 때려 죽였다. 감방벽은 붉은 피로 물들었고, 소년은 주님을 찬양하며 숨을 거두었다. 공산주의자들은 고문과 회유를 통해 밀고자가 되게 하기도 하고, 밀고자들의 "밀고자"가 되도록 제안하기도 하며, 심지어 동료 그리스도인이 다른 그리스도인의 고문자가 되게 하는 극악한 방법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고문을 견디어 내는 것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끊임없이 주님을 증거한다. 한 형제가 감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갑자기 간수들이 나타나 고문실로 끌려갔다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자, 그 형제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옷 매무새를 바로하며 그들에게 "여러분, 내가 아까 어디까지 전했습니까?"라고 물으며 다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지하교회만이 공산주의자들에게 남아 있는 유력한 저항세력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감옥에는 집어 넣을 수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없앨 수 없음을 알기에 더 철저히 성도들을 핍박했다. 우리를 핍박하던 공산주의자들이 후에 감옥에 끌려 들어오기도 한다(자신들끼리마저도 증오하는 공산당의 종교는 "증오"이다). 그러면 일반 죄수들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며 그들을 구타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구타당할 위험과 공산당과 한편이라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그들을 저지시킨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일주일에 한 조각의 빵과 자신의 생명을 건질 수 있는 약을 이전의 핍박자들이었던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우리는 우리를 채찍질하는 간수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빌립보의 간수들처럼 "내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진정으로 그들이 묻게 되기를 바랐고, 또 간절히 기도했다. 실제로 우리를 고문하고 핍박하던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우리와 같은 처지에 기꺼이 처해졌다.
서방 교회의 "일부"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원수들도 사랑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으로 공산주의자들과의 연합과 교류를 정당화한다. 그런 종교 지도자들은 순교자들에게 관심이 없다. 오히려 내가 서방에 간 후(14년 복역후 1965년 12월, 나는 가족들과 함께 지하교회를 서방에 알리기 위해 루마니아를 떠났다.) 방문한 신학교들에서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어떤 신학교들에서는 창세기에 관한 내용이 거짓이고, 노아의 홍수 그리고 모세의 기적들도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며, 동정녀 탄생도, 예수님의 부활도 전설에 불과하다고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들의 관심은 오히려 교회 종파의 역사나, 예수님의 뼈가 어느 고장의 무덤에 있다든지 하는 것들에 불과했다. 실로 하나님이 죽었다고 가르치는 그들은 예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숲속에 모여 때로는 낮에 때로는 밤에 비밀 예배를 드렸고, 그 예배후에는 성도들이 감옥에 갇히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지하교회는 모두 진지한 믿음을 소유했는데, 그들이 지닌 믿음은 커다란 핍박과 생명의 위협까지도 의미했다. 지하교회는 때로 "공산주의" 서적(몇 페이지만 공산주의 내용을 싣고 그 뒤에는 복음이 적혀 있는)을 행사장들에서 판매하기도 하고, 때론 거리에서와 공산당 간부들에게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하기도 한다. 그런 그들의 결의와 소망은 이와 같다.
"복음 전파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에게 지원해 주십시오. 복음을 전하는 대가는 우리가 치르겠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오직 젊은 세대들을 무신론의 독뿌리에서 구해낼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십시오. 우리에게 성경과 복음 책자 등을 지원해 주십시오. 복음은 우리가 전하겠습니다." "핍박받는 성도들과 그 가족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들은 굶주림과 헐벗음으로 고통에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여러분의 사랑하는 형제이며, 지체가 아닙니까?"
이런 지하교회의 메시지를 전하던 나는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다시 돌아왔고, 믿음의 영웅들과 재회했으며,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돌아선 그리스도인들을 세우고 다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대중 매체들은 메시지를 공산주의 체제가 이미 완전히 전복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선전한다. 그러나 중국의 11억, 소련의 2억 8천만 그리고 베트남, 쿠바, 에디오피아, 앙골라, 짐바브웨, 북한 등을 포함해서 아직도 인류의 3분의 1을 지배하는 것이 공산주의이다.
모세, 느헤미야, 다니엘, 에스더, 이사야 같은 사람들이 우리의 앞서간 사람들이 되어 주었다. 나는 공산주의 치하의 핍박과 고문 속에서 주님을 섬겨 온 우리 지하교회 성도들이 상황이나 환경에 타협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들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러분이 특별히 공산 치하의 성도들을 잊지 않기를 기도하며, 더불어 그들이 여러분이 싸우고 있는 믿음의 선한 싸움에 도전이 되기를 소망한다. 죽기까지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지 못할 상황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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